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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자연주의 교육은 어른의 지식을 서둘러 머리에 넣는 대신, 아이가 자기 발달 단계에 맞춰 직접 겪으며 배우도록 두는 방식이에요. 루소는 아이를 작은 어른으로 다루지 말고, 자연이 정한 성장의 순서를 따라야 한다고 봤어요.
스위스 제네바 출신 계몽사상가 장자크 루소는 1762년 5월 《에밀, 또는 교육론》을 펴냈어요.
이 책은 딱딱한 교육 이론서가 아니라, 상상 속 소년 '에밀'을 가정교사가 아기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곁에서 키우는 이야기 형식이에요.
여기서 루소가 던진 말을 한마디로 줄이면 이래요.
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보는 법, 생각하는 법, 느끼는 법이 있고, 교육은 그 자연스러운 순서를 앞질러선 안 된다는 거죠.
어른이 아는 걸 서둘러 머릿속에 밀어 넣는 대신, 아이가 스스로 겪으며 자라게 두라는 게 '자연주의 교육'의 핵심이에요.
'자연'이라니 숲속에서 키우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런 뜻은 아니에요.
씨앗을 심으면 뿌리가 먼저 나고 잎이 그다음에 나오죠.
순서를 건너뛰어 잎부터 나게 할 수는 없어요.
루소가 말한 자연은 이런 '내 안에 이미 정해진 성장의 순서'에 가까워요.
그래서 자연주의 교육은 나이에 맞지 않는 걸 가르치지 않아요.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달리기를 시키지 않듯, 아직 추상적인 개념을 다룰 준비가 안 된 아이에게 도덕 설교나 책 지식을 억지로 넣지 않는 거예요.
대신 아이가 몸으로 부딪히고 감각으로 느끼며 배우게 해요.
루소는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도 날카롭게 봤어요.
"Les bonnes institutions sociales sont celles qui savent le mieux dénaturer l'homme."(좋은 사회 제도란 인간을 가장 잘 '탈자연화'할 줄 아는 제도다)라고 했죠.
사회는 타고난 본성을 자꾸 뒤틀어 놓는데, 교육만은 그 본성을 지키는 편이어야 한다고 본 거예요.
보통 교육은 뭔가를 부지런히 채워 넣는 일이라고 생각하죠.
루소는 반대로 말해요.
"La première éducation doit donc être purement négative."(최초의 교육은 순전히 소극적이어야 한다)
어린아이 교육은 덕이나 진리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마음이 나쁜 습관에, 머리가 잘못된 지식에 물들지 않게 지켜 주는 일이라는 거예요.
밭에 자꾸 손대며 뿌리가 잘 크나 캐 보는 대신, 잡초만 뽑고 기다려 주는 농부를 떠올리면 돼요.
아이를 억지로 끌고 가지 않고 클 시간을 벌어 주는 것.
그게 '소극적 교육(éducation négative)'이에요.
응석받이로 키우라는 뜻일까요?
정반대예요.
"L'enfant ne doit rien obtenir parce qu'il le demande, mais parce qu'il en a besoin, ni rien faire par obéissance, mais seulement par nécessité."(아이는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얻어야 하며, 복종해서가 아니라 오직 필요에 의해서만 행동해야 한다)
떼를 쓴다고 다 들어주면 아이는 말이 곧 힘이라고 배워요.
반대로 어른 명령에 무조건 복종만 하게 하면 자기 판단이 자라지 않죠.
루소가 바란 건 둘 다 아니에요.
아이가 사물의 자연스러운 결과, 이를테면 밤에 안 자면 다음 날 졸리다는 사실 같은 '필요' 앞에서 스스로 배우는 거예요.
이렇게 다정해 보이는 교육책이 나오자마자 불태워졌다면 믿기 힘들 거예요.
그런데 사실이에요.
파리 고등법원은 1762년 6월 9일 《에밀》에 유죄 판결을 내려 책을 불태우게 하고, 루소를 체포하라는 명령까지 내렸어요.
고향인 제네바 정부도 이 책을 소각했고요.
루소는 결국 국경을 넘어 피신해야 했어요.
책 속에서 종교를 사람의 타고난 감정으로 설명한 대목이 교회를 자극했기 때문이에요.
씁쓸한 사실도 하나 있어요.
이렇게 교육론을 쓴 루소는 정작 자기 아이들을 모두 파리의 고아원에 보냈어요.
이상과 삶이 어긋난 자리에서 이 책이 나왔어요.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은 한 문장으로 이래요.
아이를 자연이 정한 성장의 순서대로 자라게 두라.
어른의 지식을 서둘러 넣는 대신 클 시간을 지켜 주고(소극적 교육), 떼나 복종이 아니라 사물의 필요 앞에서 스스로 배우게 하라는 것이죠.
《에밀》은 당대엔 불태워졌지만, 아이를 작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로 보자는 이 생각은 오늘날 교육의 밑바탕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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