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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47명 사무라이의 죽는 방식은 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붓이 정했어요.
1703년, 일본 전국이 한 사건으로 술렁였어요.
47명의 낭인들이 주군의 원수를 갚고 자수한 거예요.
배경은 이래요.
주군이 궁중 예절을 몰랐다는 이유로 고위 관리 기라 요시나카에게 모욕을 당하고, 격분해서 칼을 뽑았다가 오히려 할복을 명받았어요.
그 주군을 잃은 47명의 가신들이 2년을 기다려 기라를 베고, 주군 무덤 앞에 그 머리를 바쳤죠.
그런데 여기서 막부에 진짜 골치 아픈 질문이 생겼어요.
"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의로운 행동이지만 명백한 불법"인 케이스에 법학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상황이에요.
막부는 당대 최고 학자 오규 소라이(荻生徂徠)에게 의견을 물었어요.
소라이는 자문서에 이렇게 썼어요.
"그들의 행동은 의(義)이지만, 그것은 사사로운 의입니다. 법은 천하의 법이니 처형이 아닌, 무사의 신분에 걸맞은 할복을 명하십시오."
그 글 한 장이 결말을 결정했어요.
47인은 죄인이 아니라 무사로 죽었어요.
오늘날 영화와 연극으로 남은 그 장면, 흰 옷을 입고 조용히 칼을 드는 그 결말이 사실은 한 유학자의 붓끝에서 나온 거예요.

그는 도서관이 없어서 책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야 했어요.
1679년, 소라이가 14살이던 해였어요.
아버지 오규 호안이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노여움을 사서 가즈사, 지금의 지바현 외진 시골로 추방됐어요.
도시 에도의 학자 집안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없는 시골로 쫓겨난 거예요.
책은 거의 없었어요.
소라이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어요. "어머니가 가져온 한문 주석서 한 권이 전부였습니다. 수백 번 읽었습니다."
수백 번이에요.
인터넷도, 도서관도, 강의도 없는 상황에서 같은 책을 수백 번 읽은 거예요.
그런데 그 13년이 반전을 만들어냈어요.
책이 넘쳐나면 '다음 책'으로 넘어가지만, 책이 하나뿐이면 그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소라이는 그 한 권을 닳도록 읽으며 한문 원문을 씹어 읽는 감각을 키웠어요.
이게 훗날 그의 학문 전체를 뒤흔드는 발견으로 이어져요.

그는 일본 학자들 전체에게, 당신들이 800년간 공자를 잘못 읽었다고 말했어요.
헤이안 시대 이후 모든 일본 지식인이 당연하게 써온 방식을 정면으로 부정한 거니까요.
이건 정말 대단한 선언이에요.
당시 일본 학자들이 한문을 읽는 방식은 훈독(訓讀)이에요.
한자를 보면서 어순을 일본어 방식으로 뒤집어 읽는 거예요.
마치 "I love you"를 보면서 속으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읽는 것처럼요.
소라이가 창시한 고문사학(古文辭學)의 핵심은 이거예요.
"공자가 살던 시대의 중국어로 직접 읽어야 공자의 진짜 뜻을 알 수 있다."
번역을 거치는 순간 원문의 뉘앙스가 사라진다는 거예요.
오늘날로 비유하면 이런 상황이에요.
셰익스피어를 한국어 번역본으로만 읽어온 모든 영문학자에게 "당신들은 지금 진짜 셰익스피어를 읽은 게 아닙니다. 16세기 영어 발음으로 직접 읽으세요"라고 선언하는 거예요.
그리고 소라이는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일상에서도 중국어로 대화하게 시켰어요.
이게 그냥 읽기 방식의 차이가 아니에요.
훈독으로 읽으면 "도(道)"가 일본식 윤리로 이해되고, 원문으로 읽으면 전혀 다른 의미가 보여요.
소라이에게 언어는 방법이 아니라, 사상 자체였어요.

그는 자기 아버지를 추방한 정권의 책상 앞에 앉아, 그 정권의 사상을 해체하는 글을 썼어요.
소라이는 에도로 돌아온 뒤 5대 쇼군의 측근 야나기사와 요시야스의 가신이 됐어요.
아버지를 유배 보낸 바로 그 쇼군 정권의 핵심에서 녹을 받은 거예요.
그러면서 그는 『변도(弁道)』와 『변명(弁名)』을 썼어요.
당시 막부의 공식 학문이던 주자학(朱子學), 즉 성리학을 정면으로 비판한 책이에요.
성리학은 "도(道)란 우주의 본래 원리이고, 인간은 그것을 도덕으로 타고난다"고 가르쳤어요.
소라이는 이렇게 말했어요.
"도(道)는 우주 원리 같은 게 아닙니다. 요(堯)·순(舜)·주공(周公) 같은 옛 성왕들이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만든 제도일 뿐입니다."
쉽게 말하면, 도덕이 하늘에서 내려온 게 아니라 인간이 필요에 의해 설계한 것이라는 선언이에요.
이건 막부 체제에 엄청난 함의가 있었어요.
도덕이 자연 원리라면 지금의 권력도 자연의 질서처럼 보이지만, 도덕이 인간이 만든 제도라면 언제든 다시 설계할 수 있는 것이 되니까요.
결국 소라이는 권력이 의지하는 사상의 뿌리를 안에서부터 잘라낸 거예요.
후대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소라이를 "일본 근대 사유의 출발점"이라고 불렀어요.
자신을 해고한 회사에 컨설턴트로 다시 들어가 그 회사의 경영 철학 전체를 보고서로 무너뜨린 사람, 그 비유가 소라이에게 가장 잘 맞아요.
47인의 결말을 정한 그 붓이, 사실은 시대 전체를 다시 쓰고 있었던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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