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농구공을 골대를 향해 던져 본 적 있나요?
손을 떠난 공은 하늘로 올라갔다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내려옵니다.
그 곡선의 이름은 포물선이에요.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도 포물선.
놀이터에서 친구에게 던진 공도 포물선.
우리는 매일 이 곡선을 보면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이 곡선에 이름을 붙이고, 그 성질을 낱낱이 밝혀낸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 고대 그리스에 살았던 수학자 아폴로니우스예요.
아폴로니우스는 지금의 터키 남부, 페르가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기원전 262년쯤이니까,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도 전이에요.
그는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건너가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이 사람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것은 놀랍도록 단순한 도형이었어요.
바로 원뿔.
아이스크림 콘처럼 생긴 그 뾰족한 도형 말이에요.
"원뿔을 연구해서 뭘 하려고?"
당시에도 이런 질문을 받았을 거예요.
하지만 아폴로니우스는 묵묵히 원뿔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주의 비밀이 쏟아져 나왔어요.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 상상해 보세요.
위가 뾰족하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그 모양이요.
이제 칼을 하나 들고, 이 콘을 여러 방향으로 잘라 봅시다.
바닥과 수평으로 싹둑 자르면?
잘린 단면은 동그란 원이 됩니다.
살짝 비스듬히 자르면?
동그라미가 옆으로 찌그러진 모양, 바로 타원이 나와요.
달걀을 옆에서 본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번에는 원뿔의 옆면과 나란하게 자릅니다.
그러면 곡선이 한쪽으로 끝없이 뻗어나가는 모양이 되는데, 이게 포물선이에요.
아까 농구공이 그리던 바로 그 곡선이요.
마지막으로 원뿔을 거의 수직으로 자르면?
곡선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 양쪽으로 벌어집니다.
이것이 쌍곡선이에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원뿔 하나, 칼 하나, 자르는 각도만 달리하면 네 가지 곡선이 나와요.
원, 타원, 포물선, 쌍곡선.
이 넷을 합쳐서 원뿔곡선이라고 부릅니다.
아폴로니우스는 이 원뿔곡선의 성질을 무려 8권짜리 책으로 정리했어요.
제목은 '원뿔곡선론'.
그중 앞의 4권은 지금까지 그리스어 원본이 남아 있고, 뒤의 3권은 아랍어 번역으로만 전해져요.
마지막 8권은 안타깝게도 영영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2,200년 전에 쓰인 이 책의 내용이 지금 읽어도 틀린 게 없다는 거예요.
수학이란 게 원래 그렇습니다.
한번 증명된 진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거든요.
아폴로니우스가 세상을 떠나고 1,800년이 흘렀어요.
16세기 말,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돈다. 그건 알겠는데, 대체 어떤 모양으로 도는 걸까?"
그 시절 사람들은 행성이 완벽한 원을 그리며 돈다고 믿었어요.
원은 가장 아름다운 도형이니까, 하늘의 움직임도 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하지만 케플러가 스승 튀코 브라헤에게 물려받은 관측 데이터는 원과 맞지 않았어요.
화성의 궤도를 아무리 원으로 맞춰 보려 해도, 자꾸 조금씩 어긋났습니다.
케플러는 몇 년을 고민했어요.
그러다 문득 아폴로니우스의 원뿔곡선론을 떠올렸습니다.
원을 살짝 찌그러뜨린 곡선, 타원.
"혹시 행성이 원이 아니라 타원을 그리며 도는 건 아닐까?"
데이터를 타원에 대입하자, 모든 것이 들어맞았어요.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케플러의 제1법칙입니다.
"모든 행성은 태양을 하나의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
만약 아폴로니우스가 타원의 성질을 그토록 꼼꼼히 기록해 두지 않았다면?
케플러는 자신이 발견한 데이터의 의미를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했을 거예요.
1,800년 전 순수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연구가, 인류가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겁니다.
