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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알 킨디는 바그다드 '지혜의 집'에서 그리스 철학책을 아랍어로 옮기는 작업을 이끌어, 아랍어로 철학을 생각하는 길을 처음 낸 사람이에요. 남의 지혜를 제 말로 소화해야 새 전통의 문이 열리는데, 그 첫 소화를 그가 해냈죠.
알 킨디는 대략 801년부터 873년까지 살았던 9세기 사상가예요.
이라크 쿠파의 명문 킨다 부족 집안에서 태어나 바스라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바그다드에서 학업을 마쳤어요.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마문은 그를, 그리스 철학·과학 책을 아랍어로 옮기던 번역 기관 '지혜의 집'(바이트 알히크마)의 책임자로 앉혔죠.
뒷사람들은 그를 '아랍 철학의 아버지', '아랍의 철학자'라고 불렀어요.
그 별명의 뿌리가 바로 오늘 이야기할 '번역가'라는 얼굴이에요.
외국의 훌륭한 요리책을 우리말로 옮긴다고 생각해 봐요.
재료 이름도, 조리법을 부르는 말도 우리에겐 없어서 옮기는 사람이 새 낱말까지 만들어 가며 풀어야 하죠.
9세기 바그다드가 딱 그랬어요.
수백 년 전 그리스 사람들이 쌓아 둔 철학이 그리스어로만 잠들어 있었거든요.
알 킨디는 이 그리스 지혜를 아랍어라는 그릇에 옮겨 담는 큰 사업을 이끌었어요.
그는 번역을 감독하고, 어색한 문장을 다듬고, 낯선 개념에 아랍어 옷을 입혔죠.
그래서 그를 '번역가'라 부르는 건 책 한 권 옮긴 사람이 아니라, 한 문명의 생각을 다른 언어로 이사시킨 지휘자라는 뜻에 가까워요.
알 킨디가 감독한 번역들은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었어요.
이후 몇 세기 동안 이슬람 세계에서 철학을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펴 보는 표준 교과서가 됐죠.
| 옮긴 책 | 원래 지은이 | 이후 위상 |
|---|---|---|
| 『형이상학』 | 아리스토텔레스 | 이슬람 철학의 기본서 |
| 『아리스토텔레스 신학』 | 실은 플로티노스 | 수 세기 동안 표준 철학책 |
재미있는 건 『아리스토텔레스 신학』이에요.
사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플로티노스의 글이었는데, 당시엔 아리스토텔레스 것으로 잘못 알고 전해졌어요.
그런 착오까지 안은 채로, 이 번역들은 뒷날 파라비와 이븐 시나 같은 큰 철학자들이 딛고 설 땅이 되었답니다.
번역은 단어를 바꿔 끼우는 일이 아니에요.
그 뜻을 담을 그릇이 없으면 그릇부터 빚어야 하죠.
알 킨디는 아랍어에 '음악'을 뜻하는 낱말 موسيقى(무시카)를 그리스어에서 처음 들여왔고, 이 말은 뒤에 페르시아어·터키어로도 퍼졌어요.
철학의 속뜻을 옮길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가 칼리프 알무타심에게 바친 『제1철학론』 서두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لأن كل ما له أنية له حقيقة (존재를 지닌 모든 것에는 진리가 있다)
'존재성'(아니야, أنية)이니 '진리성'(하키카, حقيقة)이니 하는 말은 그리스 철학의 까다로운 생각을 아랍어로 옮기려 새로 벼려 낸 개념이에요.
남의 생각을 제 말로 소화한다는 게 이렇게 새 낱말과 새 표현을 빚는 일이었죠.
알 킨디는 아랍어로 철학을 쓴 첫 사람이었어요.
첫 사람에겐 참고할 앞선 본보기가 없죠.
그래서 뒷날 파라비나 이븐 시나는 그의 솜씨를 두고 서툴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그건 생각이 얕아서가 아니라 아무도 안 가 본 길을 처음 낸 개척자였기 때문이에요.
길이 없던 곳에 길을 낸 사람은 원래 발자국이 거칠기 마련이니까요.
파라비와 이븐 루시드는 그의 이름을 거의 부르지 않았지만, 그리스 철학과 씨름한다는 그의 기획만큼은 고스란히 이어받았어요.
알 킨디의 '그리스 지혜의 번역가'라는 얼굴은 이렇게 기억하면 좋아요.
첫째, 그는 바그다드 '지혜의 집'에서 그리스 철학을 아랍어로 옮기는 사업을 이끌었어요.
둘째, 그가 감독한 번역들은 수 세기 동안 이슬람 세계의 표준 철학책이 됐죠.
셋째, 번역은 단어 바꾸기가 아니라 '음악' 같은 새 낱말까지 빚어내는 창조였어요.
넷째, 첫 사람이라 거칠다는 평도 들었지만, 그 거친 첫 길 위에서 뒷날의 이슬람 철학이 자라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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