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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고염무는 마음이니 본성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만 되풀이하는 당대 학문을 '공리공담(空理空談)', 곧 빈 이론과 빈 말이라 불렀어요. 나라가 실제로 무너지는데 그런 이야기는 아무것도 풀지 못한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그는 학문이란 현실의 문제를 실제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요리 대회에 나갔는데, 한 팀이 불도 안 켜고 냄비도 안 꺼낸 채 "불의 본질은 무엇인가", "맛이란 마음에서 오는가"만 몇 시간째 토론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말은 그럴듯한데, 정작 접시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아요.
고염무(1613~1682)가 보기에 자기 시대 학문이 딱 이랬어요.
그가 살던 명나라 말기에는 성리학, 곧 송·명의 이학(理學)이 학문의 중심이었어요.
학자들은 心(마음)·性(본성)·命(천명) 같은 추상적인 주제를 두고 끝없이 따졌어요.
고염무는 이렇게 실제 쓸모와 동떨어진 논의를 '공리공담', 빈 이론과 빈 말이라 부르며 부끄러워했어요.
접시가 비어 있는데 불의 본질만 논하는 학문이라는 거죠.
그는 나라가 실제로 무너지는 장면을 직접 봤어요.
1644년 청나라 군대가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강남으로 밀고 내려올 때, 그의 고향 곤산도 함락됐어요.
생모는 오른팔이 잘렸고, 두 동생은 살해당했으며, 그를 길러 준 양어머니 왕씨는 스스로 굶어 죽었다고 전해져요.
이런 무게를 짊어진 사람이었어요.
그가 남긴 말이 그의 분노를 잘 보여 줘요.
"感四国之多虞,耻经生之寡术(감사국지다우, 치경생지과술)", 곧 "나라의 많은 근심을 절감하며, 경전이나 공부하는 선비들의 빈약한 방책을 부끄러워했다"는 말이에요.
위기가 코앞인데 지식인들이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이 이토록 없다니, 그게 창피했다는 거예요.
그에게 공리공담 비판은 한가한 학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를 지키지 못한 학문을 향한 뼈아픈 반성이었어요.
그럼 대안은 뭐였을까요.
고염무는 도(道)와 기(器)라는 오래된 개념을 다시 꺼냈어요.
여기서 도는 눈에 안 보이는 이치나 원리이고, 기는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제도예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形而上者谓之道,形而下者谓之器,非器则道无所寓(형이상자위지도, 형이하자위지기, 비기즉도무소우)", 곧 "형이상을 도라 하고 형이하를 기라 하니, 기가 아니면 도가 깃들 곳이 없다"는 뜻이에요.
아름다운 선율(도)도 악기(기) 없이는 울리지 않고, 따뜻한 마음(도)도 실제 밥 한 그릇(기)으로 건네야 전해지는 것과 같아요.
이치는 구체적인 사물과 제도 속에 담겨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 한 문장이 공리공담 비판의 핵심이에요.
마음이니 본성이니 하는 추상적인 이치만 붙들고 구체적인 현실을 외면하면, 그 이치는 깃들 곳이 없어 허공에 뜬 말이 되고 마니까요.
고염무는 공허한 이학을 대신할 학문으로 '박학(樸學)'을 내세웠어요.
'박(樸)'은 꾸미지 않은 통나무처럼 소박하고 실질적이라는 뜻이에요.
화려한 말솜씨 대신, 경전과 역사를 실제 자료로 꼼꼼히 파고드는 학문이죠.
두 학문의 태도를 견주면 이래요.
| 구분 | 이학(理學)의 공리공담 | 고염무가 권한 박학(樸學) |
|---|---|---|
| 관심 | 마음·본성·천명 같은 추상 | 눈앞의 현실 문제 |
| 방법 | 사변과 토론 | 경학·사학의 실제 고증 |
| 목표 | 내면의 깨달음 | 세상에 쓸모 있는 학문 |
말싸움으로 이치를 논하기보다, 옛 문헌을 직접 뒤지고 근거를 따져 실제로 쓸 수 있는 지식을 쌓자는 거였어요.
이 태도는 훗날 청나라 고증학의 출발점이 됐고, 그래서 그는 왕부지·황종희와 함께 명말청초를 대표하는 세 학자로 꼽혀요.
다만 그가 실제로 어떤 새 제도를 설계했는지, 어떻게 문헌을 고증했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라, 여기서는 '헛된 말을 버리자'는 그 비판의 핵심만 기억해 두면 충분해요.
고염무의 공리공담 비판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어요.
나라가 무너지는데도 학자들이 마음이니 본성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만 되풀이하는 것을 그는 '빈 이론과 빈 말'이라 불렀어요.
그가 든 이유는 분명해요.
도는 구체적인 사물과 제도, 곧 기 없이는 깃들 곳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는 화려한 사변 대신 자료를 꼼꼼히 따지는 소박한 학문, 박학을 권했어요.
학문이 접시 위에 실제 요리를 올려야 한다는 이 생각이, 오늘날에도 '말만 앞선 지식'을 경계하게 하는 오래된 물음으로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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