이후 아이작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증명하면서 원뿔곡선을 핵심 도구로 사용했어요.
뉴턴의 '프린키피아'에는 아폴로니우스의 원뿔곡선론이 곳곳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혜성의 궤도가 포물선이나 쌍곡선을 그린다는 사실도, 원뿔곡선 없이는 설명할 수 없었어요.
집 옥상이나 건물 벽에 붙어 있는 위성 안테나를 본 적 있죠?
동그란 접시처럼 생긴 그 장치요.
그 접시의 단면이 바로 포물선입니다.
포물선에는 아주 신기한 성질이 하나 있어요.
포물선의 곡면에 부딪힌 것은 무조건 한 점으로 모인다는 거예요.
그 한 점을 초점이라고 부릅니다.
위성에서 날아온 전파가 접시에 부딪히면, 아무리 넓게 퍼져 있어도 초점 한 곳으로 모여요.
그래서 접시 한가운데 조금 앞쪽에 튀어나온 작은 수신기가 신호를 또렷하게 잡아낼 수 있는 겁니다.
이 원리를 거꾸로 쓰면 어떻게 될까요?
초점 위치에 전구를 놓으면, 빛이 포물선 곡면에 반사되어 나란한 직선으로 뻗어나갑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바로 이 원리예요.
전구 하나로 먼 곳까지 빛을 똑바로 보낼 수 있는 이유가 포물선 덕분이에요.
타원도 활약합니다.
병원에서 체외충격파 쇄석술이라는 치료를 들어본 적 있나요?
몸 안의 결석(돌)을 수술 없이 깨뜨리는 기술인데요.
타원에는 초점이 두 개 있고, 한 초점에서 낸 파동은 반드시 다른 초점으로 모이는 성질이 있어요.
한 초점에서 충격파를 쏘면, 다른 초점에 놓인 결석에 에너지가 집중되어 돌이 부서지는 거예요.
쌍곡선은요?
여러분의 스마트폰 속 GPS가 쌍곡선을 쓰고 있습니다.
GPS 위성 여러 개에서 보내는 신호의 도착 시간 차이를 계산하면, 내 위치가 쌍곡선 위의 어딘가로 좁혀져요.
쌍곡선 두세 개가 만나는 교차점이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에요.
원뿔 하나에서 나온 곡선 네 개가, 안테나부터 자동차 불빛, 의료 기술, 위치 추적까지.
2,200년 전 아폴로니우스가 연구한 것들이 오늘도 우리 곁에서 조용히 일하고 있습니다.
아폴로니우스에게 누군가 물었을 거예요.
"원뿔을 잘라서 대체 어디에 쓰려고요?"
솔직히 말하면, 아폴로니우스 본인도 몰랐을 겁니다.
그는 그저 재미있어서 연구했어요.
원뿔을 이렇게 자르면 어떤 모양이 나올까, 저렇게 자르면 어떤 성질이 있을까.
순수한 궁금증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궁금증이 1,800년 뒤에 행성의 궤도를 설명했어요.
또 그로부터 300년 뒤에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쓰였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스마트폰이 위치를 찾을 때 아폴로니우스의 곡선을 사용하고 있어요.
이런 일은 수학의 역사에서 놀라울 만큼 자주 일어납니다.
아무 쓸모없어 보이던 연구가, 상상도 못 한 곳에서 세상을 바꿔 버리는 일.
수학자들은 이것을 "수학의 불합리한 효용성"이라고 부릅니다.
아폴로니우스는 결국 이런 걸 우리에게 알려 주는 셈이에요.
"지금 당장 쓸모없어 보여도, 진짜 궁금한 걸 끝까지 파고들어 봐."
"그게 언젠가 누군가의 세상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
여러분도 혹시 요즘 궁금한 게 있나요?
쓸모있든 없든 상관없어요.
그 호기심을 붙잡아 두세요.
2,200년 전 원뿔을 자르던 한 수학자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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