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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형 정호는 이치를 마음 안에서 곧바로 알아채는 '역행'의 길을, 동생 정이는 사물을 하나하나 따져 이치에 이르는 '궁리'의 길을 걸었어요. 성격도 봄바람처럼 온후한 형과 서릿발처럼 엄격한 동생으로 갈렸는데, 두 사람의 이 차이가 훗날 성리학이 두 갈래로 뻗어 나가는 씨앗이 됐어요.
정호(程顥, 1032년부터 1085년까지)는 북송의 학자로, 호는 명도라서 '명도선생'으로 불렸어요.
동생 정이(程頤)와 함께 워낙 유명해서 두 사람을 묶어 '두 정씨(二程)'라고 불렀고, 형은 '큰 정(大程)', 동생은 '작은 정(小程)'으로 구분했지요.
형제는 젊은 시절 나란히 주돈이에게 배웠고, 낙양에서 십여 년 남짓 살며 가르쳐서 그들의 학문을 '낙학(洛學)'이라고 해요.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사이좋은 형제 학자 같지요.
그런데 왜 굳이 '차이'를 따질까요?
같은 스승 밑에서 자란 형제인데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공부하는 방법이 놀랄 만큼 달랐기 때문이에요.
마치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가 한 명은 느긋한 문과형, 한 명은 꼼꼼한 이과형이 되는 것처럼요.
이 차이가 훗날 성리학의 큰 두 흐름으로 자라나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성격이에요.
형 정호는 성격이 '온후관대(溫厚寬大)', 그러니까 따뜻하고 너그러웠대요.
낙양에서 십여 년 동안 가르치는 동안 제자들은 그와 함께 있는 느낌을 '여좌춘풍(如坐春風)', 즉 '봄바람 속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어요.
옆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선생님이었던 거죠.
반대로 동생 정이는 엄격하고 준엄한 사람이었어요.
형이 봄바람이라면 동생은 서릿발에 가까웠던 셈이에요.
같은 이야기를 해도 형은 다독이듯, 동생은 따끔하게 짚었을 거예요.
학교 다닐 때도 같은 반에 편하게 웃어 주는 선생님과 원칙을 딱 잡아 주는 선생님이 있잖아요.
두 정씨가 딱 그런 대비를 이뤘어요.
성격 차이는 단순한 기질 문제로 그치지 않고, 두 사람이 '공부란 무엇인가'를 다르게 보게 만든 밑바탕이 됐어요.
핵심 차이는 '이치(理)에 어떻게 다가가느냐'였어요.
형 정호는 이치가 이미 내 마음 안에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그는 '당처변인취(當處便認取), 갱불가외구(更不可外求)', 곧 '그 자리에서 바로 알아챌 뿐, 다시 밖에서 구할 수 없다'고 했어요.
마음을 밝혀 본성을 보는 '명심견성(明心見性)'을 강조하고,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힘써 실천하는 '역행(力行)'을 공부의 방법으로 삼았지요.
동생 정이는 반대 방향에서 출발했어요.
그는 사물 하나하나에 다가가 이치를 캐묻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주장하고, 이치를 끝까지 파고드는 '궁리(窮理)'를 공부법으로 삼았어요.
마음 안을 곧바로 보는 형과, 바깥 사물을 차근차근 따지는 동생.
방향이 정반대였던 거예요.
비유하자면 요리를 배우는 두 사람 같아요.
형은 '맛은 결국 내 혀가 안다, 직접 만들며 몸으로 익혀라'는 쪽이고, 동생은 '재료와 불 세기를 하나씩 조사해 원리를 밝혀야 한다'는 쪽이지요.
둘 다 좋은 요리사가 되지만 걷는 길이 달라요.
| 구분 | 형 정호(명도) | 동생 정이(이천) |
|---|---|---|
| 성격 | 온후관대, '봄바람 같다' | 엄격하고 준엄함 |
| 중시한 것 | 마음(명심견성), 기(氣) | 이치(理) |
| 공부 방법 | 역행(직접 실천) | 궁리(끝까지 따짐) |
| 이치를 찾는 곳 | 내 마음 안 | 바깥 사물 |
이 차이는 형제 대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형 정호의 '마음을 밝히는' 흐름은 훗날 육구연(陸九淵)에게 이어졌고, 동생 정이의 '사물을 따지는' 흐름은 주희(朱熹)에게 이어졌어요.
성리학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 갈림길에 이 형제가 서 있었던 셈이지요.
한 집안에서 시작된 성격과 공부법의 차이가, 수백 년 동양 사상의 두 큰 물줄기로 자란 거예요.
다만 형의 '천리(天理)' 체험이나 만물을 한 몸으로 보는 '인(仁)' 이야기, 마음을 가라앉히는 공부 같은 형만의 사상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니, 그건 다른 글에서 따로 자세히 다룰게요.
여기서는 '형과 동생이 이렇게 달랐다'는 대비만 기억해 두면 충분해요.
재미있는 점이 있어요.
이렇게 달랐는데도, 두 사람의 사상을 딱 잘라 나누기가 의외로 어렵다는 거예요.
정이는 형 정호가 세상을 떠난 뒤 형의 행장(생애 기록)을 지으면서, 형의 사상과 자기 사상이 같으니 '나를 알고 싶으면 내가 쓴 형의 행장을 보라'고 했어요.
방법은 달랐어도 큰 뜻은 하나라고 여긴 거죠.
게다가 형제의 말과 글은 훗날 주희가 모아 《이정전서(二程全書)》로 남겼는데, 그 안에는 어느 대목이 형의 말이고 어느 대목이 동생의 말인지 구분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이건 정호, 저건 정이' 하고 깔끔하게 가르기가 쉽지 않답니다.
차이는 분명 있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한 뿌리에서 뻗은 두 가지였던 거예요.
형 정호와 동생 정이는 같은 스승에게 배운 형제였지만, 성격은 봄바람 같은 형과 서릿발 같은 동생으로, 공부법은 마음을 바로 밝히는 형(역행)과 사물을 끝까지 따지는 동생(궁리)으로 갈렸어요.
이 차이가 훗날 각각 육구연과 주희로 이어져 성리학의 두 큰 흐름이 돼요.
다만 정이 스스로 형과 뜻이 같다고 했고 두 사람 글이 잘 섞여 전하는 만큼, '완전히 다른 두 사람'보다는 '한 뿌리에서 갈라진 두 갈래'로 기억하는 게 가장 정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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