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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한때 칼리프의 자문관이었고 황태자의 스승이었던 노학자가, 60대에 바그다드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매를 맞았어요.
그것도 50대를요.
9세기 이슬람 세계 최고의 지식인 알 킨디가 맞은 거예요.
847년 무렵, 새 칼리프 알 무타와킬이 즉위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알 무타와킬은 그리스 철학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철학에 빠진 알 킨디를 정치적으로 불편한 존재로 봤어요.
그런데 이 틈을 이용한 자들이 있었어요.
바누 무나짐 형제예요.
이들은 천문학자 집안으로, 알 킨디와 오랫동안 경쟁해온 라이벌 가문이었어요.
형제는 칼리프에게 알 킨디를 밀고했고, 결국 알 킨디는 광장에서 매를 맞았어요.
그리고 그의 평생 수집물인 개인 도서관 킨디야는 통째로 바누 무나짐에게 압수됐어요.
책만 빼앗긴 게 아니었어요.
지식인으로서의 삶 자체가 끝난 거예요.
그런데 박해받기 전까지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면, 이 결말이 더 가혹하게 느껴져요.
9세기 바그다드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지식의 집합소가 있었어요.
칼리프 알 마문이 세운 바이트 알 히크마, 우리말로 '지혜의 집'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국립도서관과 MIT가 한 건물에 들어선 것이라고 보면 돼요.
알 킨디는 이곳에서 그리스 원전 번역을 총괄했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수학을 아랍어로 옮겼고,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도 번역했어요.
엔네아데스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핵심 텍스트인데, '아리스토텔레스 신학'이라는 잘못된 제목으로 번역됐어요.
이 실수 때문에 이후 수백 년간 학자들이 두 철학자의 사상을 뒤섞어 이해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다른 데 있어요.
알 킨디는 번역만 한 게 아니라 언어 자체를 만들었어요.
그리스어 '철학(philosophia)'을 아랍어로 가져오면서 al-falsafa라는 단어를 직접 만든 사람이 바로 알 킨디예요.
오늘날 아랍어권 전체에서 쓰이는 '철학'이라는 단어가 그의 작품이에요.
그러나 이 작업이 훗날 그를 위험에 빠뜨리는 씨앗이 됐어요.
당시 정통 무슬림들은 그리스 철학을 "이방인의 학문"이라고 경계했어요.
신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진리를 찾으려 한다는 게 불경스럽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알 킨디는 이렇게 주장했어요.
"진리가 어디서 왔든, 진리는 진리야. 그리스인이 발견했다고 해서 버릴 이유가 없잖아."
이 주장이 그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적을 만든 순간이기도 했어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한 앨런 튜링이 쓴 방법이 있어요.
글자가 등장하는 빈도를 세어서 패턴을 추적하는 빈도분석이에요.
그런데 9세기 바그다드의 알 킨디가 이미 이것을 글로 남겼어요.
원리는 이래요.
어떤 언어든 자주 쓰이는 글자가 있어요.
영어에선 'e'가 가장 많이 나오고, 아랍어엔 또 다른 패턴이 있어요.
아무리 복잡한 암호문이라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기호를 찾으면 거기서 실마리가 시작돼요.
알 킨디는 이것을 '암호 메시지 해독에 관한 논고'에 체계적으로 정리했어요.
셜록 홈즈 단편 '춤추는 인형'에서 홈즈가 암호를 깨는 장면이 바로 이 원리예요.
더 흥미로운 건 이 기법의 출처예요.
알 킨디는 코란 연구자들에게서 힌트를 얻었어요.
코란 학자들은 어떤 장이 먼저 쓰였는지 알아내기 위해 단어 빈도를 분석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알 킨디는 신학 도구를 암호해독에 가져왔어요.
신을 연구하는 방법이 첩보를 해독하는 도구가 된 거예요.
9세기 사람이 이걸 생각해냈다는 게, 솔직히 좀 무섭지 않나요.
노년에 매를 맞고 도서관을 빼앗긴 사람이 300년 뒤 유럽 최고 대학들의 필독서가 됐어요.
12세기, 스페인 톨레도에서 번역가들이 이슬람 세계의 학문을 라틴어로 옮기기 시작했어요.
이 '톨레도 번역 학파'는 아랍어로 보존된 그리스 철학과 이슬람 학문을 유럽에 전달한 문화 다리였어요.
알 킨디의 저작도 이때 알킨두스(Alkindus)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소개됐어요.
특히 '지성에 관하여(De Intellectu)'가 유럽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어요.
로저 베이컨,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책을 직접 읽고 자신의 저작에 인용했어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논리를 썼어요.
그 논리의 뼈대가 알 킨디에게서 왔어요.
이방인의 학문이라고 박해받은 바로 그 논리가, 300년 뒤엔 기독교 신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거예요.
결국 알 킨디를 때린 사람들은 역사에서 잊혔어요.
하지만 맞은 사람의 생각은 두 문명을 건너 살아남았어요.
그가 광장에서 무릎을 꿇던 그 순간, 자신의 책이 어디까지 여행할지 알았을까요.

알 킨디
Al-Kindi
801년
그리스 철학을 아랍으로 들여온 아랍의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5년
신앙과 이성을 화해시킨 중세 최대의 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기원전 384년
세상을 관찰하고 분류한, 거의 모든 학문의 출발점.

플로티노스
Plotinus
204년
모든 것이 하나(일자)에서 흘러나온다고 본 신플라톤주의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Albertus Magnus
1200년
자연을 폭넓게 탐구한 아퀴나스의 스승.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561년
아는 것이 힘, 관찰과 실험의 과학적 방법을 세운 사람.

로저 베이컨
Roger Bacon
1219년
실험과 관찰을 강조한 중세의 과학 선구자.

알 킨디
Al-Kindi
801년
그리스 철학을 아랍으로 들여온 아랍의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5년
신앙과 이성을 화해시킨 중세 최대의 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기원전 384년
세상을 관찰하고 분류한, 거의 모든 학문의 출발점.

플로티노스
Plotinus
204년
모든 것이 하나(일자)에서 흘러나온다고 본 신플라톤주의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Albertus Magnus
1200년
자연을 폭넓게 탐구한 아퀴나스의 스승.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561년
아는 것이 힘, 관찰과 실험의 과학적 방법을 세운 사람.

로저 베이컨
Roger Bacon
1219년
실험과 관찰을 강조한 중세의 과학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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