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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킨디는 스스로 오래 애써 얻는 철학과 신이 예언자에게 내려 주는 계시를 진리에 이르는 두 길로 봤어요. 걷는 방식은 달라도 도착하는 진리의 내용은 같기 때문에, 이성과 신앙은 굳이 싸울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같은 산 정상에 오르는데 한 사람은 지도를 보며 몇 년을 걸어 올라가고, 다른 한 사람은 헬리콥터로 단숨에 내려앉는다고 해 볼게요.
오르는 방법은 완전히 다르지만 두 사람이 만나는 곳은 똑같은 정상이에요.
9세기 바그다드에서 활동한 '아랍의 철학자' 알 킨디(801년부터 873년까지)가 신앙과 이성을 바라본 방식이 딱 이랬어요.
당시 이슬람 세계에는 그리스에서 들어온 철학이 신앙과 부딪히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었어요.
알 킨디는 이 둘이 싸울 필요가 없다고 봤어요.
사람이 머리로 따져서 얻는 철학과, 신이 예언자에게 내려 주는 계시가 도착지, 곧 '진리'가 같기 때문이에요.
길이 두 개일 뿐 목적지는 하나라는 거죠.
실제로 그의 평생 관심사는 철학과 이슬람 신학(칼람)이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는 걸 밝히는 일이었어요.
알 킨디는 진리에 이르는 두 길을 네 가지로 나란히 비교했어요.
| 비교 | 철학(이성) | 예언(계시) |
|---|---|---|
| 얻는 방법 | 오랜 수련이 필요함 | 신이 곧바로 내려 줌 |
| 도달 과정 | 스스로 어렵게 도달함 | 계시로 단번에 도달함 |
| 이해의 선명함 | 부분적이고 힘겨움 | 더 명료하고 포괄적임 |
| 전달력 | 일반인에게 설명하기 어려움 | 쉽게 전해 줌 |
표를 보면 예언 쪽이 훨씬 유리해 보이죠.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여기 담기지 않은 한 가지예요.
두 길이 도달하는 진리의 '내용'은 똑같다는 점이에요.
방법과 속도만 다를 뿐, 결론은 서로 어긋나지 않아요.
그래서 철학을 공부한다고 신앙을 배신하는 게 아니고, 신앙을 믿는다고 이성을 버리는 게 아니에요.
이것이 바로 '화해'라는 말의 알맹이예요.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지점이 있어요.
알 킨디가 이성과 신앙을 완전히 똑같이 대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계시가 이성보다 더 높은 지식의 원천이라고 분명히 밝혔어요.
아무리 머리로 따져도 이성만으로는 신앙의 문제까지 다 풀어낼 수 없다고 봤거든요.
앞의 헬리콥터를 떠올리면, 걸어 오르는 길이 훌륭해도 정상을 직접 보고 내려온 사람의 말이 더 확실한 것과 비슷해요.
그에게 철학의 가장 높은 자리는 '제1철학'이었고, 그 목표는 신을 아는 데 있었어요.
그는 알무타심에게 바친 『제1철학론』 첫머리에서 이렇게 적었어요.
وأشرف الفلسفة وأعلاها مرتبة الفلسفة الأولى: أعني علم الحق الأول الذي هو علة كل حق
"철학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제1철학이다. 곧 모든 진리의 원인이 되는 최초의 진리에 관한 학문이다."
여기서 '최초의 진리'는 곧 신을 가리켜요.
알 킨디에게 철학을 끝까지 밀고 가면 결국 신에게 닿아요.
그래서 그는 철학과 신학을 뚜렷이 갈라놓지 않았어요.
뒷날 파라비와 이븐 시나는 형이상학이 본래 '존재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라며 이 점에 반대했지만, 그건 또 다른 글에서 만날 이야기예요.
알 킨디가 '화해'라는 말로 하고 싶었던 건 이거예요.
철학과 계시는 서로 다른 두 길이지만 같은 진리에 도착해요.
그러니 이성과 신앙은 원수가 아니에요.
다만 계시는 신이 직접 내려 주는 더 확실한 길이라 이성보다 위에 둬요.
이 태도 덕분에 그리스 철학은 이슬람 세계에서 내쳐지지 않고 뿌리내릴 수 있었고, 아랍어로 철학을 쓴 최초의 인물인 그는 '아랍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어요.
머리로 따지는 일과 마음으로 믿는 일을 꼭 갈라 세울 필요는 없다는, 천 년도 더 된 오래된 힌트인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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