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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 보편적인 앎에 불을 붙이지 못해요. 바깥에 늘 켜져 있는 '제1지성'이 불씨처럼 닿아야 잠자던 마음이 실제 앎으로 타오르고, 그렇게 얻은 앎은 내 것으로 남는다는 이론이에요.
알 킨디(801년경부터 873년까지)는 그리스 철학책을 아랍어로 옮기던 '지혜의 집'을 이끈 9세기 사상가예요.
아랍어로 철학을 쓴 첫 사람으로 꼽히죠.
그가 던진 물음은 뜻밖에 단순해요.
"우리는 어떻게 무언가를 진짜로 알게 될까?"
그는 이 물음에 답하려고 '앎이 일어나는 과정'을 네 단계로 갈랐어요.
이게 바로 네 가지 지성 이론이에요.
핵심부터 말하면 이래요.
사람의 마음은 혼자서는 보편적인 앎에 불을 붙이지 못하고, 바깥에 늘 켜져 있는 지성이 닿아야 비로소 앎이 타오른다는 거예요.
즉 배움은 '내 안에서 저절로 솟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옮겨붙는 것'이라는 그림이죠.
알 킨디가 직접 든 비유가 있어요.
나무는 잠재적으로는 뜨거워질 수 있지만, 불이 실제로 닿기 전까지는 차갑게 있어요.
나무 스스로는 자기 몸에 불을 붙이지 못하죠.
불이라는 바깥의 존재가 와야 그제야 실제로 뜨거워집니다.
사람의 마음도 똑같다고 봤어요.
우리 마음은 '보편적인 것'을 알아볼 능력을 품고는 있지만, 그 능력만으로는 아무것도 실제로 파악하지 못해요.
마치 불붙기 전 장작처럼요.
그래서 바깥에서 '이미 켜져 있는 지성'이 닿아 줘야 마음속 능력이 실제 앎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한번 불이 붙어 파악된 앎은 그 뒤로 내 안에 남아요.
이걸 그는 '획득된 지성'이라고 불렀어요.
배운 뒤엔 내 것이 된다는 뜻이죠.
알 킨디는 이 과정을 네 개의 지성으로 나눠 설명했어요.
하나씩 일상 비유와 함께 보면 헷갈리지 않아요.
| 지성 | 어떤 상태일까 | 장작과 불 비유 |
|---|---|---|
| 제1지성(늘 활동하는 지성) | 항상 켜져 있는 보편적인 앎. 나의 바깥에 있어요 | 언제나 타고 있는 불 |
| 잠재 지성 | 아직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한 마음의 능력 | 아직 차가운 장작 |
| 획득 지성 | 한번 파악해서 내 것이 된 앎 | 불이 옮겨붙어 열을 머금은 장작 |
| 발현 지성 | 그 앎을 실제로 꺼내 쓰는 순간 | 그 열로 무언가를 데우고 있는 중 |
순서를 따라가면 이래요.
늘 켜진 불(제1지성)이 차가운 장작(잠재 지성)에 닿아요.
그러면 장작은 열을 머금게 되고(획득 지성), 필요할 때 그 열을 실제로 쓰죠(발현 지성).
앞의 하나는 내 바깥에 있고, 뒤의 세 단계가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예요.
여기서 중요한 건 제1지성이 '내 안'이 아니라 '내 밖'에 있다는 점이에요.
알 킨디는 이 제1지성을 신이 가장 먼저 창조한, 물질이 아닌 보편적 지성으로 봤어요.
사람 하나하나의 마음은 이 제1지성의 작용을 거쳐야만 보편적인 형상을 실제로 붙잡을 수 있다고 했죠.
왜 이렇게까지 밖을 강조했을까요?
장작이 스스로 불붙지 못하듯, 사람 마음도 텅 빈 능력만으로는 보편적 앎을 처음부터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시작의 불씨는 반드시 바깥에서 와야 한다는 거죠.
대신 한번 붙은 불은 온전히 내 것이 돼요.
그래서 이 이론은 '앎은 밖에서 시작되지만 끝내 내 안에 자리 잡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배움이 왜 남에게 배우는 일이면서 동시에 내 것이 되는 일인지를 설명하려 한 셈이에요.
알 킨디의 네 가지 지성 이론은 '어떻게 우리가 무언가를 알게 되는가'를 네 단계로 그린 지도예요.
늘 켜져 있는 제1지성이 불이라면, 내 마음은 처음엔 차가운 장작(잠재 지성)이고, 불이 옮겨붙으면 열을 머금은 장작(획득 지성)이 되며, 그 열을 실제로 쓸 때가 발현 지성이에요.
기억해 둘 한 가지는 이거예요.
첫 불씨는 내 바깥에서 오지만, 한번 배운 앎은 온전히 내 것으로 남는다는 점이에요.
9세기 바그다드에서 나온 이 그림은 배움을 '옮겨붙는 불'로 본 설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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