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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이슈타데바타(Iṣṭadevatā)는 '내가 택한 신'이라는 뜻이에요. 궁극의 진리는 하나여도 사람마다 마음에 와닿는 모습이 다른데, 라마크리슈나는 그 택한 하나(그에겐 칼리 여신)에 온 마음을 쏟으면 결국 모든 종교가 가리키는 같은 자리에 닿는다고 봤어요.
이슈타데바타는 산스크리트어예요.
'이슈타(iṣṭa)'는 '내가 바라고 택한, 사랑하는'이라는 뜻이고, '데바타(devatā)'는 '신'이에요.
둘을 붙이면 '내가 마음으로 고른 신'이 돼요.
쉽게 말해 볼게요.
세상에 엄마는 많지만, 여러분이 사랑하는 엄마는 딱 한 분이죠.
우리는 '엄마라는 개념'을 안는 게 아니라 내 엄마를 안아요.
그 한 분과의 구체적인 사랑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배워요.
힌두교에서 신을 대하는 마음도 이와 비슷해요.
궁극의 진리는 하나지만 그것이 칼리, 시바, 비슈누, 라마, 크리슈나처럼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봐요.
그 많은 모습 가운데 내 가슴을 가장 뜨겁게 하는 하나를 골라 온 정성을 바치는 것, 그 고른 신이 바로 이슈타데바타예요.
라마크리슈나(Ramakrishna, 1836년~1886년)는 인도 벵골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1856년부터 콜카타 근처 닥시네스와르 칼리 사원의 사제가 된 힌두 신비 사상가예요.
생애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깔고, 그가 고른 신 이야기로 바로 들어갈게요.
그의 이슈타데바타는 칼리(Kālī) 여신, 곧 '신성한 어머니(Divine Mother)'였어요.
그는 사원에 모신 칼리를 그저 흙으로 빚은 상으로 보지 않았어요.
살아 숨 쉬는 어머니로 대했고, 그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애타게 갈망했어요.
스무 살 무렵에는 도무지 여신이 나타나지 않아 절망한 나머지 사원의 검을 들었던 순간, '끝없는 의식의 빛의 바다'를 보는 환시를 체험했다고 전해져요.
그가 칼리를 어머니로 얼마나 진심으로 모셨는지는 다른 일화에서도 드러나요.
사제로서 그는 쇼다시 푸자(Shodashi Puja)라는 의식에서 자기 아내 사라다 데비를 살아 있는 '신성한 어머니'로 삼아 예배했어요.
택한 신이 그림 속 존재가 아니라 눈앞의 살아 있는 실재였던 거예요.
'신 일반'은 마음으로 껴안기가 어려워요.
너무 크고 막연하니까요.
그래서 사람은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얼굴이 필요해요.
배고픈 아이가 '음식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지금 눈앞의 밥 한 그릇을 먹듯이, 사랑도 구체적인 대상이 있어야 쏟을 수 있어요.
이슈타데바타는 그 '잡을 수 있는 얼굴'이에요.
라마크리슈나는 이 세상 어디에나 신이 깃들어 있다고 봤어요.
그의 원어 표현으로는 'yatra jiv tatra Shiv', 곧 '살아 있는 존재가 있는 곳에 시바가 있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신이 온 세상에 퍼져 있어도, 그것을 사랑으로 만나려면 한 모습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특히 가정을 꾸리고 사는 재가자에게는 신과 종의 관계로 대하는 박티(bhakti, 신애)의 길, 즉 택한 신을 섬기는 길을 권했어요.
여기가 라마크리슈나 이슈타데바타의 진짜 놀라운 지점이에요.
그는 칼리 하나에 멈추지 않았어요.
1866년에는 이슬람 수행을 사흘간 했고, 그 안에서 빛나는 인물의 환시를 봤다고 전해져요.
1873년부터는 기독교 수행을 시작해, 예수가 다가와 자신의 몸에 합쳐지는 환시를 체험했다고도 해요.
힌두교 안의 여러 길, 이슬람, 기독교를 몸소 걸어 보고 저마다 궁극에 닿는 것을 직접 겪은 셈이죠.
산을 떠올려 보면 쉬워요.
정상은 하나인데 오르는 등산로는 여럿이에요.
이슈타데바타는 내가 고른 등산로예요.
남의 길이 틀린 게 아니라 출발점이 다를 뿐이고, 끝까지 오르면 같은 봉우리에서 만나요.
그래서 라마크리슈나에게 택한 신 하나는 '내 것만 옳다'는 울타리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내 문 하나를 끝까지 열면 남의 문 너머와 같은 방에 이른다'는 열쇠였어요.
이슈타데바타(Iṣṭadevatā)는 '내가 마음으로 택한 신'이에요.
궁극의 진리는 하나지만 사람은 그것을 통째로 껴안을 수 없어서, 자기 가슴에 가장 와닿는 한 모습을 골라 온 정성을 바쳐요.
라마크리슈나에게 그 택한 신은 어머니 칼리였고, 그는 이 하나에 온 마음을 쏟으면서도 이슬람과 기독교의 길까지 몸소 걸어 저마다 같은 자리에 닿는 것을 겪었어요.
그러니 택한 신 하나는 다른 신을 밀어내는 담이 아니라, 모두가 만나는 봉우리로 오르는 나만의 길이에요.
이 한 가지만 기억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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