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당신이 가장 간절하게 원했던 것을 떠올려 보세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얼마나 오래 기다렸나요?
일주일? 한 달?
라마크리슈나는 6개월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기다림이 끝나던 날 밤, 그는 칼을 들었습니다.
1836년, 인도 벵골의 작은 마을 카마르푸쿠르.
가난한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 가다다르는 어릴 때부터 이상한 아이였습니다.
학교 공부보다 신을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고, 들판에서 혼자 황홀경에 빠지는 일이 잦았습니다.
어머니는 걱정했고,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청년이 된 그는 형을 따라 콜카타 북쪽, 갠지스강 변의 닥쉬네스와르 사원에 사제로 들어갔습니다.
칼리 여신을 모시는 그 사원에서, 그는 매일 아침 꽃을 바치고 등불을 켜고 의식을 집전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여신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돌로 깎인 여신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여신을.
다른 사람들이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저 말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맛보듯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참을 수 없어진 그는 사원 벽에 걸린 의식용 칼을 내렸습니다.
"당신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것으로 목숨을 끊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 그의 말에 따르면 — 사원 전체가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빛 속에서 칼리 여신이 나타났고, 그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라마크리슈나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의심하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는 광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는 종교를 머리로만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소금 한 꼬집을 물에 넣어본 적 있나요?
처음에는 소금이 소금입니다.
하얗고, 딱딱하고, 분명히 거기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소금은 사라집니다.
물이 소금이 되고, 소금이 물이 됩니다.
경계가 없어집니다.
라마크리슈나가 설명한 삼매(사마디)가 정확히 이 상태입니다.
"나"라는 소금이 "전체"라는 물에 녹아드는 것.
개인의 의식이 우주의 의식으로 흡수되는 것.
더 이상 "내가 신을 본다"가 아니라, "나와 신이 구별되지 않는" 상태.
물론 이것은 비유입니다.
그 경험 자체를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라마크리슈나 본인도 그 점을 인정했습니다.
소금이 물속에 들어가 버리면, 돌아와서 물맛이 어땠는지 말해줄 수가 없다고.
하지만 바깥에서 관찰한 기록은 남아 있습니다.
닥쉬네스와르 사원의 동료들에 따르면, 라마크리슈나는 갑자기 굳어버리는 일이 잦았습니다.
눈은 반쯤 뜬 채 초점이 없고, 몸은 움직이지 않으며, 호흡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상태가 몇 시간씩, 때로는 며칠씩 이어졌습니다.
음식도 먹지 않았고 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누가 팔다리를 들어올리면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었습니다.
사람들은 당황했습니다.
의사를 불렀고, 의식을 치렀고, 강가에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멀쩡하게 돌아왔습니다.
오히려 더 생생한 눈빛으로.
오늘날의 신경과학자들은 이 상태에 대해 여러 이론을 제시합니다.
측두엽 간질, 해리 장애, 극도의 명상 상태.
라마크리슈나 본인은 그런 설명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맛이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상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원했습니다.
자꾸 돌아갔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나기 싫어 다시 눈을 감는 것처럼.
자, 여기서 이야기가 흥미로워집니다.
라마크리슈나는 힌두교 사제였습니다.
칼리 여신을 모시고, 베다 찬가를 외우고, 힌두 수행법으로 수년간 훈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한 가지 궁금증을 품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거기서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직접 실험해보기로 했습니다.
1866년, 그는 수피 스승 고빈다 로이를 만났습니다.
수피즘은 이슬람 신비주의 전통입니다.
라마크리슈나는 이슬람식 옷을 입었습니다.
이슬람식 기도를 했습니다.
알라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 그는 다시 삼매에 빠졌습니다.
칼리 여신을 부를 때와 같은 그 상태로.
몇 년 후, 이번에는 기독교 신자에게서 성경을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독교식 묵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 후 — 같은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이 실험은 당시 인도 사회에서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힌두교 사제가 이슬람 복장을 한다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가 이 경험들에서 끌어낸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강이 어디서 시작되든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 가듯이, 어떤 종교의 길을 걷든 충분히 깊이 들어가면 같은 곳에 도달한다.
그에게 종교 간의 차이는 강의 이름 차이였습니다.
갠지스강이라 부르든, 나일강이라 부르든, 라인강이라 부르든 — 물은 같은 물이고, 바다는 같은 바다입니다.
물론 그는 이것이 "모든 종교가 같다"는 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강마다 물살이 다르고, 풍경이 다르고, 돌아가는 길이 다릅니다.
