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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우리가 사물을 알 때 쓰는 '관념'은 우리 마음이 만든 게 아니라 신 안에 이미 있는 것이라,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건 결국 신 안에서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뜻이에요.
사과를 볼 때 머릿속에 동그란 사과 모양이 떠오르죠.
그 마음속 그림을 철학에서는 '관념(idée)'이라고 불러요.
니콜라 말브랑슈는 1638년부터 1715년까지 파리에서 살았던 사제이자 철학자인데, 여기서 놀라운 주장을 했어요.
그 관념이 사실 여러분 머릿속에 든 게 아니라, 오직 신 안에만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사과든 삼각형이든 무언가를 이해할 때, 우리는 우리 안의 그림이 아니라 신 안에 이미 놓여 있는 관념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거죠.
이 생각이 바로 '신 안에서 봄(la vision en Dieu)'이에요.
도서관 비유를 들어 볼게요.
우리 머릿속에 책이 한 권씩 꽂혀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똑같은 하나의 큰 도서관(신)에 접속해서 같은 책을 읽는 셈이에요.
그래서 두 사람이 '2 더하기 2는 4'라는 똑같은 진리를 볼 수 있는 거고요.
말브랑슈는 데카르트를 깊이 연구한 사람이었어요.
1664년에 데카르트의 『인간론』을 읽고 그 뒤 10년을 데카르트주의에 파고들었죠.
그런데 한 가지에서 스승과 갈라섰어요.
데카르트는 관념을 '마음의 한 상태', 즉 우리 정신이 품고 있는 무언가로 봤어요.
말브랑슈는 이게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유한하고 작은 우리 마음이 어떻게 무한한 수의 도형이나 완벽한 진리를 스스로 만들어 담을 수 있겠느냐는 거죠.
그래서 그는 관념을 아예 우리 밖으로 꺼내 신에게 옮겼어요.
관념은 창조된 것도 아니고, 유한한 우리 정신과 상관없이 신 안에 늘 존재한다고요.
이 착상은 그가 새로 지어낸 게 아니라, 초대 교회 사상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에서 찾아낸 것이었어요.
데카르트의 철학을 신학과 이어 붙인 셈이죠.
말브랑슈는 우리가 무언가를 아는 방식을 셋으로 나눴어요.
어떤 것은 신 안에서 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아요.
| 무엇을 아는가 | 어떻게 아는가 |
|---|---|
| 신(존재 그 자체) | 신 안에서 직접. 무한은 그 자신 안에서만 볼 수 있으니까요 |
| 나 자신의 영혼 | '내적 감정(sentiment intérieur)'으로 어렴풋이 느낄 뿐 |
| 물체와 그 크기·모양 | 신 안에 있는 '원형(archétype)'을 통해 |
여기서 세 번째, 그러니까 우리 바깥 사물을 아는 방식이 바로 '신 안에서 봄'이에요.
재미있는 건 두 번째예요.
정작 우리 자신의 마음은 또렷하게 알지 못한다고 봤거든요.
그는 이렇게 적었어요.
"L'âme ne se connaît point, elle n'est à elle-même que ténèbres et qu'obscurité."
우리 말로 옮기면 "영혼은 자기를 알지 못한다, 영혼은 자신에게 어둠과 불명료함일 뿐이다"예요.
사과의 관념은 신 안에서 밝게 보면서, 정작 나 자신은 흐릿하게밖에 못 본다니 뒤집힌 느낌이죠.
오해하기 쉬운 대목이에요.
'신 안에서 본다'니까 마치 매번 신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런 신비 체험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가 보는 건 신 자체가 아니라, 신 안에 담긴 관념이에요.
게다가 말년에는 생각을 더 다듬어서, 신 안에 사과·나무처럼 개별 사물마다 따로 관념이 있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신은 무한하고 아직 어떤 모양인지 정해지지 않은 단 하나의 관념, 곧 '연장(공간적 크기)'만 지니고, 우리는 거기서 이런저런 모양을 잘라내 본다고요.
이 이론은 반발도 많이 샀어요.
조지 버클리는 "내가 지각하는 것들은 나 자신의 관념이라는 게 명백하다"며 신 안에서 봄을 거부했죠.
관념을 굳이 신에게 맡기지 말고 내 것으로 두자는 거예요.
뒷날 쇼펜하우어는 이 이론을 두고 '알려지지 않은 것을 더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설명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고 전해져요.
그만큼 대담하고, 그만큼 논란이 된 생각이었어요.
'신 안에서 봄'은 한 문장으로 이래요.
우리가 사물을 알 때 쓰는 관념은 내 머릿속 물건이 아니라 신 안에 있고, 이해한다는 건 그것을 신 안에서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거예요.
데카르트가 관념을 마음의 상태로 본 걸 거부하고, 아우구스티누스를 빌려 관념을 신에게 옮긴 결과였죠.
세 가지 앎 중 바깥 사물을 아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하고, 정작 나 자신은 흐릿하게만 안다는 뒤집힌 결론까지 따라왔어요.
버클리와 쇼펜하우어의 반박이 말해 주듯 받아들이기 쉬운 주장은 아니지만, '진리는 왜 누구에게나 똑같은가'를 신이라는 공동의 도서관으로 답하려 한 독특한 시도로 기억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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