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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은 참으로 있는 것이 머릿속 관념이 아니라 눈·귀·손으로 느껴지는 감각적인 것이라고 봐요. 그래서 철학은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현실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과가 하나 있다고 해봐요.
"사과라는 개념"을 아무리 머릿속으로 굴려도 배는 안 불러요.
껍질을 만지고, 향을 맡고, 한입 베어 물어 새콤함을 느껴야 비로소 사과가 '있다'고 실감하죠.
루트비히 포이어바흐(1804년부터 1872년까지 살았던 독일 철학자)가 말한 유물론과 감각은 딱 이 실감에서 시작해요.
그의 핵심 주장은 이거예요.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생각으로 지어낸 관념이 아니라, 감각(Sinnlichkeit)으로 잡히는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라는 거죠.
눈·귀·코·혀·손, 이 다섯 감각에 걸려드는 것이야말로 진짜라는 겁니다.
그래서 학계는 그의 사상을 '인류학적 유물론'(anthropologischer Materialismus)이라고 불러요.
인간을 생각하는 머리로만 보지 않고, 느끼고 사랑하고 배고파하는 몸 전체로 본다는 뜻이에요.
포이어바흐는 젊은 시절 헤겔의 강의를 2년간 빠짐없이 들은 열혈 제자였어요.
그런데 헤겔 철학은 세상 모든 것을 '이념'이나 '절대정신' 같은 거대한 생각의 흐름으로 설명했죠.
포이어바흐가 보기엔 이게 거꾸로였어요.
실제로 있는 건 배고픈 몸, 아픈 손, 사랑하는 마음인데, 왜 손에 잡히지도 않는 관념을 제일 위에 올려놓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헤겔이 하늘로 띄워 올린 철학을 다시 땅으로, 몸으로 끌어내렸어요.
철학자 카를 뢰비트는 이를 두고 헤겔 신학의 "Versinnlichung und Verendlichung(감성화와 유한화)"라고 표현했죠.
어렵게 들리지만 풀면 간단해요.
구름 위 추상적인 이야기를 '느낄 수 있고 끝이 있는' 인간의 자리로 되돌려놨다는 말이에요.
뢰비트는 "우리는 지금 모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위에 서 있다"고까지 했어요.
포이어바흐에게 감각은 단순히 차가운 관찰이 아니었어요.
무언가를 진짜로 안다는 건 그것과 관계 맺고 사랑하는 일이기도 했죠.
그는 이렇게 썼어요.
"Was nicht geliebt wird, nicht geliebt werden kann, das ist nicht(사랑받지 못하는 것,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감각으로 아무 관계도 맺지 않은 것은 나에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는 진리가 혼자 머리 굴려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봤어요.
"Die wahre Dialektik ist kein Monolog des einsamen Denkers mit sich selbst, sie ist ein Dialog zwischen Ich und Du(참된 변증법은 고독한 사상가의 독백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의 대화다)."
너의 목소리를 귀로 듣고 얼굴을 눈으로 마주하는 감각적 만남, 거기서 앎이 시작된다는 거죠.
유물론이 딱딱한 돌덩이 이야기가 아니라 몸과 몸이 부대끼는 따뜻한 이야기가 되는 지점이에요.
'유물론'이라고 하면 흔히 세상 모든 걸 물질과 기계로만 설명하는 18세기식 관점을 떠올려요.
감정도 사랑도 결국 몸속 화학반응일 뿐이라는 식이죠.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은 이것과 갈라져요.
아래처럼요.
| 구분 | 18세기 유물론 | 포이어바흐의 인류학적 유물론 |
|---|---|---|
| 인간을 보는 눈 | 몸속 기계장치로 환원 | 느끼고 사랑하는 온전한 존재 |
| 감각의 자리 | 물리 반응의 부산물 | 참된 앎이 시작되는 통로 |
| 관심의 중심 | 물질 일반 | 감각하는 구체적 인간 |
한 가지 짚을 게 있어요.
마르크스는 1845년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이 유물론이 아직 부족하다고 봤어요.
"Sinnlichkeit(감성)를 오직 객체나 직관의 형태로만 파악하고, 감성적 인간 활동, 즉 실천으로서는 파악하지 못한다"는 지적이었죠.
쉽게 말하면, 포이어바흐가 감각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으로만 봤지 '세상을 바꾸는 손놀림'으로까지 밀고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에요.
그럼에도 마르크스조차 그를 헤겔 이후 "진정한 이론적 혁명"을 담은 저술가로 인정했어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과 감각은 세 마디로 기억하면 돼요.
첫째, 참으로 있는 것은 머릿속 관념이 아니라 눈·귀·손으로 느껴지는 감각적인 것이에요.
둘째, 그래서 그는 헤겔이 하늘로 올린 철학을 몸과 느낌의 자리로 되돌렸고, 이를 '인류학적 유물론'이라 불러요.
셋째, 그에게 감각은 차가운 관찰이 아니라 사랑하고 마주하는 '나와 너'의 만남이었어요.
마르크스는 여기에 '실천'이 빠졌다고 아쉬워했지만, 오늘날에는 몸과 감각을 중심에 놓은 그의 통찰이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사과 맛을 알려면 결국 한입 베어 물어야 한다는 것, 그 단순한 실감이 그의 철학 전체를 떠받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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