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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시험지를 받으면 우리는 머리를 써요. 차근차근 따지고, 답을 계산하죠. 그런데 좋아하는 친구가 갑자기 말을 걸면 머리는 하얘지고 가슴만 쿵쿵 뛰어요. 똑같은 나인데, 어떤 순간엔 머리가 앞서고 어떤 순간엔 마음이 먼저 움직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 둘을 자주 갈라놓았어요. 머리는 똑똑하고 믿을 만한 것, 마음은 자꾸 흔들리는 못 미더운 것이라고요. 그래서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이 칭찬처럼 쓰였죠. 그런데 백 년쯤 전, 한 일본 철학자는 여기에 고개를 갸웃했어요. 머리와 가슴이 정말 따로 노는 게 맞을까? 한쪽만 진짜이고 한쪽은 가짜일까? 그 질문을 평생 붙들고 산 사람이 바로 미키 기요시입니다.
미키 기요시는 1897년부터 1945년까지, 마흔여덟 해를 살았던 일본 철학자예요. 우리로 치면 증조할아버지 세대쯤 되는 사람이죠. 일본 교토에서 니시다 기타로라는 이름난 스승 밑에서 공부했고, 스물다섯 무렵 독일로 유학을 떠나 그곳 철학을 몇 년간 직접 배웠어요.
그가 특별했던 건, 서양에서 익힌 날카로운 논리와 동양에서 자란 마음의 감각을 한자리에 놓고 보려 했다는 점이에요. 보통은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잖아요. 서양식이냐 동양식이냐, 머리냐 가슴이냐. 그런데 미키는 "왜 꼭 하나만 골라야 하지?"라고 되물었어요. 이 고집스러운 질문이 그의 핵심 주제인 파토스와 로고스로 이어집니다.

로고스와 파토스는 원래 그리스에서 온 말이에요. 이름은 낯설지만 알맹이는 우리가 매일 겪는 것들이에요.
로고스는 '머리 쪽'이에요. 말, 논리, 이치, 따져 보는 힘이죠. 길을 잃었을 때 지도를 펴고 "여기서 왼쪽으로 두 블록"이라고 헤아리는 게 로고스예요. 파토스는 '가슴 쪽'이에요. 느낌, 끌림, 두근거림, 화가 나고 설레는 마음이죠. 같은 길에서 "이쪽 골목이 왠지 끌려" 하고 발이 먼저 움직이는 게 파토스예요.
오래된 생각은 이 둘 중 로고스만 진짜 믿을 만하다고 봤어요. 파토스는 잘 다스려야 할 골칫거리쯤으로 여겼죠. 그런데 미키는 가만히 들여다봤어요. 우리가 무언가를 진짜로 해내는 순간, 머리만 굴러서 된 적이 있던가? 가슴이 뜨겁지 않으면 머리는 애초에 움직일 이유조차 없잖아요. 반대로 마음만 뜨겁고 머리가 없으면 일은 엉망이 되고요.

그럼 따로 노는 것 같은 머리와 가슴을 무엇이 이어 줄까요? 미키가 찾은 답이 '구상력'이에요. 어렵게 들리지만, 머릿속에 아직 없는 걸 그려 내는 힘이라고 보면 돼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상력과 가까운 말이죠.
요리사를 떠올려 봐요. 냉장고에 달걀과 찬밥과 김치가 있어요. '맛있는 걸 먹고 싶다'는 건 가슴, 곧 파토스예요. '달걀은 익혀야 하고 밥은 데워야 한다'는 건 머리, 곧 로고스고요. 그런데 김치볶음밥이라는, 아직 식탁에 없던 한 그릇은 이 둘만 따로 있어서는 절대 안 나와요. 입맛과 조리법을 하나로 묶어 새 모양을 그려 내는 힘, 그게 바로 구상력이에요.
미키는 사람이 무언가를 만들고 역사를 바꾸는 일이 다 이렇게 일어난다고 봤어요. 뜨거운 마음과 차가운 머리가 구상력이라는 다리 위에서 만나,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가 태어난다는 거죠. 그래서 그는 이 생각을 '구상력의 논리'라고 불렀어요.
이 생각이 반가운 건, 우리를 반쪽으로 쪼개지 않아서예요. "넌 너무 감정적이야"라거나 "넌 너무 차갑고 계산적이야"라는 말은 사람을 한쪽으로 몰아붙이죠. 미키는 둘 다 너의 진짜 모습이고, 그 둘이 손을 잡을 때 비로소 새로운 게 만들어진다고 말해요.
미키는 안타깝게도 1945년, 전쟁이 끝난 직후에 감옥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서 '구상력의 논리'도 끝까지 다 쓰지 못한 채 남았죠. 그래도 머리와 가슴을 잇겠다는 그의 질문은, 동양과 서양 철학을 한 그릇에 담으려 한 보기 드문 시도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머리(로고스)와 가슴(파토스)을 따로 떼어 놓고, 머리만 믿을 만하다고 여겨요. 미키 기요시는 여기에 고개를 저으며, 둘을 잇는 다리로 '구상력', 곧 아직 없는 걸 그려 내는 힘을 내놓았어요. 김치볶음밥이 입맛과 조리법이 만나 태어나듯, 사람의 새로운 일은 뜨거운 마음과 차가운 머리가 만날 때 생긴다는 거죠. 다음에 누가 "넌 너무 감정적이야"라거나 "넌 너무 따진다"라고 하거든, 그 둘이 만나야 진짜 뭔가가 시작된다던 미키의 말을 떠올려 봐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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