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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신을 가장 큰 목소리로 부정한 학자는, 정작 자신을 7점 만점 무신론자라고 부르길 거부했어요.
리처드 도킨스는 2006년 출간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 독특한 척도를 제안해요.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1점부터 7점까지 나누는 거예요.
1점은 "신이 100% 존재한다"는 완전한 유신론, 7점은 "신이 100% 없다"는 완전한 무신론이에요.
그리고 도킨스는 자신이 몇 점인지 직접 적었어요.
7점이 아니라 6.9점이에요.
평생 채식만 해 온 사람이 "나는 99% 채식주의자야"라고 말하는 상황이에요.
그 0.1% 때문에 태도 전체가 달라 보이죠.
도킨스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신이 없다고 거의 확신하지만, 절대적 확신은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에요."
그가 거부한 건 신이 아니라 교조주의예요.
증거 없는 100% 확신은 종교의 방식이고, 자신은 그 방식을 쓰지 않겠다는 거예요.
세계 최고의 무신론자가 정작 "무신론자"라는 딱지보다 "과학자"라는 딱지를 더 소중히 여긴 거예요.

도킨스는 무신론자로 태어나지 않았어요.
16살까지 그는 매주 예배에 가는 성공회 학생이었어요.
성공회는 영국 국교회예요.
왕실과 국가가 공식으로 인정하는 기독교 교단으로, 영국에서는 세례를 받는 것이 태어나면 하는 당연한 의례였어요.
도킨스도 1941년 영국령 케냐에서 태어나 그렇게 세례를 받았어요.
이후 영국 본토의 기숙학교 운들 스쿨(Oundle School)에 진학한 도킨스는 견진성사까지 받아요.
견진성사는 "저는 이제 스스로 신앙을 선택합니다"라고 공개 선언하는 의식이에요.
어른이 되어 억지로 가는 예배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선택한 신앙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15~16세 무렵, 그가 진화론을 진지하게 접한 뒤 생각이 바뀌기 시작해요.
어떤 회사를 가장 격렬히 비판하는 사람이 알고 보니 그 회사 출신 직원이었던 상황과 비슷해요.
도킨스는 종교를 밖에서 공격한 게 아니라, 안에서 나온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의 비판이 더 날카로워요.
믿었던 사람이 "이건 아니에요"라고 말할 때, 그 말의 무게는 처음부터 믿지 않은 사람의 말과 달라요.

진화생물학을 통째로 다시 쓴 책은,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영국의 겨울에 쓰였어요.
도킨스의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는 1976년 출간돼요.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원고를 쓴 건 1973~1974년, 영국이 '3일 노동제'를 시행하던 시기예요.
3일 노동제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믿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석유 위기와 광부 파업이 겹치면서 영국 정부가 주 3일만 전기를 공급하는 비상조치를 내린 거예요.
공장도, 사무실도, 집도 일주일에 4일은 전기가 없었어요.
도킨스는 옥스퍼드 자택에서 촛불을 켜놓고 원고를 썼다고 회고해요.
정전 때문에 와이파이가 끊긴 카페에서 노트북 대신 종이로 보고서를 쓰는 상황을 상상해보세요.
그런데 그 보고서가 나중에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과학책 중 하나가 되는 거예요.
『이기적 유전자』는 단순한 과학 교양서가 아니에요.
"진화의 주체는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 자체"라는 당시에는 급진적인 주장을 담은 책이에요.
그 주장이 촛불 아래에서 타이프라이터로 쓰였어요.

도킨스가 학문을 위해 만든 단어 하나가, 오늘날 그를 가장 자주 조롱하는 도구가 됐어요.
『이기적 유전자』의 마지막 장에서 도킨스는 새 개념을 제안해요.
유전자가 생물학적으로 복제되고 확산되듯, 문화적 아이디어도 같은 방식으로 퍼진다는 거예요.
그는 이 개념에 이름을 붙였어요. 밈(meme)이에요.
그리리스어로 '모방'을 뜻하는 mimeme에서 따왔고, 유전자(gene)와 발음이 비슷하도록 일부러 줄인 이름이에요.
도킨스는 이걸 진지한 학문적 제안으로 내놓았어요.
언젠가 "밈학(memetics)"이라는 독립 학문 분야가 생기길 기대하면서요.
그런데 50여 년이 지난 지금, '밈'은 인터넷 짤을 가리키는 말이 됐어요.
고양이 사진, 합성 이미지, 유행하는 드립이 모두 밈이에요.
그리고 그 밈 중 상당수는 도킨스 본인을 풍자하는 짤이에요.
자기가 발명한 운동을 후배들이 코미디 무대에서 패러디 동작으로 쓰는 상황이에요.
도킨스는 이 아이러니를 직접 인정했어요. "내가 만든 단어가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어쩌면 그게 바로 밈의 본질이기도 해요."
그가 만든 단어가 그의 의도를 벗어나 스스로 진화한 거예요.
이기적 유전자를 발견한 사람이, 이기적으로 퍼져나가는 자기 이름을 구경하고 있는 셈이에요.
6.9점짜리 무신론자는, 자신의 유산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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