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목욕을 해본 적 있지?
욕조에 몸을 담그면 물이 찰랑찰랑 올라온다.
너무 많이 받아놓으면 물이 바닥으로 철철 넘치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시라쿠사라는 도시에 한 남자가 살았다.
이름은 아르키메데스.
그는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는데, 어느 날 왕에게 골치 아픈 부탁을 받았다.
"내 왕관이 진짜 순금인지 확인해줘. 단, 왕관을 부수지 않고."
왕은 금 세공사에게 순금을 줘서 왕관을 만들게 했다.
그런데 세공사가 금 일부를 빼돌리고 대신 은을 섞어 넣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왕관을 녹여서 확인하면 간단하겠지만, 그러면 왕관이 망가진다.
아르키메데스는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다 목욕탕에 갔다.
욕조에 몸을 담그는 순간, 물이 넘쳤다.
바로 그때 번개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유레카!" (찾았다!)
그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옷도 안 입고 거리로 뛰쳐나갔다고 한다.
그가 발견한 건 이거다.
물속에 물건을 넣으면, 그 물건의 부피만큼 물이 밀려난다.
금은 무겁고 작다.
은은 금보다 가볍고 크다.
같은 무게라도 은이 섞이면 부피가 커진다.
부피가 커지면 물이 더 많이 밀려난다.
그러니까 왕관을 물에 넣고, 같은 무게의 순금 덩어리도 물에 넣어서, 밀려나는 물의 양을 비교하면 된다.
왕관 쪽에서 물이 더 많이 넘치면?
금이 아닌 다른 금속이 섞여 있다는 증거다.
이것이 바로 부력의 원리다.
수영장에서 몸이 둥둥 뜨는 것도,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것도, 전부 이 원리 덕분이다.
목욕탕에서 물이 넘치는 그 평범한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
그것이 아르키메데스를 천재로 만들었다.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본 적 있지?
덩치 큰 친구랑 타면 내가 하늘로 붕 뜬다.
그런데 큰 친구가 가운데 쪽으로 오면?
신기하게도 균형이 맞는다.
이게 바로 지렛대의 원리다.
아르키메데스가 발견한 또 하나의 대단한 비밀이다.
지렛대는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긴 막대, 받침점, 그리고 힘.
받침점에서 멀리 있을수록 적은 힘으로 무거운 걸 들어 올릴 수 있다.
시소에서 가운데 쪽에 앉으면 더 무거워야 균형이 맞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아르키메데스는 이 원리를 깨닫고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충분히 긴 지렛대와 설 곳을 달라. 그러면 지구도 움직이겠다."
물론 실제로 지구를 들어 올릴 순 없다.
그만큼 긴 막대도 없고, 우주 공간에 받침점을 놓을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 말이 담고 있는 뜻은 진짜다.
작은 힘이라도 올바른 위치에 쓰면, 상상 이상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지렛대를 쓰고 있다.
병따개로 뚜껑을 딸 때.
가위로 종이를 자를 때.
손톱깎이로 손톱을 깎을 때.
심지어 문 손잡이도 지렛대다.
손잡이가 경첩(받침점)에서 멀리 있으니까 가볍게 밀어도 문이 열리는 거다.
만약 문 손잡이가 경첩 바로 옆에 붙어 있다면?
문 여는 데 엄청난 힘이 필요할 거다.
한번 상상해봐.
꽤 웃기지?
2300년 전에 발견된 원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손끝에서 작동하고 있다.
피자 한 판을 떠올려보자.
둥글다.
이 둥근 피자의 가장자리 길이(둘레)를 피자의 지름으로 나누면, 신기한 숫자가 나온다.
3.14159…
어떤 크기의 원이든 상관없다.
동전이든, 지구든, 태양이든.
둘레를 지름으로 나누면 항상 같은 숫자가 나온다.
이 숫자를 원주율, 기호로는 π(파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숫자가 끝이 없다는 거다.
3.14159265358979… 소수점 아래로 영원히 계속된다.
정확한 값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르키메데스는 기가 막힌 방법을 생각해냈다.
원 안에 삼각형을 그려 넣었다.
삼각형의 둘레는 계산하기 쉽다.
당연히 원의 둘레보다 짧다.
이번엔 원 바깥에 삼각형을 그렸다.
이건 원의 둘레보다 길다.
