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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424년 어느 날, 사마르칸트의 한 학자가 1500년 묵은 수학 기록을 단숨에 두 배로 갈아치웠다.
그 사람이 잠시드 알카시(Jamshīd al-Kāshī)다.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중앙아시아의 학문 도시 사마르칸트로 건너온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다.
그가 깬 기록은 원주율(π)이다.
원의 지름과 둘레 사이의 비율, 3.14…로 시작해 끝없이 이어지는 그 숫자.
알카시는 이것을 소수점 아래 16자리까지 손으로 계산해 『원주율 논고』라는 논문에 담았다.
알카시 이전까지 인류 최고 기록은 5세기 중국 수학자 조충지의 소수점 7자리였다.
약 1500년 동안 아무도 그것을 넘지 못했다.
알카시는 거기에 9자리를 더 붙였다. 한 번에.
비유로 치면 이렇다.
100년간 2시간 5분이었던 마라톤 세계 기록을, 어느 날 누군가 1시간 30분으로 끊어버린 것이다.
스포츠였다면 도핑 검사부터 요청했을 것이다.

알카시가 원주율 16자리를 얻기 위해 동원한 도구는 종이와 잉크, 그리고 8억 변짜리 다각형이라는 머릿속의 도형이었다.
방법의 원리는 단순하다.
원에 내접하는 다각형을 그리고, 변의 수를 늘릴수록 다각형은 원에 가까워진다.
그 다각형의 둘레를 계산하면 원주율을 조금씩 좁혀나갈 수 있다.
알카시는 이 논리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변의 수를 3 곱하기 2의 28제곱, 즉 약 8억 5천만 개까지 늘렸다.
컴퓨터 없이, 손으로 곱셈과 제곱근을 28번 반복하면서.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오차 한계까지 직접 계산해 논문에 함께 적었다.
그리고 검증 절차 끝에 "내가 얻은 16자리는 정확하다"고 써놨다.
사과 한 개의 둘레를 정확히 재기 위해 껍질 위에 8억 개의 점을 찍고 그 점들을 자로 이어 전부 더한다고 생각해 보자.
알카시는 그것을 수 위에서 실제로 해낸 사람이다.

오늘 카페에서 4,500원을 결제할 때 보는 점 하나, 그 표기법을 사람들에게 처음 가르친 사람은 600년 전 페르시아의 한 수학자였다.
1427년, 알카시는 『산술의 열쇠(Miftāḥ al-Ḥisāb)』를 출간했다.
수학 입문서로, 소수점 분수의 표기와 계산법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책이다.
정수 자리 오른쪽에 점을 찍고 그 뒤로 소수를 쓰는, 지금 우리가 매일 쓰는 바로 그 방식이다.
그런데 역사는 다른 이름을 먼저 기억한다.
1585년 네덜란드의 수학자 시몬 스테빈(Simon Stevin)이 십진소수를 유럽에 처음 소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틀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알카시는 그보다 158년 앞서 같은 체계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누군가 스마트폰을 발명했는데, 150년이 지난 뒤 다른 나라가 "이건 우리가 처음"이라고 발표한 셈이다.
정보가 전달되지 않으면, 발명은 없었던 것이 된다.
원주율 16자리를 계산한 사람은, 자신의 마지막 5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 줄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
알카시가 사마르칸트에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울루그 베그(Ulugh Beg) 덕분이다.
티무르 제국의 황손이자 학자 군주였던 그는 사마르칸트에 대형 천문대를 세우고 당대 최고 수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알카시는 그 천문대의 수석 학자로 초청받았다.
알카시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천문대의 학문적 분위기와 울루그 베그의 수학 실력을 상세히 전했다.
황자가 직접 토론에 참여하고 계산 오류를 짚어낼 정도라고 적혔다.
군주와 학자가 동료처럼 수학을 나누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1429년, 알카시가 갑자기 사망했다.
『원주율 논고』와 『산술의 열쇠』를 막 완성한 직후였다.
한 비잔틴 측 사료는 그의 죽음을 동료 학자들의 시기에서 비롯된 암살로 기록한다.
노벨상급 과학자가 생애 가장 중요한 논문을 발표한 직후, 갑자기 사라진 것과 같다.
그가 남긴 숫자는 600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하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지금도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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