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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페트라르카는 하늘의 구원을 바라는 영혼과, 사랑과 명예를 향한 욕망 사이에서 어느 한쪽도 이기지 못한 채 흔들렸어요. 이 팽팽한 줄다리기, 어느 쪽도 놓지 못하는 마음 자체가 그의 사상이 남긴 가장 인간적인 장면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밤이 있죠.
"이제 그만 자고 내일을 위해 쉬어야지" 하는 마음과, "조금만 더 이 영상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드는 밤이요.
머리로는 옳은 걸 알지만, 몸과 마음은 다른 걸 원해요.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1304년에 태어나 1374년에 세상을 떠난 14세기 이탈리아 시인이자, 고전을 되살리며 '인문주의'라는 새 시대를 연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는 평생 이 밤 같은 줄다리기가 있었어요.
한쪽에는 하느님과 구원을 바라는 '영혼'이, 다른 한쪽에는 사랑과 세상의 명예를 원하는 '욕망'이 있었죠.
그는 이 둘 중 하나를 깨끗이 고르지 못했고, 바로 그 갈등을 숨기지 않고 글로 남겼어요.
페트라르카는 성직에 있었기에 결혼은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들 조반니(1337년생)와 딸 프란체스카(1343년생)를 낳았고, 훗날 자기 자식으로 인정했어요.
영혼은 하늘을 향하라 하는데, 몸은 세상의 사랑을 살고 있었던 거예요.
이 하나만 봐도 그의 마음이 얼마나 두 갈래였는지 보이죠.
욕망은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하나는 사랑이고, 하나는 명예예요.
재미있게도 그가 평생 사모한 여인의 이름 '라우라(Laura)'는, 시인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한 '월계관(lauro)'과 발음이 겹쳐요.
사랑과 명예라는 두 욕망이 이름 속에서 하나로 포개진 셈이죠.
그는 실제로 로마에서 계관시인으로 즉위할 만큼 명예를 손에 넣었지만, 그럴수록 "이런 것들이 내 영혼을 구원해 줄까?"라는 물음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라틴어로 <나의 비밀>(Secretum)이라는 글을 썼어요.
제목 그대로 남에게 잘 보이려는 글이 아니라, 자기 안의 비밀스러운 싸움을 들여다본 글이에요.
여기서 그는 영혼의 목소리와 욕망에 붙들린 자신을 마주 세우고, 어느 쪽도 쉽게 이기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그렸어요.
이 마음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건 <칸초니에레> 134번 소네트의 첫 두 줄이에요.
"Pace non trovo, et non ò da far guerra; / e temo, et spero; et ardo, et son un ghiaccio."
"나는 평화를 찾지 못하나 전쟁을 벌일 마음도 없다; 두려워하고 또 바라며, 불타오르면서도 얼음이 되어 있다."
평화도 없고 싸움도 못 하고, 무서우면서 기대하고, 뜨거우면서 차가운 상태.
이건 딱 갈등에 갇힌 사람의 마음이에요.
사랑을 버리자니 아프고, 붙들자니 죄스럽고요.
그래서 그는 어느 한쪽으로 결론 내리는 대신, 그 흔들리는 상태 자체를 시로 붙잡았어요.
이 갈등은 그의 사상 전체와도 이어져요.
페트라르카가 소중히 여긴 말이 '인간성(humanitas)'인데, 인간다운 삶의 가치 전체를 뜻해요.
그는 중세처럼 오직 신만 바라보는 대신, 흔들리고 욕망하는 인간 자신에게로 눈을 돌렸어요.
영혼과 욕망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마음까지 감추지 않은 게, 바로 그가 '인간'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 순간이었던 거죠.
우리도 매일 작은 갈등을 겪어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미래를 위한 절제와 지금의 즐거움 사이에서요.
페트라르카가 특별했던 건 이 갈등을 부끄러워하며 감춘 게 아니라, 정면으로 바라보고 글로 남겼다는 점이에요.
답을 깔끔하게 내지 못해도 괜찮다고, 흔들리는 마음도 나의 일부라고 그는 보여 줬어요.
페트라르카의 '영혼과 욕망의 갈등'은, 구원을 바라는 마음과 사랑·명예를 원하는 마음이 한 사람 안에서 끝내 화해하지 못한 이야기예요.
그는 성직에 있으면서도 자식을 두었고, 명예를 얻고도 영혼을 걱정했으며, <나의 비밀>과 소네트 134번에서 그 흔들림을 정직하게 적었어요.
답을 내지 못한 그 갈등이야말로, 신만 보던 시대에서 인간 자신을 보기 시작한 첫걸음이었어요.
그것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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