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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헤겔은 '이념(생각)'이 세상을 만든다고 봤어요. 포이어바흐는 이 순서를 거꾸로 뒤집어, 살아 있는 인간이 먼저이고 생각은 그 인간의 머릿속에 비친 것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뒤집기에서 '헤겔 좌파'라는 흐름이 갈라져 나왔어요.
유명한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제자들이 곧잘 두 편으로 갈리죠.
"말씀 그대로 지키자"는 쪽과 "선생님 방법으로 선생님을 넘어서자"는 쪽으로요.
독일 철학자 헤겔이 세상을 떠난 뒤가 딱 그랬어요.
헤겔 철학을 기존 종교와 국가를 옹호하는 데 쓴 사람들을 '헤겔 우파', 그 철학을 오히려 비판의 무기로 되돌려 쓴 젊은 학자들을 '헤겔 좌파'(청년헤겔파)라고 불렀습니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1804년부터 1872년까지)는 원래 개신교 신학도였다가, 1824년 베를린으로 가 헤겔의 강의를 2년간 하나도 빠짐없이 들은 열렬한 제자였어요.
그런 그가 이 '헤겔 좌파'의 전환을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밀어붙인 사람이 됩니다.
헤겔 철학의 핵심은 이래요.
세상을 진짜로 움직이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니라 '이념'(생각·정신)이고, 이 거대한 생각이 스스로 펼쳐지면서 자연도 인간도 역사도 만들어낸다는 거죠.
한마디로 '생각이 먼저, 사람은 나중'이에요.
포이어바흐는 이 순서가 거꾸로라고 봤어요.
배가 고파야 밥 생각이 나지, 밥 생각이 배를 만들지는 않잖아요.
살아 숨 쉬는 인간이 먼저 있고, 생각이란 그 인간의 머릿속에 물질세계가 옮겨져 비친 것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는 헤겔이 말한 '사유와 존재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렇게 꼬집었어요.
Die Identität von Denken und Sein ist daher nur der Ausdruck von der Gottheit der Vernunft.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은 다만 이성의 신성함의 표현일 뿐이다.
즉 헤겔의 철학은 알고 보면 '이성'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은 세련된 신학이라는 거예요.
포이어바흐는 하늘로 붕 떠 있던 이 철학을 땅으로, 감각으로, 사람으로 끌어내리려 했습니다.
이 생각을 『철학 개혁을 위한 예비 테제』(1842년 집필, 검열로 1843년 출간)와 『미래 철학의 근본원칙』(1843년)에서 차근차근 정리했어요.
그는 참된 사유가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Die wahre Dialektik ist kein Monolog des einsamen Denkers mit sich selbst, sie ist ein Dialog zwischen Ich und Du.
참된 변증법은 고독한 사상가의 독백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의 대화다.
헤겔의 철학이 방 안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생각이었다면, 포이어바흐는 살아 있는 '나와 너'가 마주 앉는 자리로 철학을 옮겨 놓으려 한 거예요.
두 사람의 갈림길을 표로 보면 한눈에 들어와요.
| 물음 | 헤겔 | 포이어바흐 |
|---|---|---|
| 무엇이 먼저인가 | 이념(생각·정신) | 살아 있는 인간과 자연 |
| 철학의 정체 | 정신의 자기 전개 | 감춰진 신학을 벗겨낸 인간학 |
| 생각이란 | 세상을 만드는 주체 | 머릿속에 비친 물질세계 |
| 진리를 찾는 길 | 홀로 하는 독백 | 나와 너의 대화 |
포이어바흐는 철학의 역사를 신학에서 서서히 풀려나는 과정으로 다시 썼어요.
이렇게 추적하는 서술 방법을 그는 '발전'이라는 뜻의 독일어 Entwicklung이라고 불렀죠.
철학사 전체를 '신학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과정'으로 보여준 셈이에요.
헤겔의 웅장한 체계를 인간의 크기로 되돌리는 작업이었죠.
포이어바흐가 헤겔을 뒤집자, 그 뒤집기가 다음 세대의 발판이 됐어요.
훗날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렇게 정리합니다.
Für Hegel ist der Denkprozess der Demiurg des wirklichen; bei mir ist umgekehrt das Ideelle nichts andres als das im Menschenkopf umgesetzte und übersetzte Materielle.
헤겔에게 사유과정은 현실의 조물주이지만, 나에게는 반대로 이념적인 것이란 인간의 머릿속에서 옮겨지고 번역된 물질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엥겔스도 훗날 그 충격을 이렇게 회고했어요.
"우리는 모두 순간적으로 포이어바흐주의자였다."
철학사가 카를 뢰비트는 헤겔의 신학을 감각과 유한함으로 끌어내린 이 작업이 아예 "시대의 입장"이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짚을 게 있어요.
청년헤겔파 다수는 처음엔 포이어바흐를 그저 헤겔 교리를 잇는 사람으로 여겼어요.
1843년 무렵 급진 운동이 정치적으로 좌절을 맛본 뒤에야 그의 영향력이 확 커졌죠.
그래서 정식 '포이어바흐 학파'는 끝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학파의 우두머리라기보다, 모두가 딛고 지나간 문턱에 가까웠어요.
포이어바흐의 '헤겔 좌파의 전환'은 딱 한 문장으로 요약돼요.
헤겔이 '생각이 먼저'라고 했다면,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먼저, 생각은 그다음'이라고 뒤집었어요.
하늘에 떠 있던 관념 철학을 감각하는 인간의 자리로 끌어내린 이 뒤집기가 청년헤겔파의 방향을 틀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딛고 나아갈 발판이 되었습니다.
스승의 방법으로 스승을 넘어선 제자, 그 자리에서 다음 세대가 출발했다는 것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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