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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39년 영국 학술원 강연장, 조지 에드워드 무어(G.E. Moore)는 오른손을 들어 보였어요.
"여기 한 손이 있습니다."
그리고 왼손을 들었어요.
"여기 또 한 손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증명은 끝났습니다."
청중은 잠시 멍했어요.
2천 년 넘게 이어진 철학적 논쟁, "세상이 정말 존재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손 두 개였으니까요.
무어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철학 교수로, 20세기 초 영국 분석철학을 이끈 인물이에요.
분석철학은 언어와 논리로 철학적 문제를 정밀하게 해부하는 방식인데, 지금도 영미권 철학의 주류예요.
그런 사람의 증명이 "손을 들어 보이는 것"이었다는 게 핵심이에요.
친구가 "네가 보는 게 다 환상일지 몰라"라고 할 때, 말없이 손을 내밀며 "여기 있잖아"라고 답하는 것.
무어는 그게 맞는 대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강연 「외부 세계의 증명」(Proof of an External World)은 지금도 철학사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논문 중 하나예요.

케인스는 한 철학책이 "신약성서보다 중요했다"고 회고록에 직접 썼어요.
그 책은 무어의 것이었어요.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0세기 거시경제학을 창시한 경제학자예요.
그런 케인스가 이렇게 쓴 책이 무어의 『윤리학 원리』(Principia Ethica, 1903)였어요.
케인스뿐 아니라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비평가 리튼 스트레이치 등도 이 책 한 권으로 인생관을 통째로 바꿨어요.
이들은 블룸즈버리 그룹이라 불렸어요.
20세기 초 런던 블룸즈버리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모이던 예술가·작가·지식인 모임으로, 당시 영국 문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었어요.
그리고 그 집단 전체가 무어의 학술서를 인생 매뉴얼로 삼은 거예요.
오늘로 치면, 철학과 교수의 윤리학 논문을 BTS 멤버 전원이 읽고 "이게 우리 삶의 기준이야"라고 선언한 것과 비슷해요.
『윤리학 원리』는 그런 책이었어요.

무어는 '좋다'는 개념을 끝내 정의할 수 없다고 선언했어요.
그런데 그게 실패가 아니라 그의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어요.
『윤리학 원리』에서 무어는 자연주의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제시했어요.
"좋다"는 개념을 쾌락, 이익, 생존 같은 자연적 성질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주장이에요.
"기분이 좋으면 좋은 거야", "생존에 유리하면 좋은 거야"처럼 다른 무언가로 '좋음'을 환원하는 순간, 이미 틀린 길에 들어선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좋다"는 결국 뭔가요.
무어는 이렇게 말했어요.
"'좋다'는 노란색처럼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순한 속성이에요. 오직 직관으로만 알 수 있어요."
윤리학 책을 쓰겠다고 시작해서 "좋은 것은 정의할 수 없다"로 끝냈어요.
하지만 블룸즈버리 그룹은 이 결론을 해방으로 받아들였어요.
누구의 기준에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으니까요.

비트겐슈타인은 처음에 무어의 학생이었어요.
20년 뒤, 무어가 비트겐슈타인의 강의실 앞줄에 앉아 노트를 받아 적고 있었어요.
1911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청년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케임브리지에 왔어요.
훗날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꼽히는 인물이에요.
당시 무어는 16살 위 선배이자 정식 교수였고,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1930년대가 되자 관계가 뒤집혔어요.
비트겐슈타인이 강단에 섰고, 무어가 앞자리에 앉아 받아 적기 시작했어요.
자신이 직접 가르쳤던 학생이 자신의 스승이 된 거예요.
비트겐슈타인은 마지막으로 쓴 책 『확실성에 관하여』(On Certainty)에서 무어의 "두 손 증명"을 정면으로 다뤘어요.
"손을 보여주는 것으로 세계가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끝까지 매달렸어요.
비트겐슈타인은 무어에게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 질문만큼은 죽는 날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스승이 들었던 손 두 개가 제자의 마지막 작업이 됐어요.
그 답이 무엇인지, 비트겐슈타인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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