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불변의 질서(Ordre immuable)는 무엇이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한지 정해 놓은 영원한 순위표예요. 이 순위는 신의 이성 안에 있어서 신조차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고, 신도 세상을 만들고 다스릴 때 이 순위를 그대로 지켜요.
여러분이 불이 난 집에서 딱 하나만 들고 나올 수 있다면, 벽돌보다 강아지를, 강아지보다 동생을 먼저 안고 나오겠죠.
우리는 이미 마음속에 "무엇이 더 귀한가"라는 순위표를 가지고 있어요.
17세기 파리의 사제이자 철학자였던 니콜라 말브랑슈(1638~1715)는, 이 순위표가 우리 기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세상보다 먼저 존재하는 영원한 것이라고 봤어요.
이것이 바로 '불변의 질서'예요.
말브랑슈에게 이 질서는 완전함의 등급이에요.
정신은 물체보다 더 완전하고,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 사랑받을 만하죠.
이 등급은 아무도 바꿀 수 없어요.
오늘은 정신이 위였다가 내일은 돌멩이가 위가 되는 식으로 흔들리지 않아요.
그래서 이름이 '불변'이에요.
그리고 이 질서가 놓여 있는 곳은 사람의 머릿속이 아니라 신의 이성(理性) 안이라고 그는 말했어요.
보통 우리는 신이라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상상해요.
하지만 말브랑슈의 신은 변덕쟁이 왕이 아니라 '정의로운(juste)' 입법자예요.
자기가 세운 법을 자기가 먼저 지키는 재판관 같은 존재죠.
말브랑슈는 신을 "자비롭다"기보다 "정의롭다"고 규정했는데, 그 정의로움의 기준이 바로 이 불변의 질서예요.
그래서 신이 세상을 만들 때도 그때그때 손대는 게 아니라 단순하고 일반적인 법칙으로 다스려요.
말브랑슈는 신이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선'을 고른 게 아니라,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세계'를 골랐다고 설명했어요.
지진이나 병 같은 자연의 악이 생기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신은 나쁜 일을 원해서가 아니라, 질서에 맞는 단순한 법칙을 끝까지 지키기 때문에 그 부작용을 감수하는 거예요.
(신이 개별 사건마다 개입하지 않고 일반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이야기, 즉 우인론과 일반의지는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룰게요.)
| 비교 | 말브랑슈의 신 |
|---|---|
| 무엇을 기준 삼나 | 불변의 질서(완전함의 등급) |
| 어떻게 다스리나 | 단순하고 일반적인 법칙으로 |
| 어떤 세계를 골랐나 |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가능한 최선의 세계 |
순위표가 신의 이성 안에 고정돼 있다는 말이 왜 중요할까요?
도덕이 취향 문제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에요.
무엇을 더 사랑해야 하는지가 이미 객관적으로 정해져 있으니까요.
말브랑슈는 그래서 도덕도 수학처럼 증명할 수 있다고 봤어요.
그의 유명한 문장이 이래요.
"La morale démontrée et expliquée par principes est à la connaissance de l'homme ce qu'est la connaissance des lignes courbes à celle des lignes droites."
쉽게 풀면, 원리로 증명하고 설명한 도덕은 사람이 아는 것들 가운데 곡선에 대한 앎이 직선에 대한 앎과 맺는 관계와 같다는 뜻이에요.
도덕을 감정이 아니라 자로 재듯 따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죠.
그렇다면 착하게 산다는 건 뭘까요?
각 존재를 그것이 질서 안에서 차지하는 등급만큼 사랑하는 거예요.
말브랑슈는 인간의 의지가 원래 선(善)을 향해 움직이도록 되어 있지만, 그 사랑을 어디에 쓸지는 우리가 자유롭게 정한다고 봤어요.
그 적용이 질서에 어긋나게 그릇될 때, 바로 거기서 죄가 생겨요.
덜 귀한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이 잘못인 셈이죠.
말브랑슈의 불변의 질서는 세 가지로 기억하면 돼요.
첫째, 그것은 무엇이 더 완전하고 더 사랑받을 만한지 정해 놓은 영원한 순위표예요.
둘째, 이 순위표는 신의 이성 안에 있어서 신조차 바꾸지 못하고, 정의로운 신은 세상을 만들고 다스릴 때 이 질서를 그대로 지켜요.
셋째, 우리의 도덕도 여기서 나와요.
각 존재를 그 등급에 맞게 사랑하면 옳고, 순서를 뒤집어 사랑하면 죄가 돼요.
결국 불변의 질서는 신도 사람도 함께 올려다보는 하나의 기준선이에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