그 차이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단지, 강에만 집착해서 바다를 잊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원에서 나와 강변을 걸으며 그가 자주 한 말이 있습니다.
"맛을 봐야 압니다.
설탕에 대한 글을 아무리 읽어도 단맛은 모릅니다."
1881년, 닥쉬네스와르 사원에 낯선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콜카타 최고의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었습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했고, 존 스튜어트 밀을 읽었으며, 서양 철학과 과학에 밝았습니다.
이름은 나렌드라나트 닷타 — 훗날 세계가 알게 될 이름으로는 비베카난다.
그는 회의주의자였습니다.
브라흐모 사마지라는 개혁적 종교 단체에 속해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신을 직접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친구의 권유로 이 별난 사제를 만나러 온 것이었습니다.
첫 만남은 나렌드라에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의 이유가 예상 밖이었습니다.
라마크리슈나는 그를 보자마자 어린아이처럼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드디어 왔구나.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었습니다.
나렌드라는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날 라마크리슈나는 나렌드라에게 노래를 청했습니다.
나렌드라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라마크리슈나는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나렌드라의 가슴에 살짝 댔습니다.
나렌드라의 말에 따르면 그 순간 세계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죽는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의식이 흐릿해졌다고 합니다.
그는 소리를 질렀고, 라마크리슈나는 웃으며 손을 떼었습니다.
나렌드라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계속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사기꾼인가, 아니면 진짜인가?'
그는 몇 번을 더 찾아갔습니다.
매번 의심하고, 따지고, 논쟁했습니다.
라마크리슈나는 한 번도 화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좋아했습니다.
"의심하는 것이 맞다.
다른 사람 말은 믿지 마라.
직접 확인해라."
라마크리슈나가 나렌드라를 붙잡은 것은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논리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살아 있는 힘이었습니다.
나렌드라는 몇 년의 씨름 끝에 결국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라마크리슈나가 세상을 떠난 뒤, 스와미 비베카난다가 된 나렌드라는 1893년 시카고 세계 종교 의회에 섰습니다.
"자매 형제 여러분"이라는 첫마디에 청중이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힌두 철학을 서양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소개한 그 연설 뒤에는, 맨발의 사제에게서 받은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라마크리슈나가 살았던 19세기 인도는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영국 식민지배 아래서 힌두교와 이슬람교는 갈수록 날카롭게 부딪혔습니다.
서양 문명과 전통 인도 문화는 서로 밀어냈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어디에 서야 할지 — 사람들은 길을 잃었습니다.
그 시대에 라마크리슈나는 이슬람 옷을 입고 기독교 기도를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선언이었습니다.
"나는 모든 길이 가닿는 곳을 직접 걸어가서 확인했습니다."
15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더 많은 종교에 대한 지식이 인터넷에 넘쳐납니다.
그런데 동시에, 종교 갈등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체성은 더 단단하게 굳어지고, 서로를 향한 불신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라마크리슈나라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지식이 너무 많고, 맛본 것이 너무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르침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직접 경험'에 대한 고집이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이것이 진리다, 이것을 믿어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확인해라.
맛을 봐라.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영성을 찾는 사람들에게 낯설면서도 익숙한 말입니다.
요가를 하고, 명상을 배우고, 다양한 종교 전통을 탐색하는 현대인들.
그들이 찾는 것이 바로 이것, 즉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아는 것, 설명이 아닌 경험입니다.
라마크리슈나는 그 욕구가 틀리지 않다고 말합니다.
다만 한 가지를 추가합니다.
강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에 집착하지 말고,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라고.
물론 그의 이야기에는 풀리지 않는 질문들도 많습니다.
삼매가 진짜 신적 경험인지 뇌의 특수한 상태인지, 우리는 여전히 모릅니다.
"모든 종교가 같은 진리를 향한다"는 주장이 각 종교의 차이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건 아닌지, 신학자들은 지금도 논쟁합니다.
하지만 그가 던진 하나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을 직접 맛봤습니까?
아니면 들어서 알고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모든 종교는, 모든 철학은, 모든 이데올로기는 동등하게 겸손해집니다.
19세기 인도의 가난한 브라만 사제는 읽지 못한 책이 많았고, 가 본 나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했습니다.
믿고 싶은 것을 믿지 않고, 직접 확인하러 떠났습니다.
힌두교라는 강에서 이슬람이라는 강으로, 다시 기독교라는 강으로.
그리고 매번 같은 바다에 도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결국 당신이 직접 강에 들어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