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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왕자였어요.
결혼했고 딸도 있었어요.
그런데 서른 살에 모든 것을 두고 떠났어요.
우리가 아는 마하비라는 발가벗은 고행자예요.
하지만 출가 전의 그는 비단옷을 걸친 왕족이었어요.
마하비라의 본명은 바르다마나로, 기원전 6세기 인도 북부의 크샤트리야 왕족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크샤트리야는 인도의 신분 제도에서 전사와 귀족을 뜻하는 계층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재벌가 장남 정도라고 보면 돼요.
그는 결혼해 딸까지 두었고, 겉으로 보면 그냥 평범한 가장이었어요.
그러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형에게 허락을 구하고 집을 나섰어요.
나이 서른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대기업 임원이 어느 날 아무 예고 없이 가족과 집과 통장을 다 두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이에요.
그것도 맨몸으로요.

그는 12년 동안 옷을 입지 않았어요.
추위도, 더위도, 모욕도 그대로 받았어요.
집을 나서자마자 마하비라는 입고 있던 옷을 벗었어요.
옷은 소유의 마지막 한 조각이라고 봤거든요.
핸드폰도 지갑도 없이 길을 나서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자기박탈이에요.
12년 6개월 15일 동안 그는 나체로 인도 전역을 떠돌았어요.
한 자세로 며칠씩 명상했고, 마을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개를 풀어도 그냥 맞았어요.
도망가거나 저항하는 것조차 집착의 일종이라고 봤어요.
그 전통이 훗날 자이나교 내 디감바라 종파로 이어져요.
디감바라는 '하늘을 옷으로 삼는 자'라는 뜻이에요.
지금도 이 종파의 수행자들은 옷을 걸치지 않아요.

마하비라는 길을 걸을 때마다 빗자루로 앞을 쓸었어요.
벌레 한 마리도 밟지 않기 위해서였어요.
깨달음을 얻은 뒤 마하비라가 가르친 핵심은 아힘사예요.
아힘사는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는다는 비폭력의 원칙이에요.
하지만 그의 아힘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버전이었어요.
제자들은 라조하라나라는 작은 빗자루로 걷는 내내 앞을 쓸었어요.
혹시 있을 개미나 벌레를 치워가며 걸었던 거예요.
숨을 쉬다 미생물을 들이마실까봐 입에는 무파티라는 천 조각을 댔고, 물도 천으로 걸러서 마셨어요.
자이나교도는 지금도 농사를 짓지 않아요.
땅을 파면 흙속의 벌레가 죽으니까요.
그래서 자이나교는 전통적으로 상인이나 금융업에 종사했어요.
같은 시대, 같은 갠지스 강 유역에서 부처는 "중도를 걸어라"라고 가르쳤어요.
극단보다는 균형을 택한 방향이었어요.
그런데 마하비라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갔어요.

벌레를 죽이지 않으려 평생을 산 사람이,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을 굶겨 죽였어요.
기원전 527년경, 72세의 마하비라는 인도 북동부 비하르의 작은 마을 파바푸리에서 살레카나 의식을 행했어요.
살레카나는 죽음이 가까워진 수행자가 스스로 음식과 물을 끊어 조용히 육신을 떠나는 자이나교 의식이에요.
자살이 아니라 '몸이라는 마지막 소유'를 내려놓는 행위로 봐요.
호스피스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이나교는 이걸 종교적 완성으로 해석해요.
두 눈 뜬 채로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최후의 수행인 셈이에요.
지금도 이 의식은 계속돼요.
매년 수백 명이 살레카나를 따르고, 인도 대법원이 2015년에 이 의식의 합법성을 두고 소송을 벌인 적도 있어요.
평생 벌레 한 마리의 목숨도 함부로 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선택한 마지막은, 자기 자신을 향한 가장 조용한 결단이었어요.
칼도 독도 아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니까요.
모든 생명을 아끼되 자신도 생명이라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건 비폭력인가요, 아니면 그것도 폭력인가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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