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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도시에 부와 사치가 쌓이면 사람들은 편안함에 익숙해져 나라를 처음 세울 때의 결속과 활력을 잃고, 그 빈자리를 아직 거칠지만 활력 있는 새 집단이 차지한다는 뜻이에요. 풍요는 문명의 정점인 동시에 쇠퇴가 시작되는 자리라는 거죠.
혹시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 들어 보셨나요?
할아버지가 맨손으로 고생해 재산을 모으고, 아버지가 그럭저럭 지키다가, 편하게 자란 손자 대에서 다 써 버린다는 이야기예요.
놀랍게도 이 이야기를 나라와 문명 전체의 규모로 700년 전에 풀어낸 사람이 있어요.
바로 1332년 튀니스에서 태어나, 알제리 산골에 6개월간 틀어박혀 《무깟디마》라는 책을 쓴 이븐 할둔이에요.
이 책에서 그가 남긴 가장 널리 인용되는 통찰은 이거예요.
한 사회가 위대한 문명으로 자라나면, 그 정점 바로 뒤에 반드시 쇠퇴기가 따라온다는 것.
즉 문명이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이, 사실은 무너짐이 시작되는 순간이라는 거예요.
도시가 커지고 살림이 풍족해질수록 그 안에 타락의 씨앗도 함께 자란다는 이야기죠.
처음엔 누구나 거친 시절을 보내요.
새 나라를 세우는 사람들은 대개 가진 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 서로 똘똘 뭉치고, 힘들어도 참고, 함께 싸워요.
이렇게 뭉치는 힘을 이븐 할둔은 '아사비야(ʻaṣabiyyah)', 즉 집단의 결속이라고 불렀어요.
이 결속의 힘이 사람들을 권력의 자리까지 밀어 올려요.
그런데 문제는, 이 결속력이 권력을 잡는 순간 그 안에 이미 몰락의 씨앗을 함께 품고 있다는 점이에요.
이븐 할둔은 그 씨앗이 심리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으로 동시에 자란다고 봤어요.
도시에 자리를 잡고 부가 쌓이면, 사람들은 좋은 집과 맛있는 음식과 편한 생활에 익숙해져요.
처음의 그 헝그리 정신, 서로 목숨 걸고 뭉치던 결속은 슬슬 느슨해지고요.
그래서 이런 순환이 반복돼요.
잘 사는 문명은 부드럽고 세련되지만 물러 터지고, 그 옆에는 아직 거칠지만 활력이 넘치는 새 집단이 있어요.
이 상대적으로 '야만적인' 집단이 무른 문명을 정복해요.
그런데 재밌게도 정복자는 정복지의 화려한 문화와 예술에 그만 홀딱 반해서 그것에 동화되고 물들어요.
그러다 그들 역시 다시 물러지고, 또 다른 거친 집단에게 정복당하죠.
화려함이 물러짐으로, 물러짐이 정복으로, 정복이 다시 화려함으로 이렇게 돌고 도는 거예요.
이븐 할둔은 타락을 도덕 이야기로만 두지 않고 돈의 흐름으로도 설명했어요.
그는 왕조 초기에는 세율이 낮은데도 걷히는 세금이 많고, 왕조 말기에는 세율이 높은데도 걷히는 세금이 적다고 봤어요.
처음엔 사람들이 힘이 나서 열심히 일하니 낮은 세금으로도 나라 곳간이 차지만, 나중엔 나라가 씀씀이가 커져 세금을 자꾸 올리고, 그러면 사람들이 일할 맛을 잃어 오히려 곳간이 빈다는 거예요.
또 하나, 그는 지나친 관료주의를 경계했어요.
세금과 규제가 너무 많아지면 사람들이 자기 일에 전문성을 쌓지 못해 사회가 쇠퇴한다고 봤죠.
관료는 상업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장사꾼과 같은 동기를 갖지 못한다고 여겼거든요.
참고로 1981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바로 이 '초기엔 적은 세율로 큰 세수, 말기엔 큰 세율로 적은 세수'라는 취지의 이븐 할둔 이야기를 자신의 감세 정책 근거로 끌어다 쓰기도 했어요.
이 이야기는 옛날 왕조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에요.
편안함에 너무 익숙해지면 처음의 절박함과 결속이 흐려진다는 건, 회사에도 동아리에도 한 사람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거든요.
정점에 올랐다고 방심하는 순간이 사실 가장 위험해요.
그리고 밖에서 굶주린 새 도전자가 언제든 그 자리를 노리고 있고요.
이븐 할둔은 이 냉정한 리듬을 감정이 아니라 관찰로 풀어낸 거예요.
이븐 할둔의 도시문명과 타락은 이렇게 묶을 수 있어요.
문명은 거친 결속으로 일어서고, 풍요 속에서 그 결속을 잃어 무너지며, 그 자리를 다시 거친 새 집단이 차지해요.
화려함의 정점이 곧 쇠퇴의 출발점이라는 거예요.
부잣집이 3대를 못 가듯, 도시의 풍요는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대신 처음의 활력을 조금씩 갉아먹는다는 냉정한 관찰이에요.
그래서 그가 남긴 물음은 지금도 유효해요.
우리는 지금 올라가는 중일까, 아니면 편안함에 젖어 내려가기 시작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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