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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피론주의는 무엇 하나 확실히 안다고 우기지 않고 판단을 잠시 멈추는 태도예요. 몽테뉴는 우리의 감각과 이성이 자주 틀리기 때문에, 성급히 결론을 내리는 대신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판단을 유보했어요.
친구들끼리 게임을 하다가 "방금 그거 반칙이야" "아니야, 정당해" 하고 다툰 적 있죠?
양쪽 다 자기가 맞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실 누구도 100% 증거를 대지는 못해요.
이럴 때 "음, 나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어. 좀 더 두고 볼래"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가 바로 피론주의(pyrrhonisme)에 가까운 태도를 가진 사람이에요.
피론주의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회의주의의 한 갈래예요.
핵심은 간단해요.
"우리는 무엇도 확실하게 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니 성급하게 '이게 맞다'고 못 박지 말고, 판단을 잠시 멈추자"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또 단정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이에요.
오히려 단정 자체를 미루는 태도, 즉 판단을 유보하는 마음가짐이지요.
미셸 드 몽테뉴는 1533년부터 1592년까지 살았던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예요.
그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레몽 스봉이라는 사람이 쓴 <자연신학>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는데, 이 인연이 나중에 그의 회의주의로 이어져요.
몽테뉴가 남긴 책 <수상록> 안에는 가장 긴 장(章)인 '레몽 스봉을 위한 변호(Apologie de Raymond Sebond)'가 있어요.
학자들은 바로 이 글에서 몽테뉴가 피론주의를 받아들였다고 봐요.
그는 인간의 감각이 얼마나 자주 착각하는지, 같은 일을 두고 나라마다 사람마다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하나하나 짚어요.
그러면서 "그런데도 우리가 무엇을 확실히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라고 되묻지요.
이 태도는 고대 그리스의 회의주의 저술가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에게서 빌려온 것인데, 몽테뉴는 그걸 그대로 옮기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상당히 바꿔 썼어요.
몽테뉴는 1576년쯤 자신의 개인 메달을 직접 만들면서, 나이와 함께 표어 두 개를 새겼어요.
마음에 늘 새기고 싶었던 문장이었던 셈이에요.
하나는 그리스어 'Epecho'(에페코)로, '나는 판단을 유보한다'는 뜻이에요.
다른 하나는 중세 프랑스어 'Que sçay-je?'(오늘날 표기로는 'Que sais-je?'), 즉 '나는 무엇을 아는가?'예요.
이 물음이 바로 몽테뉴 피론주의를 대표하는 말이에요.
잘난 척하며 "내가 다 안다"고 외치는 대신, 아는 척을 멈추고 자기 자신에게 계속 물음표를 던지는 거죠.
성의 서재 들보에는 라틴어로 'iudicio alternante'('판단을 번갈아 가며')라는 문구도 새겨 오늘까지 남아 있어요.
판단을 대하는 태도를 나눠 보면 피론주의가 어디쯤 있는지 더 잘 보여요.
| 태도 | 하는 말 | 특징 |
|---|---|---|
| 독단 | "이게 정답이야, 끝" | 확실하다고 못 박음 |
| 반대편 독단 | "아무것도 알 수 없어" | 모른다고 또 못 박음 |
| 피론주의 | "나는 무엇을 아는가?" | 판단 자체를 잠시 멈춤 |
피론주의는 맨 아래 칸이에요.
"정답이다"라고도, "영영 모른다"라고도 서두르지 않고, 저울이 어느 한쪽으로 확 기울지 않게 판단을 붙들어 두는 거예요.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어요.
몽테뉴를 "모든 걸 의심하며 절망한 회의주의자"로만 읽는 건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일 뿐이에요.
오늘날 학자들은 그가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회의주의를 상당히 변형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해요.
실제로 몽테뉴는 <수상록> 여기저기서 관습을 넘어선 '이성'이나 '자연' 같은 보편적 기준을 우리가 여전히 떠올릴 수 있다고 봤어요.
그러니 그를 "뭐든 상대적이니 다 괜찮다"는 사람으로 단정하면, 그의 글 속 진지한 대목들을 놓치게 돼요.
판단을 멈추는 건 포기가 아니라, 더 정직하게 계속 생각하기 위한 준비였던 셈이에요.
몽테뉴 피론주의는 확실한 앎이 없으니 성급한 단정을 멈추자는 태도예요.
그는 게임의 반칙을 두고 다투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아직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감각과 생각이 자주 틀린다는 걸 인정하고 판단을 유보했어요.
그 마음을 'Epecho'('나는 판단을 유보한다')와 '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표어에 담았지요.
다만 이 멈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포기가 아니라, 더 정직하게 계속 묻기 위한 태도였다는 점만 기억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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