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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동아시아 2500년의 도덕 교과서를 쓴 인물은, 정작 자신의 출생을 기록한 《사기》에서 '야합이생(野合而生)'이라 적혔어요.
야합이생, 즉 "예법에 어긋난 결합으로 태어났다"는 뜻이에요.
아버지 숙량흘은 70세 무사였고, 어머니 안징재는 16세였어요.
당대 예법으로는 인정받기 어려운 나이 차이의 결합이었죠.
그나마도 공자가 세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어요.
청년 시절 공자는 노나라 귀족 가문인 계씨 집안에서 창고를 관리하는 위리(委吏), 가축을 돌보는 승전(乘田) 같은 천한 일로 생계를 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대기업 창고 알바와 축산 농장 보조원이에요.
그런데 이 청년에게는 평생의 꿈이 있었어요.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자리, 즉 공직이었어요.
비정규직 알바를 뛰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 같은 상황이었던 거예요.
공자가 평생 꿈꿔온 자리는 50대에 잠깐 왔다가, 미녀 80명 앞에서 사라졌어요.
51세에 노나라 한 고을의 수장으로 출발한 공자는 4년 만에 대사구(大司寇)에 올랐어요.
대사구는 오늘날로 치면 법무장관급이에요.
외교 무대에서도 빛을 발휘했어요.
노나라와 제나라가 마주 앉은 협곡 회맹이라는 외교 회담에서 공자는 수사 하나로 제나라를 굴복시키고, 노나라가 빼앗겼던 땅을 되찾아왔어요.
협상 테이블에서 혼자 계약서를 뒤집은 셈이에요.
그런데 제나라가 맞대응으로 미녀 80명과 준마 120필을 노나라 군주에게 선물로 보냈어요.
노나라 군주는 사흘간 정사를 내팽개쳤어요.
공자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며 관직 인장을 내려놓고 스스로 떠났어요.
공자는 56세에 노나라를 떠나 69세에 빈손으로 돌아왔어요.
14년 동안 단 한 명의 군주도 그를 쓰지 않았어요.
그는 위, 조, 송, 정, 진, 채, 초 일곱 나라를 돌아다니며 "저를 써주십시오"라고 문을 두드렸어요.
이력서를 들고 14년간 회사마다 찾아갔지만 합격 통보를 한 장도 받지 못한 구직자였던 거예요.
수모도 따라왔어요.
송나라에서는 대신 환퇴(桓魋)가 공자를 죽이겠다며 그가 쉬던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는 살해 위협을 가했어요.
정나라에서는 누군가가 공자를 가리켜 "상갓집 개(喪家之狗)"라고 불렀어요.
상갓집 개는 주인을 잃고 어디도 속하지 못하는 떠돌이 개예요.
이 말을 전해들은 공자의 반응이 놀라워요.
"맞아, 딱 그렇게 생겼지(然哉然哉)"라며 오히려 웃으며 인정했다고 해요.
가장 혹독한 순간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 어느 들판이었어요.
양식이 떨어진 지 7일이 지났고, 제자들은 일어서지도 못할 지경이었어요.
그 자리에서 제자 자로가 물었어요.
"선생님, 군자도 이렇게 궁할 때가 있나요?"
공자의 대답이에요.
"군자는 가난해도 지조를 잃지 않지만, 소인은 가난해지면 어디로든 튀어버린다."
굶어 쓰러져가는 상황에서도 원칙을 놓지 않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공자가 살아있을 때 그를 알아본 군주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그가 죽고 350년이 지나서야, 한나라 황제가 그를 국가의 스승으로 모셨어요.
69세에 고향 노나라로 돌아온 공자는 가장 아끼던 제자 안회가 먼저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어요.
또 다른 제자 자로도 세상을 떠났어요.
아들 공리까지 먼저 보냈어요.
73세, 세상을 떠나기 직전 그가 부른 노래가 있어요.
"태산이 무너지는구나(泰山其頹乎), 대들보가 부러지는구나, 지혜로운 자가 시들어 가는구나."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탄식처럼 들려요.
그런데 공자가 죽고 약 350년 뒤인 기원전 134년 무렵, 한나라 황제 한 무제가 역사를 바꿨어요.
학자 동중서(董仲舒)가 건의했고, 한 무제는 이를 받아들여 '백가를 물리치고 유교만을 존숭한다(罷黜百家 獨尊儒術)'고 선포했어요.
수백 개 사상이 자유롭게 경쟁하던 시대가 끝나고 공자의 생각 하나만 남은 거예요.
이때부터 2000년 동안 동아시아의 모든 관료가 되려면 공자의 책을 외워야 했어요.
한국의 과거시험, 중국의 과거제, 베트남까지 공자의 글을 암송한 사람만이 나라를 운영할 수 있었어요.
살아서 한 자리도 얻지 못했던 사람이 죽어서 2000년 교과서의 주인이 된 거예요.
평생 무명으로 죽은 화가의 그림이 사후 300년 뒤 미술관 1순위가 된 것처럼요.
공자 자신은 이 결말을 알았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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