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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영국 최고의 과학자가 평생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부른 것은 화학 원소도 전기 현상도 아니었어요.
한 제본소 심부름꾼이었거든요.
마이클 패러데이는 1791년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집이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열세 살 때 런던의 한 제본소에 심부름꾼으로 들어갔어요.
제본소는 낡거나 망가진 책을 다시 묶어주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패러데이는 고쳐야 할 책들을 그냥 읽어버렸어요.
그중 제인 마르세가 쓴 『화학에 대한 대화』가 그를 완전히 사로잡았는데, 이 책은 복잡한 화학 개념을 쉬운 대화체로 풀어쓴 입문서였어요.
패러데이는 책 내용을 노트에 손으로 베껴 쓰고, 직접 간단한 실험도 해보면서 혼자 공부했어요.
1812년, 스물한 살의 패러데이는 당대 영국 최고 과학자 험프리 데이비의 강연을 들을 기회를 얻었어요.
데이비는 왕립연구소에서 화학 강연을 하던 스타 과학자였는데, 오늘날로 치면 TED 강연자 중 가장 인기 있는 사람 정도예요.
패러데이는 강연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받아 적었어요.
강연이 끝난 뒤, 패러데이는 그 필기를 직접 제본해 책처럼 만든 다음 데이비에게 편지와 함께 보냈어요.
"저를 연구소에서 일하게 해주세요"라는 간절한 부탁과 함께요.
데이비는 그 노트를 보고 패러데이를 실험실 조수로 채용했어요.
훗날 데이비는 이렇게 말했어요.
"내 평생 가장 위대한 발견은 마이클 패러데이였다."

오늘 집에서 꺼내 쓰는 모든 전기는 1831년 8월 29일 런던의 작은 실험실에서 시작됐어요.
패러데이가 쇠고리에 구리 전선을 두 겹으로 감은 그날이요.
당시 과학자들은 전기와 자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요.
1820년 덴마크 과학자 외르스테드가 전류가 흐르는 전선 옆에서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는 걸 발견했거든요.
하지만 그 반대, 즉 자기로 전기를 만드는 건 아직 아무도 하지 못했어요.
패러데이는 철 고리 하나를 준비했어요.
거기에 구리 전선을 두 겹으로 감아 한쪽은 전지에, 다른 쪽은 전류계에 연결했어요.
전지를 연결하는 순간, 전류계 바늘이 흔들렸어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전지를 계속 연결해놓으면 바늘은 다시 멈췄거든요.
전지를 끊는 순간에도 잠깐 다시 움직였고요.
패러데이는 여기서 핵심을 잡았어요.
전기를 만드는 건 자기장 자체가 아니라, 변하는 자기장이었어요.
자전거 바퀴가 돌아야 전조등이 켜지듯, 자기장이 바뀔 때만 전류가 생긴다는 거예요.
이것이 전자기 유도예요.
이 원리 하나로 발전기가 발명됐고, 발전기가 지금 우리가 콘센트에서 꺼내 쓰는 전기를 만들어요.
지하철 모터, 스마트폰 충전기, 공장 기계, 그 모든 시작이 1831년 8월의 쇠고리 실험이었어요.
훗날 영국의 한 고위 관료가 이 연구를 보고 물었어요.
"이게 대체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패러데이가 답했어요. "언젠가 이것에 세금을 매기실 수 있을 겁니다."

귀족 자제와 공장 아이가 나란히 앉아 같은 강연을 들은 건, 19세기 영국에서는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 자리를 만든 건 양초 하나와 마이클 패러데이였어요.
1825년부터 패러데이는 왕립연구소에서 크리스마스 강연을 시작했어요.
매년 크리스마스 연휴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공개 강연인데, 패러데이는 이것을 무려 열아홉 번 직접 맡았어요.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양초의 화학적 역사』예요.
양초 하나를 들고 시작해서, 불꽃이 타는 원리부터 산소와 이산화탄소, 물의 생성까지 차근차근 설명했어요.
교과서도 공식도 없이, 양초 하나로 화학 전체를 이야기한 거예요.
어느 해,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이 왕자들을 직접 데리고 이 강연을 들으러 왔어요.
그런데 같은 강연장에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아이들도 함께 앉아 있었어요.
19세기 영국은 귀족과 평민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계급의 벽이 있던 시대였어요.
패러데이의 강연은 그 벽을 잠시 허물었어요.
왕자와 공장 아이가 나란히 같은 양초 불꽃을 바라봤으니까요.

전기 문명의 기초를 닦은 과학자가 영국 여왕이 내민 최고 명예를 두 번이나 거절했어요.
기사 작위는 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명예 칭호예요.
받으면 이름 앞에 "Sir"이 붙는데, 오늘날 영국에서도 최고 훈장으로 여겨져요.
빅토리아 여왕은 패러데이에게 이 작위를 두 번 제안했어요.
패러데이는 두 번 다 거절했어요.
영국 최고의 과학자 단체인 왕립학회 회장직 제안도 마찬가지였어요.
패러데이가 속한 샌더매니언파는 소수의 신자로 이루어진 기독교 공동체였어요.
이들은 겸손과 검소를 삶의 핵심 덕목으로 여겼고, 세상의 명예와 재물을 멀리하는 것을 신앙의 일부로 삼았거든요.
그에게 "Sir 마이클 패러데이"라는 이름은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었어요.
그는 죽을 때까지 "평범한 패러데이 씨"로 남았어요.
사후에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장 제안도 거절했고, 가족 묘지에 조용히 묻혔어요.
발전기를 발명한 사람이, 그 발명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영예를 스스로 밀어냈어요.
그를 움직인 건 명성이 아니었거든요.
1831년 8월, 전류계 바늘이 처음 흔들리던 그 순간이었겠죠.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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