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당신이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성경 구절을 외우고, 라틴어 문법을 익히고, 졸업 후엔 조용한 교구에서 설교나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누군가 당신 앞에 암호문 한 장을 내밀며 말합니다.
"이거 해독할 수 있겠어?"
1642년, 영국은 왕과 의회가 서로 칼을 들이대던 내전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존 월리스는 그해 스물여섯 살이었고,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어느 저녁 식사 자리에서 친구가 왕당파의 암호문을 꺼내 들었습니다.
장난처럼 건네받은 그 종이를 월리스는 단 두 시간 만에 풀어냈습니다.
수학을 따로 배운 적도 없이, 그냥 패턴이 보였다고 합니다.
이 소문은 의회파의 귀에 들어갔고, 월리스는 곧 군사 암호 해독가로 발탁되었습니다.
신학도가 첩보원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옥스퍼드 기하학 교수 자리에 앉았습니다.
암호 해독으로 단련된 그 눈 — 숨겨진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 — 은 이제 수학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향했습니다.
무한이라는 괴물을 향해서요.
"무한히 크다"는 걸 어떻게 표현할까요?
지금 우리에겐 ∞가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씁니다.
하지만 월리스 이전의 수학자들은 이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많은 수"를 표현하려면 매번 "그 수는 모든 유한한 양보다 크다"고 문장으로 풀어써야 했습니다.
수식 한 줄에 설명문 두 줄이 딸려 나오는 셈이었죠.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논문이 온통 말로 가득 찼습니다.
1655년, 월리스는 《무한 산술(Arithmetica Infinitorum)》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를 썼습니다.
왜 하필 눕힌 8이냐고요?
정확한 이유를 월리스 본인이 남긴 기록은 없습니다.
가장 유력한 설명은 로마 숫자 1000을 뜻하던 기호 CIƆ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로마인들은 1000을 '엄청 많은 수'의 대표로 썼고, 그 기호가 변형되어 ∞가 되었다는 가설입니다.
또 다른 설은 그리스 문자 오메가(ω)에서 비롯됐다는 것이고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확실히 모릅니다.
중요한 건 이겁니다.
월리스가 그 기호를 쓰자마자, 수학자들이 "아, 이거 좋은데?" 하고 너도나도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기호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를 처음 본 사람도 뭔가 끝없이 뻗어나가는 느낌이 든다면, 그 기호는 이미 성공한 겁니다.
무한은 원래 철학자들의 언어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한을 "잠재적으로만 존재한다"고 했고, 수학자들은 이 개념을 계산에 끌어들이길 두려워했습니다.
무한과 장난치면 역설이 터졌으니까요.
제논의 역설처럼요 — 아킬레스는 왜 거북이를 영원히 못 따라잡느냐고.
월리스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무한을 철학의 방에서 끌어내 수학의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π라는 보물을 캐냈습니다.
원의 지름과 둘레의 비율인 π는 수학 역사에서 가장 집요하게 추적된 숫자입니다.
고대 이집트인은 3.16이라고 했고, 아르키메데스는 96각형을 그려가며 3.14159... 근처까지 좁혔습니다.
그런데 월리스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π에 접근했습니다.
분수들을 줄줄이 곱하는 방법으로요.
월리스의 무한곱을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π/2 = (2/1) × (2/3) × (4/3) × (4/5) × (6/5) × (6/7) × …
처음엔 "이게 뭔데?" 싶습니다.
분수들을 그냥 곱하는데, 왜 갑자기 π가 튀어나오는 거냐고요.
비유를 하나 들어볼게요.
당신이 어두운 방에서 손전등을 들고 벽에 원을 그리려 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처음에 대충 그리면 원이 비뚤빕니다.
한 번 더 수정하면 조금 나아집니다.
또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계속 수정할수록 완벽한 원에 가까워집니다.
무한히 수정하면, 그게 바로 완벽한 원입니다.
월리스의 공식도 똑같습니다.
처음 몇 개만 곱하면 π/2 근처를 얼쩡댑니다.
점점 더 많이 곱할수록 더 가까워집니다.
