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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어떤 언어든 자주 쓰는 글자가 정해져 있어서, 암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온 기호를 그 언어에서 제일 흔한 글자에 맞춰 보면 비밀 열쇠가 없어도 암호가 풀려요. 알 킨디는 9세기에 이 방법을 글로 정리한 사람이에요.
알 킨디(801년부터 873년까지)는 9세기 바그다드에서 활동한 '아랍의 철학자'예요.
그리스 책을 아랍어로 옮기는 '지혜의 집'을 이끈 사상가였죠.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조금 뜻밖의 별명이 하나 더 있어요.
바로 '암호를 푼 철학자'예요.
여기서 암호란 스파이 영화에 나오는 그런 것 맞아요.
예를 들어 편지에 '만나자'라고 쓰는 대신, 미리 정한 규칙으로 글자를 다른 기호로 바꿔치기해서 아무나 못 읽게 만드는 거예요.
'ㄱ'은 ★로, 'ㄴ'은 ●로 바꾸는 식이죠.
이렇게 글자를 하나하나 다른 기호로 바꾼 암호를 '치환 암호'라고 불러요.
열쇠가 되는 규칙표를 모르면 그냥 뒤죽박죽 기호 덩어리로 보여요.
알 킨디가 대단한 건, 그 규칙표를 몰라도 암호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세상에서 (지금 남아 있는 기록 중) 처음으로 글로 남겼다는 점이에요.
그 책 이름이 『رسالة في استخراج الكتب المعماة』, 우리말로 풀면 '숨겨진(암호화된) 글을 끄집어내는 방법에 관한 서신'이에요.
비밀은 아주 단순한 관찰에서 시작해요.
우리가 쓰는 글에는 자주 나오는 글자와 어쩌다 나오는 글자가 있다는 거예요.
한국어로 긴 글을 써 놓고 세어 보면 'ㅇ'이나 'ㅏ' 같은 글자는 엄청 많이 나오지만, 어떤 글자는 몇 번 안 나와요.
어느 언어든 이런 편차가 있어요.
알 킨디는 여기에서 열쇠를 봤어요.
생각해 보면 이렇게 풀 수 있어요.
치환 암호는 'ㅏ'를 무슨 기호로 바꾸든, 원래 'ㅏ'가 자주 나왔으니까 그 기호도 암호문에서 자주 나와요.
규칙표를 바꿔도 '얼마나 자주 나오는가'라는 성질은 그대로 따라오거든요.
그러니 암호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기호를 찾아서, 그 언어에서 가장 흔한 글자라고 짐작하고 바꿔 넣어 보는 거예요.
이걸 '빈도분석'이라고 해요.
빈도란 '얼마나 자주 나오느냐'는 뜻이에요.
정리하면 이런 흐름이에요.
| 단계 | 하는 일 |
|---|---|
| 1 | 암호문에서 각 기호가 몇 번 나왔는지 센다 |
| 2 | 그 언어에서 원래 자주 쓰는 글자 순서와 나란히 놓는다 |
| 3 | 가장 많이 나온 기호 = 가장 흔한 글자로 맞춰 본다 |
| 4 | 말이 되는지 확인하며 나머지도 채워 넣는다 |
열쇠를 훔치지 않고, 오직 '숫자 세기'만으로 자물쇠를 여는 셈이에요.
알 킨디 혼자 뚝딱 만든 건 아니고, 앞서 살았던 학자 알할릴(717년부터 786년까지)의 작업을 이어받아 하나의 방법으로 정리했어요.
이 방법이 특별한 이유는, 암호를 하나 푼 데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에요.
알 킨디는 '전체를 다 안 봐도, 자주 나오는 정도를 세어서 숨은 규칙을 알아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실제 문제에 써먹었어요.
이건 오늘날 우리가 '통계'라고 부르는 사고방식의 아주 이른 사례예요.
설문조사 몇천 명만 물어보고 전체 국민의 생각을 짐작하는 것, 스팸 메일을 자동으로 걸러내는 것 모두 '자주 나오는 패턴을 세어 숨은 사실을 추리한다'는 같은 뿌리에서 나와요.
그의 암호 책은 오랫동안 잊혔다가 20세기에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오스만 문서고에서 다시 발견됐어요.
종이 뭉치 속에 천 년 넘게 잠들어 있던 셈이죠.
덕분에 우리는 빈도분석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 9세기 아랍 세계에서 나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철학자가 왜 이런 걸 했을까 싶지만, 알 킨디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는 수학과 숫자를 세상 곳곳에 적용하기를 좋아한 사람이었거든요.
글자를 세어 암호를 푼 것도, 그에게는 세상을 숫자로 꿰뚫어 보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거예요.
'암호를 푼 철학자' 알 킨디를 이렇게 기억하면 좋아요.
첫째, 그는 열쇠 없이 암호를 푸는 '빈도분석'을 처음 책으로 정리했어요.
둘째, 원리는 단순해요.
어떤 언어든 자주 쓰는 글자가 있으니, 암호문에서 제일 많이 나온 기호를 제일 흔한 글자로 맞춰 보는 거예요.
셋째, 이 '많이 나온 것으로 숨은 규칙을 추리하는' 생각은 오늘날 통계와 데이터 분석으로 이어져요.
9세기 철학자가 글자를 세던 손끝에, 지금 우리가 쓰는 추리의 방법이 이미 담겨 있었던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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