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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페트라르카는 1336년 프랑스의 몽 방투에 올라 정상 풍경에 감탄하다가, 정작 올려다봐야 할 곳은 눈앞의 산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이라는 걸 느꼈어요. 바깥 세계로만 향하던 시선을 안쪽 자신에게로 돌린 이 순간을 '내면으로의 등반'이라고 부릅니다.
1336년 4월 26일, 프랑스 프로방스에 있는 몽 방투(높이 1,912미터)에 한 남자가 올랐어요.
고전을 되살리자고 외치며 인문주의 시대를 연 14세기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였죠.
그는 동생 게라르도와 하인 둘을 데리고 산을 올랐고, 이 경험을 고해신부 디오니지 디 보르고 산세폴크로에게 보낸 편지(친근서한집, Familiares IV, 1)에 적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주말에 등산 앱을 켜고 산에 오르는 이유는 대개 하나예요.
정상에서 확 트인 풍경을 보려고요.
페트라르카도 딱 그 마음이었어요.
특별한 임무 때문이 아니라 '그냥 높은 데서 보고 싶어서' 올랐거든요.
이건 그 시대에 꽤 낯선 일이었어요.
당시엔 산이란 그저 넘어야 할 험한 장애물이었지, 감상하러 가는 곳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야기의 핵심은 정상에서 벌어져요.
발밑으로 프로방스의 산과 강이 펼쳐지고, 멀리 바다까지 보일 듯한 순간, 페트라르카의 시선은 갑자기 바깥에서 안으로 방향을 틀어요.
눈앞의 웅장한 풍경보다 정작 들여다본 적 없는 게 하나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이었어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우리는 남의 SNS 사진은 하루에도 수백 장 넘겨 보면서, 정작 오늘 내 기분이 어땠는지는 한 번도 안 들여다볼 때가 많잖아요.
페트라르카가 산꼭대기에서 느낀 게 딱 그거였어요.
세상 구경에 홀려 정작 가장 가까운 자기 내면은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이 등반은 발로 오른 산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마음으로 오른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됩니다.
이 태도가 왜 중요하냐면, 페트라르카 사상의 뿌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는 세상의 중심을 신에게만 두던 중세식 사고에서, 인간의 감정·고민·가치를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쪽으로 무게를 옮긴 사람이에요.
이 '인간다움'을 그는 라틴어로 후마니타스(humanitas)라고 불렀죠.
몽 방투 정상에서 시선을 자기 안으로 돌린 장면은, 그 큰 전환을 아주 작게 압축해 보여 주는 한 컷인 셈이에요.
흔히 페트라르카를 '풍경을 즐기려 산에 오른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소개해요.
멋진 말이지만, 정확하진 않아요.
그보다 몇 년 앞서 학자 장 뷔리당도 같은 몽 방투에 올랐고, 중세에도 쾰른 대주교 안노 2세처럼 산을 오른 기록이 남아 있거든요.
'최초'라는 수식은 걷어 내는 게 맞아요.
그러니 이 사건에서 진짜 알맹이는 '누가 처음 올랐나'가 아니에요.
심리학자 제임스 힐먼은 아예 관점을 뒤집어요.
몽 방투 이야기의 참뜻은 올라간 순간이 아니라 내려온 순간, 즉 '영혼의 골짜기로 돌아오는 하산'에 있다고요.
정상에서 얻은 깨달음을 안고 다시 일상으로 걸어 내려오는 그 발걸음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됐다는 해석이죠.
정상 정복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 거기에 무게가 있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가 700년 가까이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해요.
우리도 매일 똑같은 실수를 하니까요.
남을 부러워하며 바깥만 보다가, 정작 내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놓쳐요.
페트라르카는 산꼭대기에서 그 시선을 잠깐 반대로 돌렸을 뿐인데, 그 작은 방향 전환이 편지 한 통으로 남아 두고두고 읽히게 됐어요.
등산이든 여행이든, 멋진 풍경 앞에 섰을 때 잠깐 눈을 감고 '지금 나는 어떤가'를 물어보는 것.
페트라르카가 몽 방투에서 한 일이 바로 그거였고, 우리가 오늘 따라 해 볼 수 있는 것도 그거예요.
페트라르카의 몽 방투 등반은 1336년, 풍경을 보려고 산에 올랐다가 시선을 자기 내면으로 돌린 사건이에요.
진짜 오른 것은 눈앞의 산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죠.
'최초의 근대 등반가'라는 통설은 정확하지 않지만, 세상 밖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자기 안으로 돌린 이 장면은 그가 연 인문주의 정신을 압축해서 보여줘요.
남과 세상만 구경하지 말고 가끔 자기 마음도 한 번 올려다보라는 것, 그것이 이 오래된 등반이 지금도 건네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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