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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고염무는 황제가 지방 구석까지 관리를 파견해 직접 다스리는 군현제가 지방을 '남의 일'로 만든다고 봤어요. 그래서 세습 영주가 제 땅처럼 아끼던 봉건제의 자치 정신을, 중앙이 통제하는 군현제 틀 안에 되살려 둘의 장점만 합치자고 했어요.
먼저 두 낱말부터 풀게요.
고염무(顧炎武, 1613~1682)는 명나라가 무너지고 청나라가 들어서던 어수선한 시대를 살며, 책상에서만 굴러가는 헛된 학문을 싫어한 실학 사상가예요.
그가 평생 붙들고 고민한 문제 하나가 바로 '나라를 어떻게 나눠서 다스릴 것인가'였어요.
비유로 가 볼게요.
봉건제(封建)는 '동네마다 대를 잇는 가게 주인'을 두는 방식이에요.
왕이 친척과 공신에게 땅을 뚝 떼어 주면, 그 사람과 그 자손이 대대로 그 땅의 주인이 되어 다스려요.
옛 주나라가 이랬죠.
반면 군현제(郡縣)는 '본사가 전국 지점에 점장을 파견하는' 방식이에요.
나라를 군(郡)과 현(縣)으로 쪼갠 뒤, 황제가 관리를 골라 내려보내요.
그 관리는 몇 년 일하다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못해요.
진시황의 진나라가 이 방식을 처음 전국에 깔았어요.
고염무는 진나라가 군현제를 택한 것 자체는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평가했어요.
힘을 한곳에 모아 넓은 땅을 하나로 묶으려면 그 편이 나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군현제도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콕 집었어요.
왜냐하면 '파견 점장'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거든요.
임기가 짧으니 그 고장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아요.
몇 년 있다 떠날 곳이라 생각하면, 고장의 100년 뒤보다 자기 승진이 더 급해지죠.
게다가 중앙이 모든 걸 틀어쥐려 할수록, 정작 실무는 그 고장에 눌러앉은 아전과 서리가 쥐게 돼요.
힘을 잔뜩 모았는데 오히려 엉뚱한 곳으로 새어 버리는 거예요.
고염무가 보기에 군현제의 병은 '중앙집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나쳐서' 생긴 병이었어요.
아니에요.
여기가 고염무 주장에서 가장 헷갈리기 쉬운 대목이에요.
그는 옛 봉건제로 되돌아가자고 한 게 아니에요.
세습 영주가 판치던 봉건제는 나라를 갈가리 찢어 놓을 위험이 있다는 걸 그도 잘 알았어요.
그의 답은 절충이었어요.
군현제라는 큰 틀은 그대로 두고, 그 안에 봉건제가 지녔던 '자치의 정신'을 심자는 거였죠.
다시 말해 강력한 중앙 권위와 지방의 자치를 한 몸에 담으려 했어요.
지방을 맡은 관리가 그 고장을 '남의 지점'이 아니라 '내 가게'처럼 오래, 깊이 책임지게 하자는 뜻이에요.
표로 견주면 이래요.
| 구분 | 봉건제 | 군현제 | 고염무의 절충 |
|---|---|---|---|
| 지방을 맡는 사람 | 세습 영주 | 파견 관리 | 파견하되 오래 책임 |
| 좋은 점 | 제 땅처럼 아낌 | 나라가 하나로 묶임 | 둘 다 살림 |
| 나쁜 점 | 나라가 쪼개짐 | 지방을 남의 일로 여김 | 절충으로 덜어냄 |
고염무는 이 고민을 제도의 언어로도 파고들었어요.
그는 법(法)과 규례(例)를 갈라서 봤어요.
여기서 법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큰 제도예요.
이건 나라가 버티는 데 꼭 필요하다고 했죠.
문제는 규례, 곧 자잘한 규정에 지나치게 매달릴 때예요.
세세한 규정에 모든 걸 맡기면, 정작 그 규정을 다루는 실무자, 즉 환관과 서리에게 권력이 슬금슬금 넘어가요.
그러면 결국 중앙의 권위 자체가 약해지고 말죠.
앞서 본 '군현제가 지나쳐서 생긴 병'과 똑같은 이야기예요.
규정으로 꽉 조일수록 힘이 엉뚱한 손으로 흘러간다는 것, 이게 고염무가 거듭 짚은 지점이었어요.
참고로 그는 진나라의 법제와 군현제를 긍정한 탓에, 후대 일부 학자에게 유가답지 않은 '법가'라는 딱지가 붙기도 했어요.
정통 유학의 눈에는 낯선 주장이었던 거죠.
이 오래된 논쟁은 놀랄 만큼 지금 이야기 같아요.
모든 걸 중앙 본사가 정하면 관리는 편하지만, 현장은 '내 일'이라는 마음을 잃어요.
반대로 지방에 다 맡기면 힘이 흩어져 나라가 따로 놀고요.
중앙의 통제력과 현장의 주인 의식, 이 둘을 어떻게 한 저울에 올릴까요.
회사든 나라든 학교든, 조직을 굴려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물음이에요.
고염무는 400년 가까이 전에 이미 그 저울 앞에 서 있었던 셈이에요.
고염무의 군현론과 봉건론은 '둘 중 뭐가 옳으냐'를 고르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봉건제는 지방을 제 땅처럼 아끼지만 나라를 쪼개고, 군현제는 나라를 하나로 묶지만 지방을 남의 일로 만들어요.
그는 군현제라는 틀 위에 봉건제의 자치 정신을 심어, 강력한 중앙과 살아 있는 지방을 함께 얻으려 했어요.
규정으로 꽉 조일수록 힘은 엉뚱한 손으로 샌다는 경고까지 얹으면서요.
오늘 우리가 기억할 한 문장은 이거예요.
좋은 통치는 다 쥐는 것도 다 놓는 것도 아니라, 현장이 '내 일'이라 느끼게 만드는 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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