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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일본 사상사의 거인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사실 동네 소아과 의사였어요.
그가 받은 진료비로 책을 사서 학문을 했고, 지금도 그의 진료비 장부와 처방 기록이 실물로 남아 있어요.
1730년 일본 미에현 마쓰사카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노리나가는 교토에서 의학을 배운 뒤 평생 고향에서 아이들을 진료했어요.
낮에는 기침하는 아이들을 보고, 밤에는 책상 앞에 앉아 천 년 전 책을 한 글자씩 풀었어요.
그가 일으킨 학문은 국학(国学)이에요.
국학이란 불교나 유교 같은 외래 사상을 걷어내고 일본 고유의 정신을 되찾자는 움직임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수입된 이념을 다 내려놓고, 우리 안에 원래 있던 것을 꺼내자"는 주장이에요.
그런데 그 거대한 움직임을 이끈 사람이 학교도 없고 제도적 직함도 없는 동네 의사였다는 게 흥미롭죠.
진료실과 서재, 그게 전부였어요.

그가 평생 스승이라 부른 사람을 직접 본 시간은 단 하룻밤이었어요.
그 밤이 그의 35년을 결정했어요.
1763년 5월, 당시 67세의 국학자 가모노 마부치가 노리나가의 고향 마쓰사카를 지나 여관에 묵었어요.
가모노 마부치는 노리나가보다 한 세대 위의 일본 고전 학자로, 당시 국학계에서 가장 이름이 높았어요.
34세의 노리나가는 용기를 내 그 여관으로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어요.
그날 밤 마부치는 노리나가에게 숙제 하나를 남겼어요.
"코지키(古事記)를 풀어보게."
코지키는 712년에 편찬된 일본 최고(最古)의 역사서이자 신화집으로, 일본의 신들과 황실의 기원을 담은 책이에요.
하지만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둘은 다시는 얼굴을 보지 못한 채 편지로만 6년을 주고받다가, 마부치가 세상을 떠났어요.
일본에서는 이 하룻밤의 만남을 '마쓰사카의 일야(一夜)'라고 불러요.
평생 존경하던 사람을 딱 한 번 만났는데, 그 한 번이 남은 인생 전부를 정해버렸다는 것, 어딘가 이상하게 낭만적이지 않나요?

그는 35년 동안 책 한 권만 붙들고 있었어요.
천 년 동안 아무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책이었어요.
코지키는 712년에 완성됐지만, 그 뒤 천 년 가까이 일본인조차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어요.
이유가 황당한데, 코지키는 한자를 일본어 발음대로 끼워 맞춰 쓴 책이에요.
한자의 뜻이 아닌 소리만 빌려 적은 방식인데, 그 규칙이 글자마다 달라서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했어요.
집 안에 굴러다니는 증조부의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글자는 알아보겠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상황과 비슷해요.
그걸 규칙도 없이 한 줄씩 해독해가는 거예요.
노리나가는 1764년부터 1798년까지, 34세부터 68세까지 이 작업에 매달렸어요.
그 결과물이 총 44권짜리 주석서 코지키덴(古事記伝)이에요.
책 한 권을 44권짜리 해설로 풀어낸 셈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점이 있어요.
노리나가는 카라고코로(漢意)를 버리자고 주장한 사람이에요.
카라고코로란 "중국식 사고방식", 쉽게 말하면 유교적 도덕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태도예요.
그런데 정작 코지키덴을 완성하는 방법은 중국 고증학의 정밀한 문헌 분석 방법을 그대로 빌려왔어요.
"중국식 사고를 버리자"고 외친 사람이, 그 작업의 도구는 중국에서 들여온 방법론이었다는 거예요.
결국 그는 자기가 버리려던 것을 이용해서 자기가 찾으려던 것을 복원했어요.

그가 마지막으로 설계한 작품은 책이 아니라 자기 무덤이었어요.
그 위에는 벚나무가 심어졌어요.
노리나가는 죽기 전 직접 마쓰사카 외곽 야마무로산에 무덤 자리를 잡았어요.
벚나무를 어디에 심을지 도면까지 남겼고, 자기 자화상도 직접 그려 머리맡에 두었어요.
이것이 단순한 꼼꼼함이 아니에요.
노리나가는 일본 정서의 핵심이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에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에요.
모노노아와레란 "사물의 덧없음에 마음이 흔들리는 감각", 벚꽃이 피었다가 지는 순간에 느끼는 그 아름답고 슬픈 감각이에요.
당시 유학자들은 헤이안 시대(10~11세기 일본 귀족 문화의 전성기)의 소설 겐지모노가타리를 "음란한 책"이라며 비난했어요.
겐지모노가타리는 오늘날로 치면 세계 최초의 장편 소설로 꼽히는 작품이에요.
하지만 노리나가는 이 책이야말로 일본 정신의 본질이라고 맞섰어요.
그의 주장은 이랬어요.
도덕보다 감동이 먼저고, 슬픔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 그게 진짜 인간이라는 거예요.
외래 도덕으로 일본의 정서를 재단해선 안 된다는 거예요.
결국 엄격한 문헌학자가 평생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이거였어요.
일본의 마음은 논리가 아니라, 흔들리는 그 감각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는 그 결론대로 자기 무덤을 만들었어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야마무로산의 벚꽃은 해마다 피고 져요.
노리나가가 진짜 찾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는, 어쩌면 그 풍경이 가장 정직하게 답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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