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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라, 인간이 자기 안의 가장 좋은 것—사랑·지혜·힘—을 한껏 부풀려 하늘로 밀어 올린 뒤 '신'이라 부른 것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신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인간 자신의 얼굴이 비쳐 있어요.
거울 앞에 서면 내 모습이 그대로 비쳐요.
그런데 그 거울이 너무 커서, 비친 모습이 나보다 훨씬 크고 밝고 완벽해 보인다고 상상해 볼까요.
루트비히 포이어바흐(1804년~1872년)가 신을 두고 한 말이 바로 이거예요.
신은 인간 바깥에 따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안의 가장 좋은 것—사랑, 지혜, 힘—을 한껏 부풀려 하늘 위로 밀어 올린 '커다란 거울 속 나'라는 거죠.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강의를 2년간 직접 듣고 1841년 『기독교의 본질』을 쓴 독일 철학자예요.
그가 던진 핵심은 간단해요.
흔히 "신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실제 순서는 반대라는 것.
인간이 자기 형상대로 신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인간 자신의 얼굴이 비쳐 있다고 봤어요.
포이어바흐는 이렇게 적었어요.
"Die Religion ist die Reflexion, die Spiegelung des menschlichen Wesens in sich selbst. – Gott ist der Spiegel des Menschen."(종교는 인간 본질이 자기 자신 안에 비친 반영이다 — 신은 인간의 거울이다)
신을 "인간의 드러난 내면, 발화된 자아"라고도 했고요.
무슨 뜻이냐면, 우리가 신에게 붙이는 성질들을 하나씩 떼어 보라는 거예요.
무한한 사랑, 완전한 지혜, 끝없는 힘.
이건 전부 인간이 소중히 여기는 성질이에요.
다만 우리 각자는 조금만 사랑하고 조금만 알지만, 인류 전체가 품은 사랑과 지혜를 다 모아 "무한"이라는 도장을 찍어 하늘에 걸어 둔 것—그게 신이라는 거죠.
어린아이가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 힘센 영웅이라 여기는 것과 비슷해요.
아빠의 힘이 진짜 무한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바라는 '가장 큰 힘'을 아빠 위에 얹어 본 거니까요.
그는 사랑이나 의지 같은 힘을 두고 "의지, 사랑, 마음은 인간이 '가진' 힘이 아니다"라고 했어요.
오히려 그런 힘이 인간을 움직이고 사로잡는다고요.
그만큼 이 성질들이 인간에게 근본적이라는 뜻이에요.
정리하면 방향이 뒤집혀 있어요.
| 흔한 생각 | 포이어바흐의 생각 |
|---|---|
|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 |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 |
| 신의 사랑이 인간에게 내려온다 | 인간의 사랑을 신에게 올려 보냈다 |
| 신을 알면 인간을 안다 | 인간을 알면 신을 안다 |
여기서 꼭 짚을 게 있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이 생각을 '투사(Projektion)'라는 심리학 용어로 설명하는데, 정작 포이어바흐 자신은 이 단어를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투사'라고 하면 마치 인간이 착각하거나 헛것을 본 것처럼 들리죠.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조금 달랐어요.
그는 종교를 없애 버리려던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자기를 "종교의 적이 아니라 벗"이라고 불렀고, 목표는 종교를 폐기하는 게 아니라 정화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신이라는 거울에 비친 게 결국 인간 자신이라면, 그 좋은 성질을 하늘로만 보내지 말고 다시 인간에게 돌려주자는 거였죠.
그는 이렇게 썼어요.
"나는 종교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할 뿐이다; 나는 다만 그 청자이자 통역자일 뿐, 프롬프터가 아니다.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없는 걸 지어낸 게 아니라, 종교 안에 이미 숨어 있던 인간의 얼굴을 드러냈다는 뜻이에요.
뉘른베르크에 있는 그의 기념비에는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어요.
"Der Mensch schuf Gott nach seinem Bilde."(인간이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창조했다)
성경의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를 정확히 뒤집은 문장이죠.
이 생각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 있어요.
실제로 이 기념비는 1933년 나치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55년에야 같은 자리에 다시 세워졌을 만큼 논쟁적이었어요.
하지만 포이어바흐가 하려던 말의 알맹이는 이거예요.
우리가 '가장 높은 것'이라 부르며 우러러보는 성질들—사랑, 정의, 지혜—은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사람 안에 있다는 것.
그래서 그 기념비 다른 쪽에는 이런 문장도 있어요.
"인간을 위하여 선을 행하라(Tue das Gute um des Menschen Willen)."
포이어바흐의 '신은 인간의 투사'는 한 문장으로 이래요.
신은 하늘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안의 가장 좋은 성질을 크게 부풀려 비춰 낸 거울이라는 것.
그러니 신을 이해하는 일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 돼요.
단, '투사'라는 말이 주는 인상과 달리 그는 종교를 조롱하려던 게 아니라, 하늘로 보낸 그 좋은 것들을 다시 사람에게 돌려주려 했다는 점을 기억하면 이 사상을 오해하지 않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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