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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가 말한 앎이 없는 지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걸까

더 모를수록 더 잘 보인다는 말
거울 하나를 떠올려 볼까요. 깨끗한 거울은 앞에 오는 건 뭐든 비춰요. 사과가 오면 사과를, 강아지가 오면 강아지를 그대로 보여 주죠. 그런데 누가 그 거울에 예쁜 꽃 그림을 미리 그려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 그 거울은 무엇이 와도 꽃 그림에 가려 제대로 비추지 못해요. 미리 가진 그림 하나가 오히려 보는 걸 방해하는 거예요.
지금으로부터 1600년쯤 전, 중국에 살았던 한 젊은 스님은 우리 마음도 이 거울과 같다고 봤어요. 그리고 좀 이상한 말을 남겼습니다. '참된 지혜에는 앎이 없다.' 아는 게 많아야 똑똑한 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앎이 없어야 진짜 지혜라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노자를 좋아하던 소년이 길을 바꾼 이야기
이 스님의 이름은 승조예요. 384년에 태어나 414년, 서른한 살 무렵에 세상을 떠난 짧은 삶이었어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남의 책을 베껴 주는 일을 하며 자랐는데, 그 덕분에 어릴 때부터 온갖 책을 읽을 수 있었대요.
처음 그가 푹 빠진 건 노자와 장자였어요. 세상의 이치를 멋지게 풀어 주는 글이었거든요. 그런데 읽을수록 어딘가 갈증이 남았어요. 그러다 '유마경'이라는 불교 경전을 만나고는 '바로 이거다' 하며 스님이 되기로 합니다.
마침 그때, 인도와 서역의 불교를 중국말로 옮기던 최고의 번역가 구마라집이 장안에 와 있었어요. 승조는 그 밑으로 들어가 가장 아끼는 제자가 됩니다.

모든 것은 정해진 모습이 없다는 생각
승조가 스승에게 배운 핵심은 '공'이라는 생각이었어요. 인도에서 건너온 '중관'이라는 사상의 알맹이죠. 말은 어렵지만 뜻은 의외로 단순해요.
물을 떠올려 보세요. 추우면 얼음이 되고, 데우면 김이 되어 날아가요. 그럼 물의 '진짜 모습'은 얼음일까요, 김일까요. 사실 어느 하나로 딱 정해진 게 아니에요. 조건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되는 거죠.
승조는 세상 모든 것이 이렇다고 봤어요. 무엇도 혼자 힘으로, 영원히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는 않아요. 다 다른 것들과 얽혀서 잠시 그런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에요. 이렇게 '정해진 알맹이가 없음'을 불교에서는 '공'이라고 불러요.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딱 붙잡을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이에요.

붙잡지 않아서 오히려 다 비추는 지혜
자, 이제 처음의 수수께끼로 돌아가요. 보통 '안다'는 건 무언가를 딱 정해서 붙잡는 일이에요. '저건 빨간 사과야' 하고 도장을 찍듯 정하는 거죠. 그런데 앞에서 봤듯 세상 모든 건 고정돼 있지 않아요. 그러니 하나로 딱 정해 붙잡는 앎은, 사실 자꾸 실제와 어긋날 수밖에 없어요. 거울에 그려 둔 꽃 그림처럼요.
승조가 말한 '앎이 없는 지혜', 곧 '반야무지'가 여기서 나와요. 참된 지혜는 무언가를 미리 정해 놓고 붙잡지 않아요. 그래서 '앎이 없다'고 한 거예요.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와도 있는 그대로 환히 비출 수 있어요. 아무 그림도 그려지지 않은 깨끗한 거울이 모든 걸 비추는 것처럼요.
그러니 '앎이 없다'는 건 멍하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이 아니에요. 오히려 어떤 편견도 없이 가장 또렷하게 안다는 뜻이에요. 모르는 게 아니라, 붙잡지 않는 앎인 거죠.

왜 이 작은 생각이 멀리 갔을까
승조가 살던 때, 중국 사람들에게 불교는 아직 낯선 외국 사상이었어요. 어려운 인도말 개념이 잔뜩 들어 있었거든요. 승조는 자기가 어릴 때부터 익힌 노자와 장자의 말을 빌려 이 낯선 생각을 풀어냈어요. 덕분에 중국 사람들이 '공'과 '존재'의 문제를 비로소 자기 말로 이해하게 됐죠.
그래서 승조의 글을 모은 '조론'은 중국 불교가 제 발로 서기 시작한 출발점으로 꼽혀요.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난 젊은 스님이 남긴 몇 편의 글이, 그 뒤로 천 년이 넘도록 읽힌 거예요.

정리
승조의 '앎이 없는 지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미리 정해 붙잡지 않기에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비추는 마음이에요. 꽃 그림을 지운 깨끗한 거울처럼요. 가난한 집 소년이 노자와 장자를 거쳐 불교에 이르러, 인도의 '공' 사상을 중국말로 또렷하게 풀어낸 결과죠. 다음에 무언가를 너무 빨리 단정하려는 자신을 발견하면, 잠깐 그 깨끗한 거울을 떠올려 봐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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