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오늘 아침, 체중계에 올라가 봤나요?
숫자가 뜨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 내 몸무게가 이만큼이구나" 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한 번도 이런 질문을 해본 적 있나요?
"지구의 무게는 얼마일까?"
체중계 위에 지구를 올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줄자로 지구를 감쌀 수도 없고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건 답할 수 없는 질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230년 전, 이 "불가능한 질문"에 진지하게 답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 사람이 사용한 도구가 납덩어리 몇 개와 가느다란 철사 한 줄이 전부였다는 겁니다.
그의 이름은 헨리 캐번디시.
영국의 귀족이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실험 과학자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이 이름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만큼 유명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사람이 무서웠거든요.
캐번디시는 1731년,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공작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도 귀족이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녔고, 물려받은 재산은 오늘날 가치로 수천억 원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돈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매일 같은 옷을 입었고 — 한 세대 전에 유행했던 낡은 보라색 코트를 고집했습니다.
은행에서 "이렇게 큰돈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투자하셔야 합니다"라고 하자 "귀찮게 하지 마세요"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돈보다 더 무관심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캐번디시는 극도로 수줍음이 많았습니다.
"수줍음"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집에서 하녀와 복도에서 마주치면, 말 한마디 없이 돌아서 도망쳤습니다.
결국 하인들에게 지시를 내릴 때는 쪽지를 사용했습니다.
"오늘 저녁은 양고기 한 접시." 이런 식으로요.
과학자들이 모이는 왕립학회 만찬에는 참석했지만, 행동이 독특했습니다.
방 한쪽 구석에 서서 벽만 바라보다가, 누군가 말을 걸면 높은 소리로 끽끽거리며 자리를 피했다고 합니다.
특히 여성 앞에서는 더 심했는데, 여성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몸을 돌려 뛰어나갔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을까요?
비밀은 간단합니다.
사람을 피한 시간만큼, 그는 실험실에 있었습니다.
캐번디시의 런던 저택은 거의 전부가 실험실이었습니다.
거실에는 실험 장비가 가득했고, 응접실은 작업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수십 년 동안 혼자서 실험하고 측정하고 계산했습니다.
세상과 대화하는 대신, 자연과 대화하는 쪽을 택한 셈입니다.
1766년, 서른다섯 살의 캐번디시는 조용히 한 편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과학계가 술렁였습니다.
실험은 이랬습니다.
아연 조각을 유리병에 넣고, 그 위에 강한 산(염산 같은 액체)을 붓습니다.
그러면 금속 표면에서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옵니다.
이 기포를 모아서 병에 담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가 모입니다.
캐번디시는 이 기체에 불을 가져다 댔습니다.
펑!
기체가 불꽃을 내며 탔습니다.
그는 이것을 "불붙는 공기(inflammable air)"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수소라고 부르는 물질의 첫 발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발견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이 "불붙는 공기"를 태우고 나면 뭐가 남을까요?
재? 연기?
아닙니다.
유리병 안쪽에 맑은 물방울이 맺혔습니다.
불을 붙였더니 물이 된 겁니다.
이것은 당시 과학계를 뒤흔든 발견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물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근본 물질, 즉 원소라고 믿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만물은 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2천 년 넘게 이어져 왔으니까요.
그런데 캐번디시가 보여준 건 이런 거였습니다.
수소(불붙는 공기)와 산소(당시에는 "탈플로지스톤 공기"라 불렀습니다)를 합치면 물이 된다.
거꾸로 말하면, 물은 두 가지 기체가 합쳐진 화합물이라는 뜻이었습니다.
2천 년 된 상식이 무너진 순간이었습니다.
물은 원소가 아니었습니다.
수줍어서 사람 눈도 못 마주치는 이 남자가, 인류의 오래된 믿음 하나를 조용히 깨뜨린 겁니다.
캐번디시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말년에 찾아옵니다.
1798년, 그의 나이 예순일곱.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지구의 무게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요?
비유를 하나 들어볼게요.
자석 두 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 서로 끌어당기죠?
가까이 놓을수록 더 세게 끌어당깁니다.
