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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우인론(기회원인론)은 세상 모든 일의 진짜 원인은 오직 신 하나뿐이고, 우리가 흔히 '원인'이라 부르는 것들은 신이 작용하도록 만드는 '계기'일 뿐이라는 생각이에요. 공이 공을 밀어 움직인 게 아니라, 부딪힌 그 순간에 맞춰 신이 움직여 준다는 거죠.
당구를 떠올려 볼게요.
흰 공이 빨간 공을 때리면 빨간 공이 굴러가죠.
우리는 당연히 "흰 공이 빨간 공을 움직였다"고 말해요.
그런데 말브랑슈(1638년부터 1715년까지 살았던 파리의 오라토리오회 사제이자 데카르트를 신학으로 이어받은 철학자)는 여기에 놀라운 말을 합니다.
흰 공은 사실 아무것도 못 움직였다고요.
그럼 누가 움직였을까요?
신이에요.
흰 공이 빨간 공에 닿는 그 순간이 신호가 되어, 그 순간에 맞춰 신이 빨간 공을 굴려 준다는 겁니다.
흰 공은 진짜 원인(cause)이 아니라, 신이 작용하는 '기회(occasion)'일 뿐이에요.
이 이론의 이름 '우인론', 프랑스어로 오카지오날리슴(occasionalisme)이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온전한 의미의 참된 원인은 신 하나뿐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출발점은 데카르트예요.
데카르트는 세상을 '생각하는 마음'과 '자리를 차지하는 물체', 둘로 뚝 갈라 놓았어요.
그런데 이러면 곤란한 질문이 생겨요.
마음과 몸은 완전히 다른 종류인데, 내가 '손을 들자'고 마음먹으면 어떻게 진짜로 손이 올라갈까요?
성질이 전혀 다른 둘이 어떻게 서로를 밀고 당길까요?
말브랑슈의 답은 시원합니다.
서로 밀고 당기는 일 자체가 없다는 거예요.
물체는 물체에게도, 마음에게도 힘을 못 씁니다.
마음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손을 들려는 '뜻'은 그저 계기일 뿐, 실제로 손을 올려 주는 건 신이에요.
자연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도 똑같아요.
불이 물을 데우는 게 아니라, 불이 닿는 그 순간에 맞춰 신이 물을 데웁니다.
이 생각은 말브랑슈가 처음 만든 건 아니에요.
자료에 따르면 일부 아랍 철학자들에게서 먼저 나타났고, 프랑스에서는 루이 드 라 포르주와 제로 드 코르드무아가 앞서 다뤘어요.
처음에는 '신은 전능하시다'를 선포하려는 종교적 마음에서 출발했는데, 나중에는 신의 지혜를 앞세운 법칙 중심의 형태로 다듬어졌습니다.
"매 순간 신이 다 한다면 세상이 뒤죽박죽 아니야?"라고 걱정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말브랑슈의 신은 변덕쟁이가 아니라 질서 있는 입법자거든요.
신은 그때그때 기분대로 움직이지 않고, 언제나 단순하고 일반적인 법칙에 따라 작용해요.
그래서 우리 눈에는 '흰 공이 늘 빨간 공을 움직인다'는 규칙처럼 보이는 거예요.
사실은 신이 늘 같은 방식으로 해 주기 때문이죠.
비슷해 보이는 다른 생각과 견줘 보면 특징이 또렷해져요.
| 물음 | 우인론(말브랑슈) | 예정조화설(라이프니츠) |
|---|---|---|
| 마음과 몸이 맞물리는 이유 | 매 순간 신이 직접 맞춰 준다 | 처음부터 따로 맞춰 놓았다 |
| 사물의 힘 | 참된 힘은 없다, 계기일 뿐 | 각자 안에 힘이 있다 |
라이프니츠는 이 이론을 못마땅해했어요.
그는 우인론자들을 두고 "연극의 대단원을 짓기 위해 마치 극장 장치처럼 신을 등장시킨다(font venir un Dieu comme dans une machine de théâtre)"고 비꼬았죠.
무대 위 문제를 신이 갑자기 튀어나와 해결한다는 뜻이에요.
반면 흄은 '사물끼리는 서로 연결을 알 수 없다'는 말브랑슈의 지적만은 받아들여, 대신 그 자리를 신이 아니라 인간 마음의 습관으로 채웠습니다.
버클리도 우인론에서 적잖은 영향을 받았고요.
우인론은 어렵게 들리지만 뼈대는 한 문장이에요.
참된 원인은 신 하나뿐이고, 세상 모든 것은 신이 작용할 계기일 뿐이라는 거예요.
당구공도, 내 손을 드는 뜻도, 데우는 불도 스스로는 아무 힘이 없고, 다만 그 순간에 맞춰 신이 규칙대로 움직여 줍니다.
데카르트가 갈라 놓은 마음과 몸의 간극을 신으로 메운 셈이죠.
라이프니츠는 이를 '극장 장치 같은 신'이라며 반박했고 흄은 뒷부분만 빌려 갔지만, '우리가 원인이라 부르는 것이 정말 원인일까'라는 물음을 이렇게까지 밀어붙인 사람은 말브랑슈가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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