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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는 꽃이 지거나 누가 떠날 때처럼 사물과 사건이 마음을 툭 건드리면, 그때 절로 일어나는 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는 마음이에요. 노리나가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이렇게 마음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사람의 참모습이고 일본 문학의 본질이라고 봤어요.
봄에 벚꽃이 활짝 폈다가 며칠 만에 우수수 지는 걸 보면, 이유도 모르게 마음이 찡해질 때가 있죠.
딱히 슬픈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요.
200여 년 전 일본 마쓰사카에서 소아과 의사이자 학자로 살았던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바로 그 순간에 사람의 진짜 마음이 있다고 봤어요.
그가 붙인 이름이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예요.
모노노아와레는 '사물'을 뜻하는 모노(物)와, 마음이 깊이 움직일 때 새어 나오는 감탄 '아와레(哀れ)'를 합친 말이에요.
꽃, 달, 이별, 누군가의 처지 같은 사물과 사건이 마음을 툭 건드리면, 그때 절로 일어나는 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아는 것을 말해요.
노리나가는 이걸 사람다움의 뿌리이자 일본 문학이 담아 온 본질이라고 못 박았어요.
노리나가가 이 생각을 벼린 건 『겐지 이야기(源氏物語)』를 읽으면서였어요.
천 년 전 궁중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이 긴 소설을, 당시 학자들은 대개 '좋은 일은 상을 받고 나쁜 일은 벌을 받는다'는 교훈, 곧 권선징악의 틀로 풀이했어요.
주인공의 금지된 사랑은 나쁜 본보기라서 벌을 받는다는 식으로요.
노리나가는 이 읽기가 작품을 망친다고 봤어요.
겐지 이야기의 핵심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인물들이 사랑하고 슬퍼하고 흔들리는 그 마음의 결 자체라는 거예요.
그는 이 생각을 『자문요령(紫文要領)』 같은 겐지 연구서에 담았어요.
나쁘고 좋고를 판정하기 전에 인물의 마음에 함께 젖어 '아, 그렇구나' 하고 느끼는 것, 그게 바로 모노노아와레를 아는 일이라고 했죠.
| 구분 | 권선징악으로 읽기 | 모노노아와레로 읽기 |
|---|---|---|
| 판단 기준 |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 마음이 얼마나 깊이 움직이는가 |
| 겐지의 사랑 | 벌 받아 마땅한 잘못 | 함께 슬퍼하고 느낄 정 |
| 읽는 목적 | 교훈을 얻는다 | 마음의 결을 안다 |
'아와레(哀れ)'라는 글자만 보면 '슬플 애(哀)'가 들어 있어 슬픔만 가리키는 것 같지만, 노리나가가 말한 아와레는 훨씬 넓어요.
기쁠 때도, 그리울 때도, 문득 아름다움에 숨이 멎을 때도 '아아' 하고 마음이 깊게 울리면 전부 아와레예요.
특히 노리나가가 주목한 건 세상 모든 것이 결국 덧없이 사라진다는 데서 오는 정이었어요.
벚꽃이 예쁜 건 곧 지기 때문이고, 만남이 애틋한 건 언젠가 헤어지기 때문이죠.
이 덧없음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아릿함이 느껴지는데, 그래서 모노노아와레는 흔히 '덧없음에서 오는 잔잔한 슬픔'으로 옮겨지곤 해요.
슬픔 하나로 좁혀지는 게 아니라, 덧없음까지 끌어안는 깊은 마음의 울림인 셈이죠.
노리나가는 이 마음이 억지로 꾸민 게 아니라 타고나는 거라고 봤어요.
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날 때부터 '마고코로(眞心)', 곧 꾸밈없는 참마음을 지닌다고 했어요.
옳고 그름을 머리로 계산하기 전에, 슬프면 슬프고 좋으면 좋다고 절로 느끼는 그 마음이요.
그가 보기에 이 마고코로를 가장 솔직하게 담아낸 게 옛 일본의 노래인 와카(和歌)와 이야기였어요.
1763년에 쓴 『이소노카미노사사메고토(石上私淑言)』에서 노리나가는 와카가 꾸며낸 감정이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정을 길러 준다고 했어요.
머리로 영리하게 따지는 마음과는 다르게, 마음이 절로 움직이는 자리예요.
모노노아와레는 결국 그 참마음이 밖으로 드러난 모습인 셈이에요.
모노노아와레는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벚꽃이 질 때 마음이 찡해지는 그 흔한 순간에서 출발해요.
다음에 지는 꽃 앞에서 이유 없이 뭉클해진다면, 그게 바로 노리나가가 천 년 전 이야기에서 찾아낸 모노노아와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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