이 "끌어당기는 힘"이 얼마나 센지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면, 자석이 얼마나 강한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만유인력도 같은 원리입니다.
모든 물체는 서로를 끌어당깁니다.
사과와 지구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연필과 지우개도 서로 끌어당기고 있어요.
다만 그 힘이 너무너무 작아서 느낄 수 없을 뿐입니다.
캐번디시는 이 "너무너무 작은 힘"을 측정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의 장치를 상상해 볼까요?
가느다란 철사 끝에 막대를 매답니다.
막대의 양쪽 끝에는 작은 납 공을 하나씩 붙입니다.
이 장치를 천장에 매달면, 납 공들이 아주 살짝만 건드려도 철사가 비틀리면서 회전합니다.
마치 실에 매단 팽이처럼요.
이제 작은 납 공 옆에 커다란 납 공을 가져다 놓습니다.
큰 공의 중력이 작은 공을 아주 미세하게 끌어당깁니다.
그러면 철사가 아주 조금 비틀립니다.
"아주 조금"이 얼마나 조금이냐고요?
머리카락 한 올의 두께보다 작은 움직임입니다.
캐번디시는 이 미세한 움직임을 측정하기 위해 놀라운 정성을 쏟았습니다.
실험 장치를 밀폐된 방에 넣고, 자신은 방 밖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했습니다.
자기 몸의 체온이 공기를 데워서 결과를 흔들까 봐 방에 들어가지도 않은 겁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그는 두 납 공 사이의 끌어당기는 힘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숫자를 뉴턴의 만유인력 공식에 대입하면, 지구의 질량이 나옵니다.
캐번디시가 계산한 지구의 밀도는 물의 5.448배.
현대 과학이 측정한 값은 5.515배입니다.
230년 전, 납 공 몇 개와 철사로 얻은 값이 오차 1% 수준이었던 겁니다.
67세의 은둔자가 지하실에서 지구를 저울에 올려놓은 순간이었습니다.
헨리 캐번디시가 세상을 떠난 건 1810년, 일흔아홉 살 때였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그다웠습니다.
임종이 다가오자 하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날 보지 마. 내가 부를 때까지 오지 마."
그리고 혼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그의 사후에 시작됩니다.
약 70년 뒤인 1879년, 물리학의 거장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캐번디시의 실험 노트를 정리하게 됩니다.
서랍 속에서 쏟아져 나온 노트를 읽던 맥스웰은 경악했습니다.
캐번디시는 전기가 물질을 통과하는 법칙을 이미 알아냈습니다.
이것은 1827년에 게오르크 옴이 발표해서 "옴의 법칙"이라 불리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캐번디시는 옴보다 수십 년 먼저 같은 결론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전하를 띤 물체 사이의 힘을 설명하는 법칙도 노트에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은 1785년에 샤를 드 쿨롱이 발표해서 "쿨롱의 법칙"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캐번디시가 먼저였습니다.
화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기의 성분을 분석하다가, 공기 속에 질소와 산소 말고도 뭔가 다른 기체가 아주 조금 섞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기체는 100년 뒤에야 아르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이 모든 발견이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왜 발표하지 않았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유력한 추측은 이겁니다.
발표하려면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합니다.
질문을 받아야 하고, 논쟁을 해야 하고, 편지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캐번디시에게 이것은 실험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는 명성이 필요 없었습니다.
돈은 이미 넘쳤고, 지위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가 원한 건 오직 하나,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는 것 그 자체였습니다.
세상에 알려지든 말든 상관없이, 진실을 향해 조용히 걸어간 사람.
사람의 눈은 피했지만, 자연의 비밀은 끝까지 쫓은 사람.
과학사에는 박수를 원해서 무대에 오른 사람이 많습니다.
캐번디시는 박수가 두려워서 무대 뒤에 숨었지만, 그가 남긴 것은 무대 위 그 누구 못지않게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지구의 질량은 약 6조의 1조 배 킬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230년 전 어느 수줍은 노인이 지하실에서 납 공을 바라보며 보낸 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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