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겨울에 문손잡이를 잡다가 찌릿한 적 있나요?
스웨터를 벗을 때 머리카락이 쭈뼛 선 적은요?
그게 바로 전기입니다.
우리는 매일 전기를 쓰지만, 전기가 뭔지 제대로 알게 된 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240년 전, 이탈리아의 한 도시에서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의사가 죽은 개구리를 해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죽은 개구리의 다리가 퍼덕 하고 움직인 겁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요.
의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잠깐, 이 개구리는 분명히 죽었는데?"
그는 다시 한번 금속 도구로 개구리의 다리를 건드려 봤어요.
또 움찔.
이건 마법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과학이었어요.
그리고 이 장면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결국 배터리, 심장박동기, 그리고 소설 『프랑켄슈타인』까지 만들어냅니다.
그 의사의 이름은 루이지 갈바니입니다.
루이지 갈바니(Luigi Galvani)는 1737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습니다.
볼로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는 도시예요.
갈바니는 그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나중에는 해부학 교수가 됩니다.
해부학이란 생물의 몸을 열어서 구조를 살펴보는 학문이에요.
갈바니는 매일 동물의 몸을 열어보며, 근육과 신경이 어떻게 생겼는지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왜 의사가 전기에 관심을 가졌을까요?
사실 그 시대, 유럽은 전기에 열광하고 있었거든요.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이 번개 치는 날 연을 날려서 "번개가 곧 전기"라는 걸 증명한 게 1752년이었어요.
이 소식이 유럽에 퍼지자, 과학자들 사이에서 전기 연구가 대유행이 됩니다.
사람들은 전기를 마법 같은 힘이라고 생각했어요.
병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죽은 것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갈바니도 그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궁금해졌어요.
"전기가 생물의 몸에서도 뭔가 역할을 하는 걸까?"
이 질문 하나가 역사를 바꿉니다.
1780년대 어느 날, 갈바니의 실험실에서 그 유명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조수가 금속 메스로 죽은 개구리의 신경을 건드렸는데, 바로 그 순간 개구리 다리가 격렬하게 움찔한 거예요.
공교롭게도, 옆에 있던 정전기 발생 장치가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갈바니는 생각했어요.
"혹시 전기 때문에 다리가 움직인 건 아닐까?"
그는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개구리 다리에 두 종류의 금속 — 구리와 철 — 을 동시에 대 봤어요.
다리가 움찔했습니다.
번개가 치는 날 밖에 개구리 다리를 걸어두면?
역시 움직였어요.
갈바니는 확신합니다.
"개구리의 몸 안에 전기가 들어있다!"
그는 이것을 "동물 전기"(animal electricity)라고 불렀어요.
비유로 설명하면 이래요.
우리가 리모컨 안에 건전지가 있다는 걸 알잖아요?
갈바니는 생물의 몸도 일종의 건전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개구리 근육이 전기를 저장하고 있고, 금속이 그 전기를 흐르게 해서 다리가 움직인다고 본 거예요.
그리고 놀랍게도, 이 생각은 반은 맞았습니다.
우리 몸에는 정말로 전기 신호가 흐르거든요.
지금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것도 뇌에서 눈으로 전기 신호가 오가기 때문이에요.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심장이 뛰는 것도 전부 전기 신호 덕분입니다.
갈바니는 세계 최초로 "생물의 몸에 전기가 흐른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보여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에는 갈바니 말고 전기를 연구하는 또 다른 과학자가 있었어요.
그의 이름은 알레산드로 볼타.
볼타는 갈바니의 실험 결과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잠깐, 정말 전기가 개구리한테서 나오는 거야?"
볼타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그는 핵심이 개구리가 아니라 두 종류의 금속이라고 봤습니다.
서로 다른 금속을 대면 그 사이에서 전기가 생기는 거지, 개구리가 전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개구리는 그저 전기가 흐르는 걸 보여주는 탐지기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마치 바람이 부는지 알려면 나뭇잎을 보면 되잖아요.
바람을 만드는 건 나뭇잎이 아니라 대기인데, 나뭇잎이 흔들리니까 바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처럼요.
두 사람의 논쟁은 1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학계가 둘로 나뉘었어요.
"갈바니가 맞다!" vs "볼타가 맞다!"
그리고 1800년, 볼타는 자기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엄청난 것을 만들어냅니다.
구리 판과 아연 판을 소금물에 적신 천과 번갈아 쌓아올린 장치.
이 탑에서 전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개구리 없이도요.
이것이 세계 최초의 배터리, 볼타 전지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쓰는 스마트폰 배터리의 먼 조상이에요.
전압의 단위 볼트(Volt)가 바로 볼타의 이름에서 왔습니다.
그러면 갈바니는 완전히 틀린 걸까요?
아닙니다.
볼타가 맞긴 했지만, 갈바니도 맞았어요.
전기가 금속 사이에서 생긴다는 볼타의 말은 옳았습니다.
하지만 생물의 몸에도 전기가 흐른다는 갈바니의 직관 역시 정확했어요.
둘 다 맞았는데, 서로 다른 면을 보고 있었던 겁니다.
갈바니의 발견은 과학의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갔습니다.
첫 번째 갈래는 신경과학이에요.
"몸에 전기가 흐른다"는 발견 덕분에, 과학자들은 신경이 전기 신호로 정보를 전달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지금 병원에서 뇌파를 측정하는 EEG 검사, 심장의 전기 신호를 보는 심전도 검사 모두 갈바니의 발견에서 출발한 거예요.
두 번째 갈래는 의료 기기입니다.
심장이 멈추려 할 때 전기 충격을 줘서 다시 뛰게 하는 심장박동기.
이것도 "근육은 전기에 반응한다"는 갈바니의 실험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세 번째 갈래는 의외의 곳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문학이에요.
갈바니가 죽은 뒤, 그의 조카 조반니 알디니는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체에 전기를 흘려보내는 공개 실험을 했습니다.
죽은 사람의 얼굴이 찡그려지고, 팔이 들리고, 눈이 떠지는 끔찍한 광경.
사람들은 경악하면서도 열광했어요.
"혹시 전기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건 아닐까?"
이 소문은 영국의 한 젊은 작가에게 닿습니다.
1818년, 열아홉 살의 메리 셸리는 소설 한 편을 발표합니다.
과학자가 시체를 모아 전기로 생명을 불어넣는 이야기.
바로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세계 최초의 SF 소설이라 불리는 이 작품의 뿌리에, 갈바니의 개구리 다리가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하나 더.
영어에 "galvanize"라는 단어가 있어요.
"사람들을 행동하게 만들다", "충격을 줘서 깨우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바로 갈바니의 이름에서 왔어요.
죽은 개구리 다리에 전기를 흘려 움직이게 한 것처럼, 무언가에 충격을 줘서 움직이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240년 전, 볼로냐의 어느 실험실에서 죽은 개구리 다리가 움찔했습니다.
그 작은 경련 하나가 배터리를 낳고, 신경과학을 낳고, SF 문학을 낳고, 심장박동기를 낳았습니다.
갈바니는 개구리 다리에서 전기를 발견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가 진짜 발견한 것은 더 큰 것이었어요.
우리 몸 자체가 전기로 움직이는 기계라는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뇌에서는 전기 신호가 바쁘게 오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오, 신기하다"라고 느끼는 그 감정도, 아주 작은 전기의 흐름이에요.
갈바니의 개구리가 여러분 안에서도 여전히 움찔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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