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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는 5년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누가 때려도, 누가 모욕해도 입을 열지 않았어요.
아폴로니우스는 지금의 튀르키예 중부, 카파도키아의 티아나라는 도시에서 태어난 부유한 그리스 청년이었어요.
16세가 되던 해, 그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행 규율을 따르기로 결심했어요.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와 음악으로 우주의 법칙을 탐구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 집단이에요.
그 규율의 첫 번째가 바로 5년간의 완전한 침묵이었어요.
말을 아끼는 게 아니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고기도, 술도, 결혼도, 심지어 가죽으로 만든 옷도 모두 거부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명문대에 합격한 친구가 입학을 포기하고 산속 수도원에 들어가 5년 동안 스마트폰도, 말도 없이 살겠다고 선언한 거예요.
그리고 그 결심을 죽을 때까지 지켰어요.
그는 평생 맨발로 걸었고, 아마포(식물 섬유로 짠 흰 천) 한 벌로 살았어요.
부유한 집안의 청년이 모든 특권을 내려놓고 떠돌이 철학자가 된 거예요.
"내가 추구하는 건 피타고라스의 지혜야. 그 지혜는 안락한 삶과 함께 올 수 없어." 그의 선택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돼요.

아테네의 철학자가 진리를 찾아 떠난 곳은 아테네의 학당이 아니었어요.
그는 인도로 걸어갔어요.
메소포타미아(지금의 이라크 일대)와 페르시아(지금의 이란)를 가로질러, 그가 도착한 곳은 인도 북서부의 도시 탁실라였어요.
탁실라는 당시 브라만 현자들이 모여 살던 학문의 중심지였어요.
브라만은 인도 사회에서 지식과 제사를 담당하던 최상위 성직자 집단이에요.
하버드 교수가 강단을 떠나 히말라야 수행자 밑에서 10년을 보낸 뒤 돌아와 "내가 알던 건 일부일 뿐이었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그리스 철학자가 서구 문명의 우월함을 가르치는 대신, 동양에서 진리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거예요.
당시로서는 거의 들어본 적 없는 발상이었어요.
인도에서 돌아온 뒤 그의 행적은 더 놀라워요.
그의 전기를 쓴 작가 필로스트라투스에 따르면, 그는 에페소스(지금의 튀르키예 서부 해안 도시)에 역병이 닥칠 것을 미리 예언했어요.
로마에서는 장례 행렬 중이던 죽은 신부를 되살려냈다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이 기록들이 역사적 사실인지 신화인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에요.
하지만 그가 살아있는 동안 이미 '기적을 행하는 현자'로 불렸다는 건 분명해요.
그리고 바로 그 명성이 나중에 로마 황실의 눈에 들어오게 돼요.

판결을 선포하려던 황제가 고개를 들었을 때, 피고석은 비어 있었어요.
1세기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는 공포 정치로 유명한 독재자였어요.
반대파를 닥치는 대로 숙청했고, 기독교인 박해로도 악명이 높았어요.
그 황제가 아폴로니우스를 반역 혐의로 법정에 세웠어요.
아폴로니우스는 당당하게 자신을 변론했어요.
"나는 로마를 배반하지 않았어. 내 죄가 있다면 그건 진리를 말한 것뿐이야."
그리고 변론을 마친 직후, 그는 황제의 눈앞에서 사라졌어요.
같은 시각, 약 480킬로미터 떨어진 항구도시 푸테올리에 그가 나타났어요.
필로스트라투스의 기록이 그렇게 전해요.
독재자의 법정에 끌려간 사람이 무죄를 선언한 직후 공중에서 사라져 다른 도시에서 발견되는 장면이에요.
이 이야기가 기록된 시기가 예수의 부활 이야기가 널리 퍼진 시기와 거의 같았어요.
황제의 군대도, 사슬도, 감옥도 그를 막지 못했다는 서사, 어디서 들어본 느낌이 들죠?

예수가 신이 되는 동안, 로마 황실은 또 다른 신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 이름이 아폴로니우스였어요.
217년 무렵, 황후 율리아 돔나는 작가 필로스트라투스에게 명령했어요.
"아폴로니우스의 전기를 써라." 이건 단순한 책 출판 의뢰가 아니었어요.
당시 기독교가 제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지던 시절, 황실은 맞설 수 있는 '다른 신성한 인물'이 필요했어요.
황제 카라칼라, 아우렐리아누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는 모두 아폴로니우스의 신상에 제물을 바쳤어요.
살아있는 황제가 이미 세상을 떠난 철학자의 조각상 앞에 엎드린 거예요.
결정적인 순간은 303년에 왔어요.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를 설계한 관리 히에로클레스가 직접 책을 썼어요.
내용은 이랬어요. "아폴로니우스는 예수보다 훨씬 더 많은 기적을 행했다. 그런데 왜 그는 신으로 불리지 않는가?"
아폴로니우스는 죽고 200년이 지나 제국 차원의 '예수 대체재'로 동원된 거예요.
어떤 인물이 죽은 뒤 정부가 공식 전기를 발주하고, 그를 종교 전쟁의 무기로 쓰는 상황과 같아요.
하지만 결말은 예상대로였어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자, 아폴로니우스는 이단 마법사로 낙인찍혔어요.
그리고 천 년 넘게 거의 잊혔어요.
진리를 찾아 인도까지 걷고, 황제의 법정에서 사라지고, 동서양의 지혜를 한 몸에 담으려 했던 사람이에요.
그가 조금만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세계의 역사는 꽤 달랐을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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