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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황제가 신의 안부를 물었을 때, 라플라스의 대답은 단 한 줄이었어요.
1802년 무렵,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라플라스가 막 완성한 『천체역학』을 손에 들었어요.
태양계 행성들의 궤도와 움직임을 순수한 수학으로만 풀어낸 5권짜리 대작이었어요.
책을 훑어보던 나폴레옹이 물었어요. "왜 이 책에는 우주의 창조자에 대한 언급이 없는가?"
라플라스는 망설임 없이 답했어요.
"Sire, 저는 그런 가설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얼마나 대담한 발언인지 느끼려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회사 회장이 "왜 보고서에 내 이름이 없지?"라고 물었는데, 담당자가 "그 변수는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라고 대꾸한 거예요.
가톨릭 국가의 황제 앞에서, 신을 검증이 필요한 가설 중 하나로 격하시킨 거예요.

라플라스에게 우연이란 없었어요.
우연은 그냥 우리가 아직 계산하지 못한 원인일 뿐이었거든요.
1814년 출판한 『확률에 관한 철학적 시론』에서 그는 이렇게 썼어요.
"우주의 모든 원자의 위치와 속도를 아는 지성은,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을 한 공식으로 알 수 있다."
후대 사람들은 이 상상 속 존재를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불러요. 신이 아니라, 완벽한 데이터를 가진 계산자예요.
쉽게 말하면 이런 거예요.
일기예보 앱이 100년 뒤 날씨를 초 단위로 맞힐 수 있다면, 라플라스는 그게 원리상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었어요.
우주는 거대한 태엽 시계 같아서, 초기 상태만 정확히 알면 1000년 뒤 침이 어디 있을지 계산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결정론을 설계한 본인의 삶은, 정작 가장 '예측 불가능'했어요.
그는 혁명, 제국, 왕정복고를 모두 살아남았어요.
그것도 매번 가장 유리한 쪽에 서서.

우주를 예측한 남자는, 자기 자리를 6주도 지키지 못했어요.
1799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라플라스를 내무장관으로 임명했어요.
내무장관은 국내 행정 전체를 총괄하는 자리예요.
하지만 라플라스는 약 6주 만에 해임됐어요.
나폴레옹은 훗날 회고록에 이렇게 썼어요.
"그는 모든 곳에서 미묘한 차이를 찾으려 했고, 행정의 자리에 미적분의 정신을 끌고 들어왔다."
무한히 작은 차이를 쪼개 분석하는 수학자의 습관을, 수백만 명이 움직이는 행정 현장에 그대로 들고 온 거예요.
토성의 질량을 0.6% 오차로 계산한 사람이, 막상 부서 회의 하나를 굴리지 못한 셈이에요.
수학에서 '완벽한 정밀도'는 강점이지만, 행정에서는 결정을 질질 끄는 약점으로 변했어요.
결국 황제는 6주 만에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혔어요.

나폴레옹이 무너지자, 라플라스는 책의 첫 장부터 다시 썼어요.
나폴레옹 시절, 라플라스는 백작 작위를 받고 자신의 저서에 황제에게 바치는 헌사를 써 넣었어요.
백작 작위란 오늘날로 치면 국가가 공식 공로를 인정한 훈장 같은 거예요.
그런데 1814년, 나폴레옹이 퇴위하고 부르봉 왕정복고가 시작됐어요.
부르봉 왕가는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수백 년을 통치한 구왕조로, 나폴레옹에게 밀려났다가 다시 권좌에 오른 거예요.
라플라스는 의회에서 나폴레옹 폐위에 찬성표를 던졌어요.
그리고 자신의 저서 후속 판본에서, 황제에게 바쳤던 헌사를 조용히 삭제했어요.
어제까지 책 첫 장에 '폐하께 삼가 바칩니다'라고 적어 두었던 페이지를 통째로 뜯어낸 거예요.
그 대가로 새 왕가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어요.
백작보다 한 등급 높은 자리예요.
'모든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선언한 결정론자가, 자신의 미래만큼은 가장 능숙하게 재설계했어요.
라플라스의 악마는 우주 전체를 계산할 수 있었지만, 라플라스 본인은 그 계산에 손을 댔어요.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설계한 결정론을, 진짜로 믿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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