무한히 곱하면, 그게 정확히 π/2입니다.
왜 이게 중요하냐고요?
그 전까지 π를 구하는 방법은 전부 기하학이었습니다.
도형을 그리고, 변의 길이를 재고, 근사치를 구하는 방식이었죠.
월리스는 처음으로 순수한 수 계산만으로 π를 만들어냈습니다.
도형 없이, 자 없이, 그냥 분수 곱셈만으로요.
이건 수학에서 "오, 진짜?" 소리가 나오는 발견입니다.
나중에 뉴턴이 이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자신의 방법을 발전시켰으니, 이 공식은 단순한 π 근사값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수학의 역사를 바꾼 씨앗이었습니다.
젊은 아이작 뉴턴이 케임브리지에 입학했을 때, 그는 혼자서 수학책을 파고들었습니다.
교수한테서 제대로 배운 게 없다고 스스로 인정할 정도였죠.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읽은 수학책 중 하나가 바로 월리스의 《무한 산술》이었습니다.
훗날 뉴턴은 이 책에서 자신의 이항 정리 아이디어가 싹텄다고 회고했습니다.
월리스가 씨앗을 심었고, 뉴턴이 나무를 키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단순한 스승-제자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684년,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수학 세계가 뒤집혔습니다.
"뉴턴이 먼저냐, 라이프니츠가 먼저냐?"
이 논쟁은 단순한 학문적 토론이 아니었습니다.
영국 대 독일, 왕립학회 대 대륙 학자들의 자존심 싸움이었습니다.
월리스는 이 전쟁에서 맹렬히 뉴턴 편에 섰습니다.
그는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아이디어를 훔쳐갔다고 주장했고, 공개 서한을 써대며 독일 학자들과 싸웠습니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 죽을 때까지 이 논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뉴턴 자신보다 더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역사적 사실은 둘 다 독립적으로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뉴턴이 조금 먼저였지만, 라이프니츠가 먼저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쓰는 미적분 기호(∫, dx)는 라이프니츠 것입니다.
월리스의 싸움이 결과적으로 영국 수학을 고립시켰다고 보는 역사가들도 있습니다.
뉴턴의 기호만 고집하다 보니, 영국 수학이 한 세기 동안 대륙에 뒤처졌다는 것입니다.
충성이 학문을 막은 아이러니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노인의 고집 센 성격은 한편으로는 그가 평생 수학에 바친 뜨거운 열정의 다른 얼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스마트폰을 꺼내서 계산기 앱을 열어보세요.
1을 0으로 나눠보세요.
화면에 뭐가 뜨나요?
"∞" 또는 "오류" 중 하나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든, 그 뒤에는 월리스가 1655년에 책 한 줄에 슥 그어 넣은 기호가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를 봅니다.
수학 교과서에서, 물리학 공식에서, 심지어 패션 브랜드 로고에서도요.
이 기호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게 좋은 발명의 특징입니다.
너무 당연해져서 발명품인지도 모르게 되는 것.
월리스의 유산은 기호 하나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무한곱 공식은 오늘날 양자역학 계산에 등장합니다.
무한급수를 다루는 수학 분야 전체가 그의 작업 위에 지어졌습니다.
전화 통화가 끊기지 않게 신호를 처리하는 기술, GPS가 위치를 계산하는 방식, AI가 이미지를 인식하는 알고리즘 —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무한을 계산 가능하게 만든 수학이 있습니다.
월리스가 없었다면 이 수학이 얼마나 늦게 발전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월리스는 수학자로 훈련받지 않았습니다.
신학도였고, 암호 해독은 취미처럼 시작했으며, 기하학 교수가 된 건 거의 우연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사람이 무한이라는 인류 최대의 수학적 수수께끼 중 하나를 정면으로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누운 숫자 8 하나로, 그 괴물을 길들였습니다.
어쩌면 이게 수학이 주는 가장 이상한 선물인지도 모릅니다.
끝없는 것을 종이 위의 기호 하나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
∞ — 너비도 높이도 없지만,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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