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오늘 우리가 ∞라는 기호를 보고 무한대를 떠올리는 건, 1655년 영국의 한 수학자가 그렇게 그렸기 때문이에요.
그전까지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끝없음'을 단어로만 표현했어요.
그리스인도, 아랍 수학자도, 르네상스 유럽인도 "한없이 계속된다"는 개념을 글로 서술하는 것밖에 몰랐어요.
그런데 존 월리스는 1655년 출간한 『무한의 산술』에서 그 추상을 기호 하나로 박제해버렸어요.
『무한의 산술』은 라틴어로 Arithmetica Infinitorum, 무한급수와 오늘날 적분의 토대를 다룬 수학책이에요.
새 이모지가 처음 키보드에 추가된 순간과 비슷해요.
그전엔 "말로 다 못 하겠는 감정"을 몇 줄로 써야 했는데, 도형 하나가 그 전부를 대신하게 됐잖아요.
∞도 그랬어요.
옆으로 누운 8자 모양 하나가, 수천 년의 말을 대신하게 됐어요.
이 책을 10여 년 뒤 케임브리지의 한 학생이 직접 베껴 읽었어요.
그 학생은 훗날 "월리스의 책을 읽으며 미적분의 단서를 얻었다"고 회고했는데, 그가 바로 아이작 뉴턴이에요.

수학자 월리스가 옥스퍼드 교수가 된 건 논문 때문이 아니라 암호를 풀어서였어요.
1640년대, 영국은 내전 중이었어요.
영국 내전(1642~1651)은 왕을 지지하는 왕당파와 의회파가 군사적으로 충돌한 전쟁이에요.
결국 왕 찰스 1세가 처형당하는 사건으로 이어졌어요.
케임브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였던 월리스는 의회파 편에 서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의회파가 왕당파 편지를 가로챘고, 내용이 암호로 가득했어요.
그 암호는 다중치환 방식이었어요.
여러 단계를 거쳐 알파벳을 바꿔 쓰는 기법으로, 당시엔 이걸 풀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월리스가 해냈어요.
그 능력 하나로 1649년, 그는 옥스퍼드 새빌리안 기하학 석좌교수로 임명됐어요.
신학 목사가 수학 교수가 됐어요.
반전은 여기서부터예요.
1660년, 처형당했던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가 왕위를 되찾는 왕정복고가 일어났어요.
그러자 월리스는 이번엔 새 왕실의 암호 해독자가 됐어요.
아버지를 처형한 진영을 도왔던 사람이 그대로 아들의 자리도 지킨 거예요.
두 라이벌 기업의 IT 보안을 차례로 맡으면서 양쪽 모두에게 신임받는 외주 개발자 같은 위치였어요.

월리스가 70세에 잠 못 들던 밤 한 일은, 양을 세는 게 아니라 53자리 수의 제곱근을 계산하는 것이었어요.
53자리 수가 어느 정도냐면, 주민등록번호가 13자리예요.
53자리는 그것의 네 배 길이 숫자예요.
그 숫자의 제곱근을, 머릿속으로 계산한 거예요.
월리스는 해냈어요.
잠 못 들던 어느 밤, 침대에 누운 채 그 계산을 머릿속으로 끝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비서에게 27자리짜리 답을 받아쓰게 했어요.
이 일화는 왕립학회가 직접 검증해서 회보에 기록했어요.
왕립학회는 당시 영국 최고의 과학자 모임으로, 오늘날로 치면 국제학술지 심사위원회 같은 곳이에요.
같은 시기 옥스퍼드의 다른 학자들은 그를 '늙은 학자'로 취급하고 있었어요.
그가 어두운 침실에서 혼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면서요.

『리바이어던』을 쓴 그 홉스가, 나머지 인생 25년을 한 수학자와 싸우는 데 썼어요.
토머스 홉스는 "국가는 절대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정치철학서 『리바이어던』으로 유럽에 이름을 알린 사람이에요.
그 홉스가 1655년, 수학 역사상 가장 오래된 난제 중 하나를 풀었다고 선언했어요.
그 난제가 원적 문제예요.
원과 정확히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을 자와 컴퍼스만으로 그릴 수 있는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약 2000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예요.
월리스는 즉시 그 증명을 공개 반박했어요.
오류를 조목조목 짚은 책자를 펴냈어요.
하지만 홉스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다시 반박 책자를 냈고, 월리스가 또 반박했고, 홉스가 또 냈어요.
이 공방이 무려 24년 동안 계속됐어요.
1679년, 홉스는 91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죽을 때까지 그 논쟁은 끝나지 않았어요.
결말은 두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야 나왔어요.
1882년, 원적 문제는 마침내 불가능이라는 판정을 받았어요.
홉스가 죽고 200년이 넘게 지난 뒤였어요.
월리스는 내내 옳았어요.
하지만 어쩌면 홉스는, 단 한 번도 자신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을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