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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바바(bhāva)는 신을 멀리 있는 개념이 아니라 종·자식·친구·연인처럼 구체적인 관계로 대하며 그 마음에 온몸으로 젖어드는 감정 상태예요. 라마크리슈나는 이 바바가 깊어질 때 신과 곧바로 이어진다고 여겼어요.
우리는 상대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엄마 앞에서는 응석 부리는 자식이 되고, 친한 친구 앞에서는 농담을 던지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리죠.
같은 나인데도 '누구와 어떤 관계로 마주 서느냐'에 따라 마음의 결이 통째로 바뀌어요.
바바(bhāva)는 바로 이 '마음의 결', 곧 신을 향해 내가 취하는 감정적 태도를 가리켜요.
라마크리슈나(1836년부터 1886년까지 살았어요)는 인도 벵골의 닥시네스와르 칼리 사원에서 여신을 모시던 사제였어요.
그가 걸은 길은 박티(bhakti), 곧 신을 머리로 분석하는 대신 뜨겁게 사랑하는 신애의 길이었어요.
이 길에서 핵심은 신을 '저 위 어딘가의 원리'로 두지 않고, 내 앞에 살아 있는 상대처럼 특정한 관계로 부르는 거예요.
그 관계에 붙는 마음이 바로 바바고요.
라마크리슈나에게 신은 무엇보다 '어머니'였어요.
그는 칼리 여신을 자식이 어머니를 부르듯 애타게 그리워했고, 스무 살 무렵에는 여신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무쳐 절망에 빠지기도 했어요.
자료에는 그가 사원 검을 들어 자결하려던 순간 '무한한 의식의 빛의 바다'를 보았다는 일화가 전해져요.
이 애타는 그리움 자체가 자식이 어머니를 향해 품는 바바였던 셈이에요.
관계는 방향을 바꿔서도 나타났어요.
그는 쇼다시 푸자(Shodashi Puja)라는 의식에서 자기 아내 사라다 데비를 '신성한 어머니(Divine Mother)'로 모셨어요.
아내를 아내가 아니라 여신으로 대하는 마음, 이것도 바바예요.
또 그는 출가한 제자에게는 '나와 신이 둘이 아니다'라는 가르침을, 살림하는 재가자에게는 '신을 주인으로 섬기는 종의 마음'을 권했다고 기록돼 있어요.
사람마다 어울리는 바바가 다르다고 본 거죠.
박티 전통은 신과 맺는 관계를 여러 갈래로 이야기해요.
라마크리슈나가 특히 강조한 건 자식의 마음과 종의 마음이었지만, 마음의 결이 어떻게 갈리는지 살펴보면 바바를 이해하기 쉬워요.
| 관계로 부르기 | 마음의 결 | 일상 비유 |
|---|---|---|
| 종의 마음 | 주인을 정성껏 받드는 헌신 | 존경하는 스승을 모시듯 |
| 자식의 마음 |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는 사랑 | 엄마 품을 찾는 아이처럼 |
| 친구의 마음 | 허물없이 곁에 두는 다정함 | 오랜 벗과 나란히 걷듯 |
| 연인의 마음 | 온 마음이 상대로 가득 참 | 좋아하는 사람만 떠오르듯 |
같은 신이라도 종으로 부르면 공손함이, 자식으로 부르면 그리움이, 연인으로 부르면 애틋함이 흘러나와요.
바바는 이렇게 '어느 문으로 신에게 다가가느냐'를 정하는 마음의 입구예요.
바바를 단순한 기분과 헷갈리기 쉬워요.
잠깐 슬프거나 기쁜 감정은 왔다가 사라지죠.
하지만 바바는 신을 향해 정해 놓고 오래 키우는 관계의 마음이에요.
좋아하는 사람을 오래 마음에 품으면 그 사람 생각만으로 하루가 물드는 것처럼, 바바가 깊어지면 그 감정이 온몸을 채우고 표정과 몸짓까지 바꿔요.
라마크리슈나는 이 바바가 극에 이르면 자기를 잊고 깊은 몰입 상태로 넘어가곤 했어요.
그 몰입의 절정(사마디)은 그것대로 다른 이야기라 여기서는 접어 둘게요.
여기서 기억할 건 하나예요.
바바는 신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신을 특정한 관계로 사랑하는 마음의 자세라는 거예요.
바바가 알려 주는 건 의외로 담백해요.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려면 '어떤 관계로 마주 설지'부터 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상대를 멀찍이 분석만 하면 마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아요.
반대로 종처럼, 자식처럼, 벗처럼 구체적인 관계로 부르는 순간 마음은 방향을 얻고 뜨거워지죠.
라마크리슈나는 사람마다 어울리는 바바가 다르다고 봤어요.
누구에게는 어머니가, 누구에게는 주인이, 누구에게는 벗이 맞는 부름이었죠.
이건 '길이 하나뿐이 아니다'라는 그의 넓은 시선과도 맞닿아 있는데, 그 이야기는 또 다른 글의 몫이에요.
바바(bhāva)는 신을 저 멀리 있는 개념이 아니라 종·자식·친구·연인 같은 구체적 관계로 대하며 그 마음에 온몸으로 젖어드는 감정 상태예요.
라마크리슈나는 칼리 여신을 자식이 어머니를 그리듯 사랑했고, 사람마다 어울리는 관계가 다르다고 보았어요.
잠깐 스치는 기분과 달리 바바는 오래 키우는 관계의 마음이고, 그것이 깊어질 때 신과 곧바로 이어진다고 여겼죠.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면 먼저 '어떤 관계로 부를지'를 정하라는 것, 이것이 바바가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담백한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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