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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퍼트넘은 우리가 통 속의 뇌라면 "나는 통 속의 뇌다"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어서, 그 의심이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고 보았어요. 말의 뜻은 머릿속이 아니라 세상과의 진짜 연결에서 나오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잠들기 전에 이런 생각 해본 적 있나요? 지금 내가 보는 이 세상이 사실은 누군가 만든 가짜라면 어떡하지, 하는 상상이요. 미국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은 1926년부터 2016년까지 90년을 살면서, 이 엉뚱해 보이는 상상을 아주 진지한 질문으로 바꿔 놓았어요. 그리고 놀랍게도, 그 의심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답까지 내놓았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 볼게요.

상상을 하나 해볼게요. 어떤 과학자가 사람의 뇌만 쏙 꺼내서, 영양분이 가득한 큰 통에 담가 둬요. 그리고 뇌에 가느다란 전선을 연결해서 신호를 계속 보내요. "지금 너는 학교에 있어", "친구랑 떡볶이를 먹고 있어" 같은 신호를요. 뇌는 그 신호를 받고 진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철석같이 믿겠죠.
이게 바로 '통 속의 뇌' 이야기예요. 요즘으로 치면 아주 정교한 가상현실 게임 속에 갇힌 뇌라고 보면 돼요. 게임 속 캐릭터는 자기가 게임 안에 있다는 걸 절대 모르잖아요. 그럼 혹시 우리도 지금 통 속에 담긴 채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 질문 앞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등골이 서늘해져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나는 통 속 뇌가 아니다"라고 증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거든요.
보통은 여기서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모른다"며 끝나요. 그런데 퍼트넘은 1981년에 펴낸 책 '이성, 진리, 역사'에서 전혀 다른 길을 텄어요.
열쇠는 '말의 뜻이 어디서 오는가'예요. 비유를 들어볼게요. 강아지를 한 번도 본 적 없고, 사진으로 본 적도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강아지'라는 말을 쓴다면, 그 말이 진짜 강아지를 가리킬 수 있을까요? 퍼트넘은 "아니다"라고 봐요. 어떤 단어가 무언가를 가리키려면, 그 무언가와 실제로 연결된 적이 한 번은 있어야 하거든요.
자, 이제 통 속의 뇌를 봐요. 이 뇌는 진짜 통도, 진짜 뇌도 한 번도 닿아 본 적이 없어요. 오직 전선이 보낸 신호만 겪었죠. 그래서 이 뇌가 "나는 통 속의 뇌다"라고 말해도, 그 '통'과 '뇌'는 진짜 통과 뇌를 가리키지 못해요. 신호가 만들어 낸 가짜 그림을 가리킬 뿐이죠. 결국 "나는 통 속의 뇌다"라는 문장은 참이 될 수가 없어요. 의심이 자기 입을 스스로 막아 버리는 셈이에요.

퍼트넘은 이 생각을 '쌍둥이 지구'라는 또 다른 상상으로 단단하게 다졌어요. 1975년에 쓴 글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지구와 똑같이 생긴 쌍둥이 지구가 있다고 해봐요. 딱 하나만 달라요. 거기선 물이 우리가 아는 H2O가 아니라 다른 물질이에요. 겉보기엔 똑같이 투명하고 마실 수 있고 비로 내리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성분이 다른 거죠. 두 지구에 사는, 생김새도 생각도 똑같은 두 사람이 각자 "물"이라고 말해요.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은 완전히 똑같아요. 그런데 한 사람의 "물"은 H2O를, 다른 사람의 "물"은 그 다른 물질을 가리켜요.
같은 머리, 다른 뜻이죠. 퍼트넘은 여기서 유명한 한마디를 남겼어요. "뜻은 머릿속에 있지 않다." 단어의 의미는 내 머리 안에서 혼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사는 바깥 세상과 이어져서 정해진다는 거예요. 이걸 어려운 말로 '의미의 외재성'이라고 불러요. 뜻이 안이 아니라 바깥에 걸려 있다는 뜻이에요.

통 속의 뇌 이야기는 "내가 가짜 세상에 살아도 영영 모르지 않을까" 하는 오싹한 의심에서 출발해요. 퍼트넘의 답은 의외로 든든해요. 말의 뜻은 머릿속에서 혼자 피어나는 게 아니라, 진짜 세상과 닿아야 비로소 생긴다는 거죠. 그래서 통 속의 뇌는 "나는 통 속의 뇌다"라는 말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다음에 누군가 "세상이 다 가짜면 어떡해"라고 묻거든, 그렇게 또렷이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진짜 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증거라고 답해 주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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