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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퍼트넘은 똑같이 생긴 두 세계를 상상해서, 낱말의 뜻이 우리 머릿속이 아니라 바깥 세상에 절반쯤 달려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같은 "물"이라는 말이라도 그 말이 가리키는 실제 물질이 다르면 뜻도 달라진다는 거예요.

미국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은 1975년에 쓴 글에서 깜짝 놀랄 말을 했어요. "의미는 머릿속에 있지 않습니다." 좀 이상하죠? 우리는 보통 어떤 낱말의 뜻은 내 머릿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사과라는 말의 뜻은 내 마음속 사과 그림이고, 그걸 알면 그 말을 안다고요. 그런데 퍼트넘은 그게 절반만 맞는 이야기라고 했어요. 이 글에서는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쌍둥이 지구'라는 상상 실험을 천천히 따라가며 알아볼게요. 어렵지 않아요. 그냥 똑같이 생긴 두 별을 떠올리기만 하면 돼요.

여기 우리 지구가 하나 있어요. 그리고 저 멀리 우주 어딘가에 우리 지구랑 완전히 똑같이 생긴 '쌍둥이 지구'가 있다고 해 봐요. 거리도, 건물도, 나무도, 사람도 다 똑같아요. 거기에도 나랑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생각하는 '쌍둥이 나'가 살고 있어요. 내가 오늘 아침에 먹은 것까지 똑같이 먹었죠.
딱 하나만 달라요. 쌍둥이 지구의 강과 바다에 흐르는 건 우리가 아는 물이 아니에요. 우리 물은 과학 시간에 배운 대로 에이치투오(H2O)예요. 그런데 쌍둥이 지구의 물은 겉보기엔 똑같이 투명하고, 마실 수 있고, 비도 되고, 빨래도 되지만, 그 속을 아주 작은 단위까지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물질로 되어 있어요. 퍼트넘은 그 정체 모를 물질을 그냥 '엑스와이지(XYZ)'라고 불렀어요.
이제 두 지구의 사람이 똑같이 "물 좀 줘"라고 말해요. 두 사람의 머릿속 생각은 완전히 똑같아요. 글자 하나, 느낌 하나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한 사람이 가리키는 건 H2O고, 다른 사람이 가리키는 건 XYZ예요. 같은 말, 같은 생각인데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상은 서로 다른 거죠. 여기서 한 가지 못 박아 둘 게 있어요. 두 사람은 아직 과학이 발달하기 전이라 물의 정체가 H2O인지 XYZ인지 둘 다 몰라요. 그러니까 "내가 더 똑똑해서 다르다"가 아니라, 머릿속이 완전히 똑같은데도 가리키는 게 갈린다는 게 이 실험의 핵심이에요.

여기서 퍼트넘이 던지는 질문이 바로 이거예요. "물"이라는 낱말의 진짜 뜻은 어디서 정해지는 걸까요?
만약 뜻이 오로지 머릿속에만 있다면, 두 사람의 머릿속이 똑같으니까 "물"의 뜻도 똑같아야 해요. 그런데 한쪽은 H2O를, 다른 쪽은 XYZ를 가리키고 있잖아요. 가리키는 게 다르면 뜻도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뜻을 정하는 건 머릿속만이 아니라, 그 말이 실제로 가리키는 바깥 세상의 물질이기도 한 거죠.
비유를 하나 들어볼게요. 내가 "우리 엄마"라고 말할 때, 그 말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내 머릿속 이미지만으로 정해지지 않아요. 실제로 나를 낳아 길러준 사람이 누구냐에 달려 있죠. 옆집 친구가 똑같은 마음으로 "우리 엄마"라고 말해도 가리키는 사람은 전혀 다른 분이잖아요. 머릿속이 비슷해도 가리키는 대상은 바깥 세상이 정해 줘요. 낱말은 이렇게 늘 세상과 손을 잡고 있어요.
이걸 어려운 말로 '의미 외재성'이라고 해요. 뜻, 그러니까 의미가 머릿속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바깥, 즉 외부에도 절반쯤 걸쳐 있다는 뜻이에요. 퍼트넘이 "의미는 머릿속에 있지 않습니다"라고 한 게 바로 이 이야기예요.

재밌는 점이 하나 더 있어요. 우리는 사실 "물"이 H2O라는 걸 몰라도 "물"이라는 말을 아무 문제 없이 잘 써요. 옛날 사람들은 물의 정확한 성분을 몰랐지만 "물 떠와라"라는 말은 똑같이 통했어요. 그 정확한 정체는 과학자들이 알고, 보통 사람들은 그 앎에 살짝 기대어 말을 쓰는 거예요.
퍼트넘은 이걸 '언어의 분업'이라고 불렀어요. 일을 나눠 맡듯이 말도 나눠 맡는다는 거죠. 마을 사람 모두가 진짜 금을 가려낼 줄 몰라도, 금을 감별할 줄 아는 세공사가 한 명 있으면 "금"이라는 말은 온 마을에서 잘 굴러가요. 의사가 병 이름을 정확히 알아 주니까 우리는 "감기 걸렸어"라는 말을 편하게 쓰고요. 낱말의 뜻은 나 혼자 짊어지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바깥 사물이 함께 떠받치고 있는 셈이에요.

퍼트넘 전에는 많은 철학자들이 '뜻은 곧 머릿속 생각'이라고 믿었어요. 낱말을 안다는 건 그 뜻을 마음 안에 그림처럼 지니는 일이라고요. 쌍둥이 지구는 그 오래된 믿음을 툭 건드려 흔들었어요. 내가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도, 내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세상이 절반쯤 정해 준다는 거니까요.
이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에요.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는 게 어떤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거든요. 내 머릿속 생각만으로는 세상과 제대로 이어질 수 없고, 진짜로 알려면 바깥 세상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퍼트넘의 이 짧은 사고실험은 1975년 이후로 의미와 마음을 다루는 철학에서 두고두고 이야기되는 단골 주제가 되었어요.

퍼트넘의 쌍둥이 지구는 딱 한 가지를 묻는 실험이에요. 머릿속이 똑같은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해도 가리키는 게 다를 수 있다면, 그 말의 뜻은 머릿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낱말은 우리 마음과 바깥 세상이 같이 붙잡고 있는 끈이에요. 그래서 내가 말을 안다는 건, 세상과 잘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다음에 "물"이라고 말할 때, 그 짧은 한 마디가 사실은 저 강과 바다까지, 그리고 그 정체를 아는 사람들에게까지 손을 뻗고 있다는 걸 한 번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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