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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몽테뉴가 말한 '인간 조건(condition humaine)'은, 사람은 죽고 변하고 실수하는 평범한 존재라는 사실이에요. 이걸 부끄러워하며 신이나 완벽한 이성인 척하지 말고, 흔들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지혜가 시작된다는 이야기예요.
혹시 이런 경험 있으세요?
어제는 굳게 결심했는데 오늘은 마음이 싹 바뀌고, 방금 한 말도 조금 지나면 후회하는 일이요.
몽테뉴는 바로 그 '흔들리는 나'가 인간의 진짜 모습이라고 봤어요.
'인간 조건'이라는 말은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단순해요.
사람은 언젠가 죽고, 몸을 가지고 있어서 아프고, 기분과 생각이 수시로 바뀌고, 자주 틀린다는 것.
이 네 가지에서 아무도 벗어날 수 없어요.
몽테뉴(1533~1592)는 이 뻔한 사실을 창피한 결점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바닥이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그는 대단한 위인이 아니라 '평범한 자기 자신'을 관찰 대상으로 삼았어요.
여기엔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1570년 무렵 몽테뉴는 성 근처에서 말을 타다가 다른 사람과 정면으로 부딪혀 낙마했어요.
잠깐 의식을 잃었고, 회복하는 데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렸다고 해요.
죽음 바로 앞까지 갔다 온 이 사고 뒤로, 그는 글에서 죽음을 자주 곱씹게 됐어요.
죽음을 떠올린다고 우울해지자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예요.
'나는 결국 죽는 보통 사람이다'라는 걸 인정하면, 남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거나 완벽한 척하는 힘이 빠져요.
마치 시험 범위가 정해지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처럼요.
몽테뉴는 37세이던 1571년 지친 공직 생활을 접고 성으로 물러나, 이 '인간이라는 한계' 안에서 자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몽테뉴가 살던 시절, 사람들은 인간이 이성을 가진 만물의 영장이라 다른 동물과 차원이 다르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몽테뉴는 여기에 슬쩍 딴지를 걸어요.
그의 가장 긴 글 '레몽 스봉을 위한 변호'에서, 그는 인간이 뽐내는 이성이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다고 지적했어요.
생각해 보면 그래요.
우리는 내일 날씨도 정확히 못 맞히고, 같은 문제를 두고도 사람마다 답이 다르고, 어제의 확신이 오늘 흔들리잖아요.
몽테뉴는 이 인간의 우쭐대는 마음, 즉 '나는 다 안다'는 자만을 낮추자고 했어요.
그가 1576년경 자기 메달에 새긴 프랑스어 표어가 이 태도를 잘 보여줘요.
Que sais-je?(크 세주),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뜻이에요.
잘난 척하는 단언이 아니라, 자기 앎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한 물음표죠.
중요한 건, 몽테뉴가 '그러니 다 포기하자'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그는 흔들리는 인간이라도 저마다 자기 판단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고 봤어요.
페리고르 성 서재의 들보에는 지금도 라틴어 문구 iudicio alternante(유디키오 알테르난테), '판단을 번갈아 가며'가 새겨져 있어요.
한 자리에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저울추처럼 오가며 판단하는 태도예요.
| 흔한 오해 | 몽테뉴의 인간 조건 |
|---|---|
| 사람은 완벽을 향해 가야 한다 | 사람은 원래 흔들리고 죽는 존재다 |
| 흔들림은 부끄러운 약점이다 | 흔들림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바탕이다 |
| 확신이 강할수록 지혜롭다 | '나는 무엇을 아는가' 물을수록 지혜롭다 |
이렇게 자기 한계를 인정하니, 남이 나와 달라도 쉽게 틀렸다고 몰아붙이지 않게 돼요.
'나도 흔들리는 사람이니 너도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이 생기거든요.
이 온화한 태도는 훗날 여러 사람에게 이어졌어요.
SNS에는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넘쳐요.
그럴수록 내 흔들림이 유독 초라하게 느껴지죠.
몽테뉴의 인간 조건은 여기에 조용히 말을 걸어요.
죽고 변하고 실수하는 건 나만의 결함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지고 사는 몫이라고요.
그러니 완벽해지려 안간힘 쓰기보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하고 한 번 멈춰 물어보는 것.
몽테뉴는 그 물음 속에 오히려 편안함과 너그러움이 있다고 보여줬어요.
몽테뉴의 '인간 조건(condition humaine)'은, 사람은 죽고 변하고 자주 틀리는 평범한 존재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생각이에요.
낙마 사고로 죽음을 가까이 느낀 뒤 그는 이 한계를 부끄러움이 아니라 삶의 바닥으로 삼았어요.
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겸손한 물음과 iudicio alternante(판단을 번갈아 가며)라는 태도가 그 핵심이고요.
흔들림을 인정하는 이 마음이, 나와 남을 함께 너그럽게 대하는 힘이 된다는 것 하나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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