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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500년 전, 한 남자가 책상 위에 대나무 막대 수천 개를 늘어놓고 원주율을 소수점 일곱 자리까지 계산했다.
조충지(祖沖之, 429~500)는 5세기 중국의 수학자로, 그가 내놓은 값은 3.1415926 < π < 3.1415927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 계산기로 0.1초 만에 확인하는 그 숫자를, 그는 손으로 구했다.
방법은 이렇다.
원 안에 정다각형을 그리고 변의 수를 두 배씩 늘려나가면, 다각형의 둘레가 점점 원의 둘레에 가까워진다.
조충지는 이 방식을 발전시킨 선배 수학자 유휘(劉徽)의 뒤를 따라 12288각형까지 밀고 나갔다.
12288개의 변을 가진 도형의 둘레를 손으로 계산한다는 게 어느 정도냐면, 계산기 없이 여섯 자리 숫자를 하루 종일 곱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조금 감이 온다.
그가 사용한 도구는 산가지, 즉 대나무 막대를 바닥에 늘어놓아 자릿값을 표시하는 고대 계산법이었다.
아라비아 숫자도, 종이도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시대의 이야기다.
그 끝에 나온 결론이 355/113이라는 분수 근사값이다.
이를 밀률(密率)이라 하는데, 소수로 풀면 3.14159292...로 실제 원주율과의 오차가 소수점 일곱째 자리에서야 비로소 생긴다.
대나무 막대로, 1500년 전에.

조충지가 황제에게 더 정확한 달력을 바친 날, 신하 한 명이 그것을 짓밟았다.
462년, 조충지는 대명력(大明曆)을 완성해 당시 황제 송 효무제에게 바쳤다.
대명력은 1년을 365.2428일로 계산한 달력으로, 현대 측정값과 비교하면 겨우 50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1500년 전 사람이 산가지로 계산한 값이 그랬다.
그런데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던 고위 신하 대법흥(戴法興)이 강하게 반발했다.
"옛 성인의 법도를 어지럽힌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둘은 공식 문서를 주고받으며 논쟁을 이어갔지만, 결국 달력은 채택되지 않았다.
조충지는 자신의 달력이 실제로 쓰이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아들 조긍(祖暅)이 황실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대명력이 시행된 것은 510년, 아버지가 죽고 10년이 지난 뒤였다.
더 정확한 걸 만들었다고 해서 바로 쓰이는 법은 없다는 것, 1500년 전에도 그랬다.

조충지가 평생을 바쳐 쓴 수학책은, 너무 뛰어나서 사라졌다.
그의 수학 저작 철술(綴術)은 200년 뒤 당나라 시대에 국립 교육기관 국자감(國子監)의 정규 교재로 채택됐다.
국자감은 오늘날로 치면 국립대학교에 해당하는 곳이다.
학생들은 이 책을 4년간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했다.
그런데 학생도, 교수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철술은 교과 과정에서 빠졌고, 책 자체가 완전히 소실됐다.
오늘날 단 한 페이지도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가 철술의 존재를 아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한 기록" 덕분이다.
책은 사라졌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 좌절했다는 기록만 남은 셈이다.
천재의 저주라는 말이 딱 이런 상황을 위해 있는 것 같다.

조충지가 남긴 모든 책은 사라졌지만, 그가 계산한 일곱 자리 숫자는 별 이름이 되어 남았다.
그의 원주율 7자리 기록은 약 900년간 세계 어디서도 깨지지 않았다.
이 기록을 처음 넘어선 것은 1424년 페르시아의 수학자 알카시(Jamshid al-Kashi)로, 소수점 16자리까지 계산했다.
5세기 중국의 기록이 15세기 페르시아까지 버텨낸 것이다.
그사이 아들 조긍도 업적을 남겼다.
그는 입체 도형의 부피를 구하는 원리를 정리했는데, 이것이 17세기 유럽에서 카발리에리 원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과 완전히 같은 내용이었다.
조긍이 약 1100년 앞서 정리했다는 뜻이다.
책은 전부 사라졌지만 조충지의 이름은 다른 곳에 새겨졌다.
1964년 발견된 소행성 1888번은 'Zu Chong-Zhi'로 명명됐고, 달 표면의 분화구 하나도 그의 이름을 달고 있다.
대나무 막대로 계산한 숫자 일곱 자리가 결국 달에 닿은 셈인데, 그가 알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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