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충은 하늘에 무슨 뜻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어요
천둥이 치면 하늘이 화났다고 믿던 사람들
옛날 사람들은 하늘을 무서운 어른처럼 여겼어요. 가뭄이 들면 "하늘이 임금한테 단단히 화가 났구나" 했고, 큰 홍수가 나면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해서 벌을 받는 거야" 했지요. 천둥이 우르릉 치면 하늘이 누군가를 혼내는 소리라고 생각했고요. 하늘이 우리를 늘 위에서 지켜보다가, 착하면 상을 주고 나쁘면 벌을 준다고 믿은 거예요.
지금 들으면 옛날이야기 같지만, 이천 년 전 중국에서는 이게 아주 진지한 '학문'이었어요. 가뭄이 들면 한 나라의 임금이 "내가 뭘 잘못했길래 하늘이 이러시나" 하고 반성문을 써서 백성에게 알릴 정도였으니까요. 그것도 그 시대에 가장 힘센 학자들이 다 같이 떠받치던 생각이었지요.
책방 앞에 서서 책을 읽던 가난한 아이
그 단단한 믿음 앞에서 "정말 그럴까요?" 하고 물은 사람이 있었어요. 후한이라는 나라에 살던 왕충이에요. 기원후 27년쯤에 태어나 일흔 살 무렵까지 산 사람이지요.
왕충은 집이 가난해서 책을 살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시장 책방 앞에 서서, 파는 책을 그냥 읽었대요. 한 번 읽으면 잊지 않아서, 그렇게 머릿속에 작은 도서관을 한 채 지은 셈이에요. 평생 모은 생각을 한 권으로 묶었는데, 그게 바로 '논형'이에요. 여든 편이 넘고 글자 수로는 이십만 자가 넘는, 꽤 두툼한 책이지요. '논형'이라는 이름은 '저울에 달아 따져 본다'는 뜻이에요. 떠도는 말들을 하나하나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재 보겠다는 거예요.
하늘은 무위, 일부러 아무 일도 하지 않아요
왕충의 가장 중요한 생각은 딱 한마디로 줄어들어요. "하늘은 무위다." 무위는 '일부러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화롯불을 떠올려 보세요. 불 옆에 앉아 있으면 몸이 따뜻해지지요. 그런데 불이 "저 아이를 따뜻하게 해 줘야지" 하고 마음먹어서 따뜻한 걸까요? 아니에요. 불은 그냥 타고 있을 뿐이고, 곁에 있는 사람이 그 온기를 받는 것뿐이에요. 왕충이 본 하늘이 딱 이래요. 하늘은 누구를 위해 무얼 해 주려고 마음먹지 않아요. 그저 자연스럽게 굴러갈 뿐이지요.
하늘은 우리 먹여 살리는 농부가 아니에요
그 시절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하늘이 우리 먹으라고 곡식을 길러 주고, 입으라고 옷감 재료를 내려 준다." 왕충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어요. 그 말대로라면 하늘이 사람 먹여 살리려고 밤낮 일하는 농부나 하인이 되는 셈이잖아요.
왕충의 설명은 이래요. 곡식은 그냥 자연스럽게 자라고, 사람은 그걸 가져다 먹는 것뿐이다. 하늘이 "옳지, 올해는 저 동네에 쌀을 키워 주자" 하고 일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부모와 아이 이야기로도 풀었어요. 엄마 아빠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지만, 아이의 눈 모양이나 키를 부모가 하나하나 정해서 빚어내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생겨나지요. 하늘과 땅이 온갖 것을 낳는 일도 이와 같아서, 누가 책상에 앉아 설계도를 그려 만드는 게 아니라고 본 거예요.
그래서 비는 하늘의 눈물이 아니에요
이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면 많은 게 달라져요. 가뭄이 든 건 임금이 나빠서 하늘이 내린 벌이 아니라, 그냥 그해 비가 안 온 거예요. 비는 하늘이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물기가 모였다가 떨어지는 거고요. 천둥도 하늘의 호통이 아니라 자연히 나는 소리지요.
왕충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 산 사람을 해친다는 이야기도 믿지 않았어요. 무서운 걸 억지로 안 믿은 게 아니라, 증거를 하나하나 따져 봤을 때 말이 안 된다고 본 거예요. 그는 늘 똑같이 물었어요. "그게 정말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나요?"
왕충이 오늘 우리에게 남긴 것
왕충이 대단한 건 답을 다 맞혀서가 아니에요. 그도 모르는 게 많았고 틀린 부분도 있었어요. 진짜 대단한 점은 태도예요. 모두가 당연하게 믿고, 나라에서 가장 힘센 학자들까지 떠받치는 이야기 앞에서도 "잠깐, 정말 그럴까?" 하고 멈춰 서서 따져 본 거지요. 그건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이 태도가 이천 년 뒤 과학이 하는 일과 많이 닮았어요. 무섭다고, 또 다들 그렇게 말한다고 그냥 따라 믿지 않고, 증거를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재 보는 것 말이에요.
정리
왕충은 후한 시대에 '논형'을 쓴 철학자예요. 그의 핵심 생각은 '하늘은 무위', 곧 하늘은 누구를 위해 일부러 무얼 해 주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곡식이 자라는 것도, 비가 오는 것도, 가뭄이 드는 것도 하늘의 상이나 벌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본 거지요.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멋진 정답이 아니라, 당연해 보이는 말도 한 번 저울에 달아 보는 의심하는 마음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