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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이븐 할둔은 역사를 '누가 전한 이야기냐'가 아니라 '그 일이 사회의 본성에 비추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느냐'로 따졌어요. 그래서 역사가 남의 말을 받아 적는 기록에서, 사건의 원인과 이치를 캐묻는 학문으로 바뀌었답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븐 할둔을 두고 "오늘날 우리가 사회과학이라 부르는 것을 사실상 창시한 14세기 이슬람 철학자"라고 했어요.
1332년 튀니스에서 태어난 이 사람이 그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하나예요.
역사를 다루는 방법 자체를 통째로 바꿔 놓았거든요.
'역사학의 과학화'란, 역사를 그냥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대요" 하고 옮겨 적는 일에서 벗어나,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규칙으로 따져 묻는 학문으로 만들었다는 뜻이에요.
마치 병을 그저 "아프다"라고 적기만 하던 사람들 틈에서, 원인을 찾아 진단하는 의사가 처음 등장한 것과 비슷해요.
이븐 할둔 이전의 역사가들은 이야기가 참인지 가릴 때 주로 '전한 사람'을 봤어요.
믿을 만한 사람에게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로 이어져 온 이야기면 사실로 받아들이는 방식이었죠.
이건 마치 소문을 들을 때 "누가 그러던데?"만 확인하고 내용은 안 따지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이븐 할둔은 여기에 큰 구멍이 있다고 봤어요.
아무리 정직한 사람이 전한 이야기라도, 애초에 세상 이치에 어긋나는 내용이면 그건 거짓일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왕이 군인 수십만 명을 한 골짜기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면, 그는 그 골짜기에 정말 그만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지, 그 나라가 그만한 군대를 먹일 수 있었는지를 따졌어요.
그래서 그는 전달자가 믿을 만한지에만 매달리는 관행을 거부하고, 이야기 자체가 그럴듯한지를 보며 비판적으로 생각하라고 했답니다.
이븐 할둔이 새로 세운 기준은 '움란', 곧 사회와 문명에는 저마다 지켜지는 본성과 이치가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사람들이 모여 살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규칙이 있고, 어떤 기록이 그 규칙과 어긋나면 의심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는 사람을 움직이고 사회를 짜 맞추는 힘으로 '피크르(fikr)', 곧 생각하고 헤아리는 능력을 특히 강조했어요.
두 방식의 차이를 표로 보면 이래요.
| 구분 | 옛 역사가들 | 이븐 할둔 |
|---|---|---|
| 무엇을 보나 | 이야기를 전한 사람 | 이야기의 내용 |
| 핵심 질문 | 믿을 만한 사람인가 |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
| 판단 근거 | 전달의 계보 |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 |
이렇게 사건을 사회의 규칙에 비추어 검증하니, 역사는 더 이상 옛말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원인을 밝히는 학문이 됐어요.
이 태도는 오늘날 우리가 가짜뉴스를 볼 때 "출처가 어디야"뿐 아니라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를 함께 따지는 것과 똑 닮았지요.
이 새로운 역사학은 《무깟디마》라는 책에 담겼어요.
무깟디마는 '서설', 즉 머리말이라는 뜻이에요.
원래는 《키타브 알이바르》라는 전 7권짜리 세계사의 첫 권으로, 세계사를 쓰기 전에 "역사란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를 먼저 밝힌 부분이랍니다.
그는 1375년부터 1378년 사이 알제리의 콸라트 이븐 살라마라는 외딴 곳에 은거하며 이 서설을 썼는데, 자서전에 따르면 집필 기간은 여섯 달이었다고 해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무깟디마》를 두고 "이런 종류의 저작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했어요.
다만 이 책이 처음부터 모두에게 칭송받은 건 아니에요.
동시대 학자 이븐 하자르 알아스칼라니는 구성이 산만하다며 비판했고, 세계사 뒷부분에는 이븐 할둔이 참고한 옛 사료의 오류를 그대로 옮긴 대목도 있다는 지적이 있어요.
방법을 새로 세운 사람도 모든 사실을 완벽히 걸러 내지는 못했다는 뜻이라, 그의 원칙이 그만큼 값지다는 걸 거꾸로 보여 주기도 해요.
이븐 할둔의 '역사학의 과학화'는 이렇게 기억하면 돼요.
그는 역사를 '누가 전했나'로 믿던 시대에 '그 일이 사회의 이치에 맞나'를 물었어요.
사회에는 지켜지는 규칙이 있으니, 그 규칙에 어긋나는 이야기는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전해도 의심해야 한다고 봤죠.
그래서 역사는 옛말을 옮겨 적는 일에서 원인을 캐묻는 학문으로 바뀌었고, 그 생각은 《무깟디마》에 담겨 훗날 사회과학의 씨앗으로 불리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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