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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낮에는 감기약을 짓고, 밤에는 천 년 된 문장을 해독했어요.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하루는 해가 진 뒤에야 진짜로 시작됐습니다.
그는 지금의 미에현 마쓰사카, 일본 시골의 작은 소도시에서 30년 넘게 동네 의사로 생계를 꾸렸어요.
아침엔 환자를 보고, 저녁엔 약을 달이는 평범해 보이는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진료가 끝나는 순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어요.
가운을 벗고 들어간 곳은 스즈노야라는 서재였어요.
'방울의 방'이라는 뜻으로, 천장에 수십 개의 방울을 매달아 놓은 공간입니다.
거기서 그는 일본 사상사를 뒤흔들 작업을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이어갔어요.
노리나가는 한 번도 대학이나 번의 공식 학자가 된 적이 없었어요.
번이란 에도 시대 지역 영주가 다스리던 행정 단위로, 요즘으로 치면 국책 연구소 같은 곳입니다.
퇴근 후 매일 밤 개인 연구에 매달리는 재야 학자였던 거예요.
일본 사상사를 뒤흔든 학자의 본업이 '동네 의사'였다는 것.
그런데 이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작은 반전이에요.

스승의 얼굴을 직접 본 것은 평생 단 한 번이었어요.
그 하룻밤이 35년짜리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습니다.
1763년, 노리나가는 오랫동안 흠모하던 학자 가모노 마부치가 마쓰사카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마부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 모음집 『만요슈』 연구의 대가로, 당시 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노리나가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여관으로 달려갔어요.
그 만남을 일본에서는 '마쓰사카의 하룻밤'이라고 불러요.
면접도, 세미나도 아닌 여관 방 한 칸에서 벌어진 몇 시간짜리 대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마부치는 그 자리에서 노리나가에게 일본 최고의 역사서 『고사기』 연구를 권유했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둘은 다시 만나지 못했어요.
모든 가르침은 편지로만 이어졌고, 마부치는 6년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본 학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제 관계가 단 한 번의 대면, 그것도 우연한 여행길의 여관에서 시작됐다는 거예요.

일본에는 건국 신화가 적힌 책이 있었어요.
문제는 천 년 동안 일본인 대부분이 그걸 읽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고사기』는 712년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예요.
한자의 소리를 빌려 일본어를 표기하는 특수한 방식으로 쓰여 있어서, 에도 시대까지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훈민정음 해례본 원문을 정작 한국인이 읽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해요.
이유가 있었어요.
에도 시대 학문은 중국식 문어체인 한문 중심이었거든요.
그러니 자국어로 쓰인 가장 오래된 텍스트가 천 년 넘게 방치되어 있었던 겁니다.
노리나가는 1764년부터 이 책을 한 글자씩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고대 한자 발음을 추적하고 원문의 의미를 하나씩 복원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렇게 34년이 지나 완성된 것이 『고사기전』 44권이에요.

그는 자기 무덤이 어느 쪽을 바라봐야 하는지까지 유언으로 남겼어요.
방향은 벚꽃의 도시, 요시노였습니다.
노리나가는 평생 '모노노아와레'라는 개념을 일본 문학의 본질로 주장했어요.
쉽게 말하면 사물이나 순간이 사라질 때 가슴 한구석에서 올라오는 먹먹한 감흥입니다.
벚꽃이 질 때 느끼는 그 알 수 없는 슬픔, 바로 그게 일본 문학의 핵심이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 상징이 벚꽃이었어요.
노리나가는 이런 노래를 남겼습니다.
"시키시마의 야마토 마음을 묻는다면, 아침 햇살에 피는 산벚꽃이라오."
자기 장례식 음악을 미리 골라두는 사람은 더러 있잖아요.
하지만 노리나가는 거기서 더 나아갔어요.
무덤 위에 벚나무를 심고, 묘비는 일본 최고의 벚꽃 명소 요시노 방향으로 세우라고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평생 주장한 철학을 자기 죽음의 연출에까지 일관시킨 사람이에요.
이론이 아니라 삶 전체가 하나의 미학적 선언이었던 거죠.
그 무덤은 지금도 요시노 쪽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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