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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창조적 파괴는 새로운 상품·기술이 등장하면서 낡은 상품·기술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흐름을 말해요. 자본주의는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스스로 옛것을 부수고 새것을 세우기를 끝없이 되풀이하며 굴러가요.
여러분 집에도 이제 안 쓰는 물건이 있을 거예요.
옛날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사진관에서 인화했죠.
그런데 스마트폰이 나오자 필름도, 사진관도, MP3 플레이어도, 종이 지도도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새것 하나가 나타나면서 잘 쓰던 여러 개가 한꺼번에 낡은 것이 되어 버린 거예요.
이게 바로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schöpferische Zerstörung)'예요.
독일어 그대로 옮기면 '창조하는 파괴'라는 뜻이에요.
슘페터는 1883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에서 가르친 경제학자예요.
그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조'와 낡은 것을 없애는 '파괴'가 사실은 한 몸이라고 봤어요.
무언가를 새로 세우려면 반드시 예전 것이 자리를 비켜야 하니까요.
슘페터는 자본주의 경제를 '고요한 연못'이 아니라 '끊임없이 물결치는 강물'로 봤어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안에서는 새 기업이 생기고, 새 상품이 나오고, 오래된 기업이 밀려나는 일이 쉬지 않고 벌어진다는 거죠.
예를 들어 볼게요.
마차가 사람을 실어 나르던 시대에 자동차가 등장했어요.
자동차 공장은 새 일자리와 새 부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마부와 마차 만드는 사람들의 일감을 앗아갔어요.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에요.
새로움에는 늘 무언가의 끝이 따라붙어요.
슘페터는 바로 이 '만들면서 부수는' 힘이야말로 자본주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진짜 엔진이라고 봤어요.
경쟁에서 값을 조금 깎는 것보다, 아예 판 자체를 바꾸는 새 기술이 훨씬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거죠.
재미있게도 슘페터는 이 새로움을 꼭 작은 회사만 만드는 건 아니라고 봤어요.
그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1942)에서 진보가 가장 두드러진 항목을 하나하나 따라가 보면, 그 길이 '자유경쟁 기업의 문'이 아니라 오히려 '대기업의 문'으로 이어진다고 적었어요.
큰 기업이 생활수준을 억누르기는커녕 오히려 끌어올렸을 수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생각이 든다고 했어요.
흔히들 '창조적 파괴'라는 말을 슘페터가 지어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조금 달라요.
이 표현을 먼저 쓴 사람은 같은 독일어권 학자 베르너 좀바르트예요.
슘페터는 이 말을 만든 게 아니라, 경제학에서 널리 퍼뜨려 유명하게 만든 사람이에요.
비유하자면 노래를 처음 작곡한 사람과, 그 노래를 온 나라가 따라 부르게 만든 가수는 다른 사람일 수 있잖아요.
슘페터는 후자에 가까워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이 개념을 슘페터의 이름과 함께 기억하는 거예요.
개념의 주인과 개념을 알린 사람을 구분해 두면, 나중에 헷갈릴 일이 줄어요.
창조적 파괴는 100년 전 이야기로 끝나지 않아요.
스마트폰이 여러 기계를 삼켰듯, 지금도 새 기술이 옛 산업을 밀어내는 일이 계속되고 있어요.
세계은행이 각 나라 사업 환경을 살펴본 'Doing Business' 보고서도,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는 낡은 장애물을 치우는 데 초점을 두었는데, 여기에 슘페터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영향을 줬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이 개념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남겨요.
새것이 주는 편리함을 반기면서, 그 때문에 자리를 잃는 사람들은 어떻게 도울까?
창조와 파괴가 한 몸이라는 걸 알면, 변화를 무작정 두려워하지도, 아무 대가 없이 반기지도 않게 돼요.
창조적 파괴는 새로운 상품과 기술이 낡은 것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며 자본주의를 계속 굴러가게 하는 힘이에요.
슘페터는 이 '만들면서 부수는' 흐름을 자본주의의 진짜 엔진으로 봤지만, 이 말 자체는 좀바르트가 먼저 썼고 슘페터가 널리 알렸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아요.
새것이 반가울 때마다, 그 뒤에서 조용히 자리를 비운 옛것도 함께 떠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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