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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도불용수(道不用修)'는 도(道)를 따로 닦아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마조 도일의 말이에요. 도가 이미 내 평범한 일상 마음 안에 있으니, 없는 것을 애써 쌓아 올리려는 그 태도부터 내려놓으라는 뜻이죠.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년부터 788년까지)은 당나라 때 선종의 큰 스승이에요.
그가 남긴 말 가운데 '도불용수(道不用修)'가 있어요.
글자 그대로 풀면 "도(道)는 굳이 닦을(修) 필요가 없다"는 뜻이에요.
먼저 '닦는다'는 말부터 볼게요.
우리는 보통 무언가를 얻으려면 노력을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험을 잘 보려면 문제집을 풀고, 몸을 만들려면 운동을 하죠.
그래서 '깨달음'도 오래 앉아 마음을 갈고닦으면 언젠가 손에 쥐는 상(賞) 같은 것이라 여기기 쉬워요.
마조는 여기에 "아니다"라고 답한 거예요.
도는 시험 점수처럼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채우는 물건이 아니라는 거죠.
왜 아니라고 했을까요.
도가 이미 내 안에, 그것도 아주 평범한 일상의 마음 안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없는 것을 밖에서 구해 채우려 애쓸수록 오히려 멀어진다는 거예요.
안경을 이마에 올려놓고는 온 집을 뒤지며 안경을 찾는 사람처럼요.
찾는 행동 자체가 이미 가진 걸 못 보게 만드는 셈이죠.
여기 유명한 장면이 하나 있어요.
젊은 시절 마조는 하루 종일 좌선(坐禪), 즉 앉아서 하는 명상에만 매달렸다고 해요.
그러자 스승 남악회양(南嶽懷讓, 677년부터 744년까지)이 곁에서 벽돌을 갈기 시작했어요.
마조가 물었죠.
"무엇을 하십니까."
"거울을 만든다."
"벽돌을 갈아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
이때 스승이 되받았어요.
磨磚既不成鏡,坐禪豈得成佛 — '벽돌을 아무리 갈아도 거울이 될 수 없듯이, 좌선만 한다고 어찌 성불(成佛)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에요.
핵심은 재료와 목표가 어긋났다는 거예요.
벽돌은 아무리 정성껏 갈아도 거울이 되는 재료가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기만 하면 부처가 된다는 계산 자체가 잘못됐다는 거죠.
'도불용수'가 겨냥한 게 바로 이 계산이에요.
다만 이 일화가 마조가 깨달은 바로 그 순간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이 이야기를 전하는 옛 기록도 "이때 깨달았다"고 못 박지는 않거든요.
오해하기 쉬운 대목이에요.
'닦을 필요 없다'니까 명상도 수행도 다 그만두라는 말처럼 들리죠.
그런데 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갈려요.
| 해석 | 마조가 부정했다고 보는 것 |
|---|---|
| 통념(야나기다 세이잔) | 좌선이라는 수행 그 자체 |
| 반론(포체스키 등) | 좌선으로 성불을 '얻어 내려는' 목적 집착 |
반론 쪽 설명이 이해에 도움이 돼요.
마조가 꼬집은 건 앉는 행위가 아니라, "이걸 하면 부처를 손에 넣는다"는 거래하는 마음이라는 거죠.
운동을 예로 들면, 몸을 쓰는 즐거움으로 달리는 사람과 오직 상금만 노리고 달리는 사람은 같은 동작을 해도 마음이 달라요.
'도불용수'는 뒤쪽, 즉 결과만 얻어 내려는 태도를 내려놓으라는 말에 가까워요.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마라"가 아니라 "부족하다는 조바심으로 쌓아 올리려 하지 마라"에 방점이 있어요.
그렇다면 이런 의심도 들어요.
이미 다 갖췄고 닦을 것도 없다면, 뭘 하든 상관없다는 말 아닐까요.
실제로 이 위험을 정확히 짚은 사람이 있었어요.
규봉종밀(圭峰宗密, 780년부터 841년까지)이에요.
그는 마조 계열(홍주종)이 '모든 것을 다 참되다'고 여긴다고 비판했어요.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를 부처 성품의 드러남으로 긍정하면, 결국 어떤 짓이든 정당화되는 위험한 길로 흐를 수 있다는 거죠.
이 비판을 알아 두면 '도불용수'를 게으름의 핑계로 오독하지 않게 돼요.
실제로 마조는 제자들의 굳은 습관을 깨려고 갑자기 고함을 지르거나, 떠나는 제자를 이름 불러 세우는 등 파격적인 방법을 썼다고 전해요.
다 내려놓았으면 그런 애씀도 필요 없었겠죠.
'도불용수'는 노력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이미 깨끗한 마음을 새삼 꾸며 대거나 더럽히지 말자는 쪽에 가까운 말이었어요.
'도불용수(道不用修)'는 도를 없던 것에서 새로 만들어 내려는 태도를 내려놓으라는 마조 도일의 말이에요.
세 가지만 기억하면 돼요.
첫째, 도는 시험 점수처럼 쌓아 얻는 물건이 아니라 이미 내 평범한 마음 안에 있다고 봤어요.
둘째, 벽돌을 갈아 거울을 못 만들 듯, 시간만 쌓으면 부처가 된다는 계산을 겨냥한 말이지 명상 자체를 버리라는 뜻은 아니라는 해석이 유력해요.
셋째,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살라는 허가증은 아니에요.
이미 가진 것을 더럽히지 않는 일, 그게 남은 몫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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