그러니까 원의 둘레는 안쪽 삼각형보다 길고, 바깥쪽 삼각형보다 짧다.
이렇게 범위를 좁힐 수 있다.
여기서 아르키메데스는 멈추지 않았다.
삼각형을 사각형으로, 사각형을 오각형으로, 점점 변의 수를 늘려갔다.
변이 많아질수록 다각형은 원에 가까워진다.
피자를 4조각으로 자르는 것보다 8조각, 8조각보다 16조각으로 자르면 한 조각의 가장자리가 점점 직선에 가까워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무려 96각형까지 그렸다.
손으로.
계산기 없이.
그 결과, 원주율이 대략 3.1408과 3.1429 사이에 있다는 걸 알아냈다.
2300년 전에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정확하게 구한 거다.
오늘날 슈퍼컴퓨터로 π를 수조 자리까지 계산하지만, 그 출발점은 종이 위에 다각형을 그린 이 사람이었다.
아르키메데스는 조용한 서재에만 앉아 있던 학자가 아니었다.
그의 고향 시라쿠사가 전쟁에 휘말렸을 때, 그는 과학으로 도시를 지켰다.
기원전 213년, 로마 제국의 거대한 함대가 시라쿠사를 공격했다.
로마군은 당시 지중해 최강이었다.
누가 봐도 시라쿠사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로마의 배가 해안에 가까이 오자, 성벽 위에서 거대한 투석기가 바위를 퍼부었다.
아르키메데스가 설계한 것이었다.
배가 성벽 바로 아래까지 붙으면?
이번엔 성벽 위에서 거대한 쇠 갈고리가 내려왔다.
배의 앞부분을 집어 올려서 바다에 내동댕이쳤다.
이걸 "아르키메데스의 발톱"이라고 불렀다.
크레인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전설은 거울 무기다.
병사들이 수백 개의 청동 방패를 들고 햇빛을 한 점에 모았다고 한다.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는 것과 같은 원리다.
집중된 빛이 로마 전함에 불을 붙였다는 이야기다.
이 거울 무기가 실제로 가능했는지는 아직도 논쟁 중이다.
현대 과학자들이 실험해봤는데, 조건이 완벽하면 나무에 불을 붙일 수는 있지만 실전에서 쓰기는 어려웠다.
전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다.
아르키메데스의 무기들 때문에 로마군은 2년 넘게 시라쿠사를 함락하지 못했다.
과학자 한 명이 제국의 군대를 막아선 거다.
로마의 장군 마르켈루스는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우리는 바다의 괴물과 싸우고 있다."
기원전 212년, 시라쿠사는 결국 함락되었다.
로마군이 성벽을 넘어 쏟아져 들어왔다.
장군 마르켈루스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아르키메데스만은 살려라."
적이면서도 그의 천재성을 존경했던 거다.
하지만 비극이 벌어졌다.
한 로마 병사가 아르키메데스의 집에 들이닥쳤다.
아르키메데스는 마당 바닥에 원을 그리며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전쟁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병사가 다가오자, 아르키메데스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내 원을 밟지 마라."
병사는 그가 누군지 몰랐다.
그냥 말을 안 듣는 노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칼을 휘둘렀다.
이것이 아르키메데스의 마지막이었다.
75세쯤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발견들은 죽지 않았다.
부력의 원리는 잠수함과 배를 설계하는 데 쓰인다.
지렛대의 원리는 크레인, 가위, 시소 속에 살아있다.
원주율 계산법은 현대 수학과 공학의 토대가 되었다.
심지어 그가 고안한 아르키메데스 스크류(나선형으로 물을 퍼 올리는 장치)는 지금도 개발도상국에서 관개용으로 쓰인다.
2300년이 지났는데도.
아르키메데스를 특별하게 만든 건 IQ가 아니었다.
욕조에서 물이 넘치는 걸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
시소가 왜 기우는지 끝까지 파고든 것.
원 안에 삼각형을 그리고, 사각형을 그리고, 96각형까지 그린 것.
그 모든 건 한 가지에서 시작됐다.
"왜?"라고 묻는 습관.
우리 모두 매일 욕조에 들어간다.
물이 넘치는 걸 본다.
대부분은 그냥 수건으로 닦는다.
아르키메데스는 거기서 우주의 법칙을 찾았다.
다음에 욕조에 들어갈 때, 넘치는 물을 한번 유심히 봐보자.
어쩌면 당신만의 유레카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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